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과 호수로 뒤덮인 핀란드. 그 중에서도 고요하기로 소문난 도시 쿠오피오(Kuopio). 쿠오피오의 사보니아 대학교(Savonia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에서 온 카이사(26)와 로라(22)를 마주했다. 자연 경관이라곤 숲과 호수밖에 모르던 그녀들이 서울에서 볼 수 있었던 풍경은 빌딩 숲과 바쁘게 지나치는 사람들뿐이다. 처음엔 정신이 하나도 없었다며 서로를 바라보고 웃는 그녀들. 그녀들의 웃음처럼 수줍은 바람이 일던 날, 두 소녀를 서울캠 교정에서 만나 핀란드에 대해 이야기를 나눴다.

눈과 겨울의 천국
  핀란드 사람들은 매년 3월 즈음이 되면 “오늘은 해가 밝네요” 혹은 “오늘은 정말로 어둡네요”와 같은 날씨 이야기로 대화를 시작한다. 한국에선 3월 말이 되면 이내 봄기운이 느껴지지만 핀란드의 3월은 여전히 춥고 어둡기 때문이다. 10월부터 내리기 시작한 눈은 3월까지 계속돼 밖은 온통 하얀 눈밭이다.
핀란드의 크리스마스는 조금 특별하다. 산타클로스 할아버지의 고향이 핀란드이기 때문일까. 크리스마스 이브가 되면 핀란드는 온통 축제 분위기로 들썩거린다. 이브 저녁이 되면 빨간 옷을 입고 하얗고 긴 수염을 늘어뜨린 산타들이 노래를 부르며 거리를 활보한다. 카이사는 “크리스마스 당일보다 이브에 축하 행사가 성대하게 열린다”며 “친구들과 집에 모여 음식을 만들며 파티 준비를 한다”고 크리스마스 분위기를 전했다.


  크리스마스 당일 아침이 되면 식탁이 휘어지도록 풍성하게 요리를 준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쌀죽은 크리스마스에 꼭 빠지지 않는 음식이다. 요리하는 사람이 아몬드 한 조각을 죽에 넣고 각자의 그릇에 나눠 준다. 아몬드가 담긴 쌀죽을 받은 사람은 다음 해에 운이 좋을 것이라 믿는다. 결혼 적령기인 사람에게는 결혼 운이, 시험을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시험 운이 따르길 바라는 기분 좋은 풍습이다. 로라는 “세 번이나 죽을 받았는데 한 번도 아몬드를 받은 적이 없어 아직 결혼을 못한 것 같다”고 웃으며 말했다.

화끈한 사우나의 천국
  계절과 관계없이 핀란드 사람들은 사우나를 즐긴다. 전 세계에서 사용하는 ‘사우나’라는 단어는 핀란드어 사우나(sauna)에서 유래했다. 핀란드에는 집집마다 사우나 시설이 있을 정도로 사우나가 많다. 카이사는 “사우나는 주로 가족끼리 즐긴다. 한국은 전기로 하는 곳이 많은데 핀란드에서는 나무 장작을 떼서 한다”고 했다. 핀란드 사우나의 백미는 사우나를 즐긴 후 차가운 호숫물에 몸을 담그는 것이다. 겨울에는 호숫가 또는 산속에서 사우나를 하며 중간 중간에 밖으로 나가 눈 위에서 뒹굴기도 한다. 아찔하지만 온과 열을 온 몸으로 느낄 수 있는 것이 바로 핀란드 사우나의 매력이다.


  로라는 “핀란드에는 공용 사우나 시설이 적지만 사우나 바(bar) 같은 시설도 있다”고 소개했다. 사우나 바는 사우나 밖에 긴 벤치가 준비되어 있어 맥주와 소시지를 먹으며 사우나를 즐기는 색다른 공간이다. 핀란드 사우나를 이용할 때는 반드시 지켜야 할 수칙이 있다. 사우나 안에 들어갈 때 반드시 모든 옷을 벗어야 한다는 것이다. 수건으로 특정 부위를 가리거나 덮는 등의 행위 또한 예의가 아니다. 카이사는 “이상하게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우리에게 사우나는 사람들이 밥을 먹거나 차를 마시는 것 같이 일상적인 행위”라고 전했다.
 
