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기 초 강의실에 들어오는 학생들의 눈빛은 빛나고 얼굴에는 어떤 결의가 번져있다. 앎을 얻기 위해 온 젊고 아름다운 학생들을 가르치는 사람으로서 당연히 가슴이 설레고 이들을 열심히 가르치겠다고 각오를 하게 된다. 하지만 초심을 유지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걸 머잖아 알게 되는데, 학생들의 단단했던 표정은 느슨해지고 그 자리에 차츰 불안이 자리 잡아 가는 것을 발견하게 될 때다.

  무엇이 일부 학생들을 배움의 탈락자가 되게 하는 것일까. 현실의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들을 내몰고 있는 현실에 그들이 좌절하는 것만은 틀림없다. 중요한 이유의 한 가지를 나는 우리나라의 현재의 문명 환경과 그 안에서 우리 학생들이 중심을 잃고 흔들리고 있는 사실에서 찾는다. 우리나라 젊은이들의 삶의 패턴은 모바일을 중심으로 점점 단순화되고 있으며, 한편 그것의 수많은 소모적인 기능으로 인해 그들의 삶은 그 좁은 시계 안에서도 천갈래 만갈래로 분산되고 해체되고 있다. 그들은 별 저항 없이 그 체제 속으로 들어가 길들여지고 갇혀버린다. 놀랍게도 이것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아니고 우리나라를 비롯한 소수 몇몇 나라의 경우이다.

  가장 바람직한 삶이란 일관된 삶, 통합된 삶이다. 그런데 이런 삶의 길을 막는 것을 앞서 말한 것과 연관 지어 말하자면 미디어의 과도하고 잡다한 정보제공이라 하겠다. 우리는 우리나라로 향하는 태풍 소식을 접하는 순간 이미 이웃나라에서 일어난 거대한 자연재앙에 놀라고 그러는 사이 멀고 먼 나라에서 벌어지는 끔찍한 테러와 전쟁 소식을 들어야 한다. 나와 아무 관계없는 주가의 전망에 대해 듣고 그 등락 소식으로 우리의 삶은 갑자기 아득해지기도 한다. 세계 도처에서 전달되는 지속적인 정보는 우리를 지치게 하고 둔감하게 만들며 소중한 삶의 의미를 아주 보잘 것 없는 것으로 만들어 버린다.

  생각해 보자. 인간을 최고의 단계로 끌어올리고 최선의 환경을 구축하는 일이 어째서 그렇게도 어려운 것일까. 수많은 수재와 천재들이 설계해 온 체제들이 어찌하여 이렇게도 일시적이며 예측 불가능한 것일까. 이 문제들은 매우 중요한 철학적 명제들을 담고 있으며 분명 모든 인문적 노력을 다해 가장 먼저 모색하고 탐구되어야 할 과제이다.

  이 투명한 가을 햇살 아래서, 우리 학생들이 한 학기만이라도 단 한 명의 낙오자도 없이 진지한 공부를 통해 자아와 세계를 탐색해 나가기를 나는 바란다. 그들이 자신들을 흔들어대는 주변의 모든 험악한 요인들을 뿌리치고 그들을 규정지으려 하는 조건을 타파할 힘을 만들어가기를, 그리하여 우리 모두가 바라는 더 높은 단계의 세상에 들어서기를 바란다.

이상화 영어영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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