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는 고등학교 때부터 학벌의 노예(?)였다. 고3때는 서연고 서성한 중경외시를 외우고 다녔었다. 새내기 때도 이 서열을 신경 썼기 때문에 SKY 학생들을 보면 자연스럽게 기가 죽고, 흔히 낮은 서열이라 불리는 대학을 다니는 학생을 보면 왠지 모를 우월감에 사로잡히곤 했다. 그리고 중앙대, 그 중 특히 내가 다니는 학과의 수시 경쟁률이나 배치표 점수가 오르는 걸 볼 때마다 ‘내가 다니는 대학의 위상이 올라가니 나에게도 좋을 것’이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런 기자의 생각과는 전혀 다른 분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바로 「나는 빠리의 택시운전사」의 저자이자 사회 평론가로 유명한 홍세화 씨였다. 홍세화 씨는 대한민국 엘리트의 상징인 KS(경기고-서울대) 출신이다. 하지만 서울대 출신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정도로 학벌 문제에 대해 급진적인 얘기들을 많이 쏟아냈다.
 

홍세화 씨의 말 중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학벌에 의존하는 사람들 대부분은 남과 비교하며 집단의 우위에 기대게 된다”는 부분이었다. 사실 기자도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내가 속한 집단의 서열이 올라가면 나도 올라갈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학벌 사회의 표본이었다. 하지만 홍세화씨의 말을 듣자, 그러한 생각이 좀 무의미했던 것 같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지난 8월 27일 중앙대의 오랜 숙원이었던 서울캠과 안성캠을 하나로 묶을 수 있는 본·분교 통합이 이뤄졌다. 본·분교 통합이 이뤄지면서 중앙대는 31년만에 진정한 하나의 학교로 탈바꿈할 수 있게 됐다. 특히 본·분교 통합으로 서울캠과 안성캠 사이를 묶고 있던 여러 가지 제한이 풀리기 때문에 학교가 한단계 도약할 수 있는 기회가 될 것이라는 전망이 많았다.
 

하지만 이러한 기대와는 달리 학내에서는 구조조정 이후 한동안 잠잠하던 양캠간의 갈등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왔다. 특히나 2015년 이후 졸업하는 안성캠 경영경제계열 학생들에게는 통합 후 학적, 즉 서울캠 경영경제계열 학적이 주어진다는 사실은 서울캠 경영경제계열 학생들의 반발을 불러왔다. 서울캠 경영경제계열 학생들은 취업에서 안성캠과 서울캠 학생들이 똑같은 취급을 받게 될지도 모른다는 우려 때문에 중앙인 커뮤니티에서 릴레이 시위를 하고 총장 면담을 요구하기도 했다. 하지만 구조조정 이후 통폐합된 학과들이나 이번 경영경제계열의 경우도 안성캠 학생들이 서울캠 졸업증명서를 받아간다고해서 달라지는 것은 없다. 어차피 성적증명서에는 기존의 학적이 남아있기 때문이다.
 

기자는 지금 서울캠 경영경제계열 학생들도 홍세화씨의 말처럼 ‘본교 출신이라는 알량한 만족감’과 함께 집단의 우위에 기대려는 모습을 보여준 것 같아서 안타까웠다. 만약 자신들의 능력을 믿고 있다면 어차피 성적증명서로 본 학적이 다 드러날 수 밖에 없는 졸업증명서 때문에 그렇게 격한 반발을 할 필요가 없었다.
 

홍세화 씨는 “자기 집단의 우위에 기대기보다는 자기 성숙에 더 집중해라”고 말했다. 이 말은 서울캠 학생들에게 큰 의미를 던져 준다. 학벌에 기대려는 노력을 할 시간에 자기 발전에 힘쓴다면 오히려 더 좋은 결과가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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