명품 교육의 천국
  사우나 얘기로 실컷 웃음꽃을 피운 우리는 본격적으로 핀란드 교육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핀란드 교육에 대해 들어본 사람이면 한번쯤 ‘그곳에서 공부하고 싶다’라는 생각을 해봤을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가장 견고한 주춧돌은 모든 학생에게 동일한 교육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핀란드의 모든 학교는 등록금이 없다. 카이사는 “학기가 시작되면 기숙사나 학교에서 지정해 준 아파트에 살게 되는데 이곳도 그다지 비싼 편은 아니다. 학기 중에 필요한 돈은 생활비, 책값 정도”라고 말했다.


  학생끼리 경쟁을 하지 않는 것도 특징이다. 학생들의 성적을 순서대로 나열한 성적표를 나누어 주는 일이 없다. 과목의 석차를 알려주는 법도 없다. 특정 과목의 반 평균, 학교 평균, 전체 시험 성적의 평균이 없기 때문이다. 자기 자신의 점수만 표기된 성적표만이 있다. 핀란드 학생들은 오로지 자기 자신과 경쟁하는 셈이다. 로라는 “자신이 원하는 직업을 갖고자 한다면 학점에 신경 쓰는 것은 당연”하다며 “더 좋은 성적을 얻기 위해 노력하지만 남을 의식하는 경쟁은 하지 않는다”라고 전했다.


  대다수의 핀란드 학생들은 공부를 재미있는 놀이라고 생각한다. 이는 우등생과 열등생을 나누지 않는 핀란드 교육의 산물이다. 한국에 고교 평준화가 있다면 핀란드에는 대학 평준화가 있다. 그곳의 대학교에는 서열이 없다. 로라는 “직업을 찾을 때 어느 대학을 나왔는지는 중요하지 않고 개개인의 성격이나 능력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평가된다”고 말했다.


  카이사와 로라가 다니는 학교는 University of Applied Sciences(UAS), 우리나라로 치면 전문대학쯤 된다. 전문대라고 해서 일반 대학교(University)에 비해 차별 대우를 받는 것은 아니다. 로라는 “UAS에서는 실용적인 학문을 배운다. 이에 반해 일반 대학교에서는 기본 학문을 위주로 배운다”고 소개했다. 다만 UAS에서 석사 학위를 받기 위해선 3년 동안 직장에 다닌 경험이 있어야 한다.


  핀란드의 고등학생들에겐 반드시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없다. 카이사는 “대학을 간 사람이나 고등학교만 나온 사람이나 차이가 없다. 자기 인생에서 공부가 더 필요하다고 생각하면 가는 것”이라고 전했다. 핀란드 학생들이 가장 선망하는 직업은 무엇이냐는 질문에는 두 소녀 모두 “없다”고 대답했다. 로라는 “모든 사람들이 직업을 갖고 싶어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것은 모두 다르다. 큰 회사, 작은 회사를 가리지 않고 자기가 원하는 곳에 지원한다”고 말했다. 덧붙여 카이사는 “보통 사람들은 큰 회사 보다 자기가 살던 지역의 조그만 사무실에서 적당한 월급을 받으며 살고 싶어한다”고 말했다. 핀란드인들은 집세를 낼 수 있는 돈, 먹을 것을 사먹을 수 있는 돈, 취향에 따라 여행을 갈 수 있는 돈만 있으면 만족한다고 했다.


  당신은 핀란드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었는가. 눈부시게 아름다운 설원이 펼쳐진 도시. 차가움과 뜨거움이 공존하는 곳. 욕심없는 사람들이 사는 나라. 그 곳이 바로 핀란드다. 핀란드인이 실제로 자일리톨 껌을 씹는지 궁금하다고? 그렇다면 이번 기회에 핀란드로 훌쩍 떠나보는 것은 어떨까. 핀란드어를 못해도 상관없다. 특유의 친절함으로 똘똘 뭉친 핀란드 사람들이 환하게 웃고 있을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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