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만의 화려한 컴백. 이현승 감독이 돌아왔다. <그대안의 블루>와 <시월애>를 통해 비주얼리스트로서의 입지를 다진 그. 그의 영화에는 잊혀진 감성을 되찾게 해주는 묘한 마력이 있다. 항상 새로운 것을 시도하되 결코 서두르고 싶지는 않다고 말하는 뚝심있는 이 남자, <푸른소금>을 진두지휘한 이현승 감독을 만났다. 

 

사람은 누구나 한번쯤 새로운 것에 대한 동경을 품지만 쉽게 좌절한다.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다. 하지만 이현승 감독은 그런 두려움을 즐긴다. 성공인지 실패인지 판가름하기 전에 도전 그 자체가 하나의 성취이기 때문이다. 남들이 하는 것, 트렌드를 따라가기보다 자신만의 뚜렷한 예술철학을 지켜나가는 진정한 영화인. 이현승 감독의 연구실 문을 두드렸다.  

- 공백 기간이 길었다. 부담감은 없었나
  그동안 단편영화는 몇 번 만들어서 현장이 멀게 느껴지지는 않았지만 새로운 시도에 대한 부담감은 약간 있었다. 또 이번 영화가 멜로와 액션을 겸한 복합장르였기 때문에 관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고민되더라.


- 전작 <그대안의 블루>, <시월애>가 로맨스 멜로였다면 이번 <푸른소금>의 장르는 액션이 가미된 멜로 드라마다. 기존의 작품성향과 다르게 장르를 변형시킨 이유가 무엇인가

  영화감독으로서 가지고 있는 철학이 하나 있다. ‘성공하든 실패하든 어떤 것을 따라가기 보다는 새로운 도전을 한 가지씩 꼭 해야한다’는 것이다.
  이번 영화에는 멜로라는 기본 전제에 액션과 미스터리를 약간 가미했다. 이게 멜로인지 액션인지 어떤 장르를 따라가야 하는지 관객들이 혼란스러워 했을 것이라 짐작한다. 요즘에는 단일 장르가 강조되다 보니 관객들은 심플한 장르에 익숙해져 있는 것 같다. 그래도 ‘신선하다, 새롭다’는 반응이 많았다. 감상평도 극단적으로 오가고 있는데 참 재밌다. 이런 논쟁을 좋아하기도 하고.


- 촬영을 하면서 수업도 병행해야 했을텐데. 많이 힘들었을 것 같다
  수업 준비도 해야하고 촬영시간도 맞추느라 힘들었지만 내가 작업을 하고 있으니 학생들과 현장의 느낌을 공유할 수 있어 좋았다. 일부 학생은 내가 쓴 시나리오 모니터링을 해주기도 했고 직접 도와주는 친구들도 있었다. 현장에 불러서 촬영하는 걸 보여주고 싶었는데 주로 촬영이 지방에서 진행되다보니 잘 안됐다.


- 이번 영화를 통해 전달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있나
  요즘 젊은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하는 것 같다. 취업도 잘 안되고, 경쟁도 가혹하고… 지치고 힘든 삶을 사는 친구들에게 ‘누군가 나를 지지하고 응원하고 있구나’ 하는 그런 따뜻한 메시지를 전달하고 싶었다. 키다리아저씨처럼 말이다.


- 배우 신세경이 중앙대 제자다. 신세경을 캐스팅하는데 중앙대라는 공통 분모가 영향을 주었나

  같은 중앙대라는 점 때문에 친근감은 느꼈지만 그걸로 캐스팅에 영향을 주진 않았고 그럴 수도 없었다. 연기 적합자를 캐스팅 해야하는 상황이었다. 또 신세경은 연극 전공이었기 때문에 학교에서 마주칠 일이 없었다.


- 신세경과 송강호의 조합이 굉장히 새로웠다. 송강호는 누구나 인정하는 연기파 배우지만 브라운관에서 신세경은 아직 다듬어지지 않은 신인이다. 스타일도 이미지도 다른 두 배우를 주연으로 삼기까지 쉽지 않았을 것 같은데 
  솔직히 걱정됐다(웃음). 한편으로는 나와 송강호 그리고 신세경의 스타일이 너무 달라서 어떤 조합이 될지 굉장히 궁금하기도 했다. 막상 같이 일을 해보니 신선하다는 느낌을 많이 받았다. 새롭기도 했고.


- 요즘 트위터를 통해서 팬들과 활발한 소통을 하고 있는 걸로 안다. 팔로워가 1만 3500여명이나 되던데. 트위터에 ‘이번 영화는 사실상 패배’라는 코멘트를 남겨 화제가 되기도 했다

  이번 영화에는 훌륭한 배우들과 여러 가지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음에도 예매율이 높게 나오지 않았다. 감독으로서 그런 상황을 패러디를 통해 재미있게 쓴 것인데 다들 심각하게 받아들이더라(웃음).


