여자, 엄마가 되다
  • 이현선
  • 승인 2011.09.30 19: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엄마인생 다시보기

스물여섯, 결혼을 했다. 몇 년 동안 다니던 직장을 관뒀다. 미련은 없다. 내조 잘하고 아이들을 잘 키워서 행복한 가정을 만들고 싶을 뿐이다.
결혼 1년 만에 첫 아이를 낳는다. 예쁜 공주님이다. 비로소 엄마가 된다. 두 살 터울을 두고 건강한 아들을 얻었다. 딸 하나에 아들 하나. 아름다운 가정을 잘 꾸려갈 수 있을 것 같다.
엄마는 다섯 살 난 첫아이를 유치원에 보낸다. 아직 학교에 가려면 3년이나 남았지만 한글도 열심히 가르친다. 요즘은 초등학교 들어가기 전에 한글은 기본이고 구구단까지 뗀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앞서가지는 못할망정 뒤쳐지게 할 수는 없다. 엄마는 아이가 공부를 잘했으면 좋겠다. 살아보니 공부가 가장 쉽게 성공할 수 있는 지름길이다. 두 아이가 엄마아빠보다 더 많이 배우고, 더 많이 누리며 살기를 바란다. 큰아이와 동갑내기인 옆집 아이는 학습지도 하고 피아노 학원도 다닌단다. 엄마는 다음 달부터 큰 아이에게 학습지를 시키고 피아노 학원에도 보내기로 결정했다.  
IMF가 찾아왔다. 아빠의 회사도 구조조정을 피할 수 없었다. 많은 동료들을 떠나보냈지만 아빠는 다행히 직장에 남았다. 아빠는 한동안 술에 취해 집에 들어왔다. 자신만 살아남은 것이 미안하다며 눈물을 보이기도 했다. 살아남았다는 안도감, 동료에 대한 미안함, 그리고 언제 잘릴지 모른다는 불안감이 계속됐다. 언젠가 아빠도 회사를 그만둬야 할지도 모른다. 45세가 정년이라는 ‘사오정’이란 말도 생겨났다. 엄마는 아이들이 좀 더 크면 직장을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년이면 둘째가 중학생이 된다. 두 녀석의 학원비를 합치니 한 달에 100만원 가까이 든다. 뉴스에서는 소득 최상위 계층의 사교육비가 최하위 계층의 8배에 이른다고 한다. ‘부잣집에서는 과외를 몇 개씩 시킬 텐데……’ 아이들 학원비에 더 투자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이들 학원비에 보험료, 집 사느라 빌린 은행대출 이자에 생활비까지 쓰면 남는 게 없다. 노후준비까지 하기에는 남편 혼자 버는 걸로는 빠듯하다. 엄마는 16년 만에 다시 취직하기로 한다. 
마흔이 넘은 아줌마가 취직할 곳은 많지 않았다. 엄마는 한 달에 백만원이 조금 넘는 돈을 받고 백화점에서 일하기로 했다. 서서 일하니 매일같이 다리가 퉁퉁 붓는다. 까다로운 손님을 만날 때면 스트레스가 차오른다. 그래도 이 돈으로 자식들 공부시킨다고 생각하면 보람이 있다.
하루종일 일하고 돌아오면 집안일이 산더미다. 가족들 밥 챙겨 먹이고, 아이들 살피다 보면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란다. 입시 스트레스에 아이들은 부쩍 민감해졌다. 공부는 잘하고 있는지 학교에서 문제는 없는지 일일이 신경쓰다보면 피곤한 것도 잊어 버린다.      
올해로 재수생이었던 둘째까지 대학에 갔다. 두 아이 등록금에 노후자금을 마련하느라 직장을 관두지 못한다. 그래도 전보다 한가한 시간이 많아졌다. 대학생이 된 두 녀석은 이제 속썩이는 일도 없다. 남편은 일하느라 바쁘다.
남편도 아이들도 밤 늦게서야 들어오니 저녁을 혼자 먹는 날이 많아졌다. 시계를 보니 벌써 11시가 넘었는데 아직 아무도 들어오지 않았다. 남편은 회식이 있고 딸아이는 도서관에서 공부를 하고 온단다. 아들녀석은 연락도 없다. 엄마는 TV를 틀어놓고도 자꾸만 시계를 본다. 
도움말 김경희 교수(사회학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