- 또 최근에는 직접 극장을 찾아다니며 ‘관객과의 대화’를 이어가고 있는 걸로 안다. 이렇게 관객과 소통을 위해 활발히 움직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관객들의 주관적이고 직접적인 코멘트를 듣는 것이 다음 작품을 준비하고 기획하는데 상당한 도움이 된다. 
  지금 영화 전문가나 평론가들은 상업영화와 관객 사이를 매개하는 능력이 없다. 평론가들은 예술적인 부분만 평가한다. 하지만 관객들은 상업영화나 장르에 대한 다양한 시선을 가지고 있다. 가끔 관객들의 블로그 글을 보면 전문가들보다 내 의도를 더 깊이 파악하고 꿰뚫고 있어 놀라곤 한다. 그래서 관객과 감독이 직접 소통하는 것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 이현승 감독에게는 항상 ‘감각적 영상미와 색채미의 대가’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특히 이번 영화의 엔딩장면인 ‘염전신’에서 그 진면목을 전부 토해낸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제일 공들였던 부분이 바로 염전신이다. 염전신 촬영이 엄청 추운 겨울에 진행됐다. 총을 맞고 쓰러진 송강호의 표정이 꿈인지 현실인지 모호하게 처리됐어야 했는데 얼굴연기에 무리가 있었다. 송강호가 이를 덜덜 떨면서 몇 번이나 염전에 빠졌지만 날씨가 너무 추워서 더 이상의 촬영이 불가능했다. 물을 데워도 보고 온갖 방법을 썼지만 잘 안되더라. 그래서 그 이후에 신세경 중심으로 이야기를 전환했다. 그러면서 엔딩이 급격하게 해피엔딩으로 비약됐다. 이 점은 나에게도 아쉬운 부분이다.


- 이현승의 영화는 스토리보다 이미지에 더 많은 무게를 두고있는 것 같다. 그래서인지 스토리가 탄탄하지 못하다는 지적을 받기도 하는데. 어떻게 생각하나
  스토리와 이미지는 영화를 구성하는 양 축이다. 대중들이 너무 스토리 중심으로 영화를 보다 보니까 감독들이 다 스토리를 중요하게 생각한다. 스토리는 당연히 중요한 요소이긴 하지만 그것이 영화의 전부라고 생각하진 않는다.
  감독은 시나리오를 영상으로 번역한 사람이 아니다. 시나리오 이상을 표현하는 것이 감독이다. 요즘 감독들은 개성이 없다. 어떤 사람이 ‘한 명의 재능있는 감독이 영화를 다 만드는 것 같다’고 말한 적이 있다. 작품 간의 별 차이가 없다는 뜻이다.


- 영화감독 모임 ‘디렉터스 컷’의 대표를 맡고있다. 주로 어떤 활동을 하나
  최근 ‘한국 영화감독 네트워크’라고 이름을 바꿨다. 원래 사적인 모임에서 출발했는데 이게 커졌다. 감독들이 모여 친목을 쌓고 영화에 대한 생각을 교환한다. 또 미장센 장편 영화제를 통해 후배들을 양성하고 있다.
  연말에는 ‘디렉터스 컷 어워드’라는 시상식에서 올해의 감독, 올해의 연기자를 선정한다. 또 부산영화제에 어떻게 참여할까 같이 고민하기도 하고. 박찬욱, 봉준호 등 대한민국의 쟁쟁한 감독들은 대부분 속해있다. 그 중에서 김성수 감독은 제일 친한 친구이자 동료다.


- 앞으로의 계획은
  그동안 영화를 왜 찍지 않느냐라는 질문을 많이 받았다. 영화는 자본과 예술의 화학작용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영화자체도 중요하지만 동시에 투자도 되어야한다. 예전에 여주인공 중심의 시나리오도 쓴 적이 있었는데 투자가 잘 안되더라. 항상 서두르지 않고 천천히 작품을 준비하고 싶다. 내가 찍고 싶은 게 잘 안되면 굳이 찍지 않겠다는 생각도 있다.


- 중앙대 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모든 분야에서 창의적인 마인드와 태도를 가지라고 말해주고 싶다. 옛날에는 누가 좋은 정보를 가지고 있느냐하는 싸움이 전부였다. 하지만 이제 무언가 창작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이 더 중요한 시대다. 
  나와 같이 영화를 하던 한 친구가 있었다. 어머니가 편찮으셔서 영화를 그만두고 식당을 차렸는데 가끔 식당에 놀러가면 자기가 개발한 이상한 음식을 자꾸 먹이더라(웃음). 얘가 왜이러나 싶었는데 그 때쯤 퓨전음식이 크게 유행해서 친구 음식점이 대박났다. 무엇을 하든 새로운 도전을 하고 모험할 줄 아는 마인드만 있다면 무엇이든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소윤 기자 abc@cauon.net

                                                                 

 

이현승

학력 
홍익대학교 시각디자인 학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광고홍보 석사 

작품 
1992 영화 <그대안의 블루> 감독
1995 영화 <네온 속으로 노을지다> 연출
2000 영화 <시월애> 감독
2011 영화 <푸른소금> 연출 등 다수 작품

수상경력  
1993 제31회 대종상 영화제 미술상
1993 제14회 청룡영화상 신인감독상
1993 제4회 이천 춘사대상영화제 신인감독상 등

경력사항
1998~ 영화감독 모임 ‘디렉터스 컷’ 대표
2001.7 영화인회의 사무총장
현재 중앙대학교 영화전공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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