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가 9살 되던 해 6.25 전쟁이 터졌다. 아버지는 보도연맹원으로 몰려 죽고 하나뿐인 형은 감쪽같이 사라졌다. 험난한 세상살이 알 턱없는 철부지 9살. 얼떨결에 그는 가장이 되었다.
20살, 한창 젊음을 즐겨야 할 나이에는 5.16 군사정변을 경험한다. 끝이 보이지 않는 독재체제와 부당한 사회에 대항하여 얻은 것은 두 번의 감옥살이 뿐이었다. 절망스러운 그 시절, 희망을 품으면 빛이 보인다는 믿음으로 찬 계절을 꿋꿋이 버텨냈다.
그렇게 살아온 인생이 올해로 벌써 70년. 시대의 상처로 청춘을 보낸 문학평론가 임헌영을 만났다.

역사의 과도기,  그 중심에 임헌영이 있었다

- 남다른 가족사가 있는 걸로 안다
  우리가족은 분단사의 비극을 그대로 담고 있다. 전쟁통에 아버지, 삼촌, 형을 모두 잃었다. 우연한 기회에 실종됐던 형이 북한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됐다. 이산가족상봉을 통해 형을 만나려고 했지만 형은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 대신 조카들을 만날 수 있었는데 그 때 심정이 참 참담하더라.


- 대학시절에 중대신문의 기자로 활동했던 것으로 안다. 또 대학 졸업 후에도 7년간 기자로 활동했는데. 혼란스러운 시대 상황에서 많은 것들을 지켜보고 느꼈을 것 같다
 대학교 1학년 때 5.16 군사정변이 일어났다. 갑작스런 쿠데타로 학교는 조기방학을 하고 대학생들은 시위를 시작했다. 대학 다닐 때 가장 큰 이슈는 6.3 한일협정반대 시위였다. 당시 한나라당 이재오 의원이 대학 후배였는데 시위를 하다가 제적을 당했다. 당시 중대신문 기자들도 모두 시위에 참여했다. 그 뒤로도 월남파병반대 운동 등 사건사고가 굉장히 많았다.
대학 졸업 후에는 약업신문과 경향신문에서 기자로 활동하며 30대 말까지 군사정권 하에서 청춘을 보냈다.


- 1974년 문학인 사건과 1979년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된 적이 있다. 두 번의 감옥생활을 겪었다      민족사를 바로잡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당시 내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인권이 탄압받는 독재체제 하에서 학생이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을 뿐이다. 또 다시 그 시절로 돌아간다고 해도 같은 일을 할 것 같다.


- 노태우 정부시절에는 사찰 대상이 되기도 했다
  내가 사용하는 모든 통신이 공개적으로 노출되어 있었다. 남들이 들어도 되는 말만 하고 예민한 말은 안했다. 내가 하는 말은 모두 도청 당하겠거니 했고 그 당시 그렇게 하는 게 훈련이 되어버렸다. 단순한 사찰 정도가 아니었다. 사생활은 없었다.


- 시대적 환경에 많은 피해와 상처를 받고 살았다. 당시 사회가 미웠을 법도 한데
  사회가 밉기 보다는 우리 국민이 불행하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를 누리지 못하고 자기 권리가 무엇인지 찾지 못하는 국민들을 보며 많이 안타까웠다.

평론,  올바른 심판자의 역할 하는 것

- 1966년 『현대문학』을 통해 문학평론가로 등단했다. 창작이 아닌 평론을 선택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
  창작할 재주가 없어서 평론을 시작했다(웃음). 글 쓰는 감각은 없었지만 문학을 많이 좋아했다. 문학작품을 접하면서 ‘인생이란 무엇인가’하는 고뇌를 많이 했다. 때로는 비관론자가 되었다가 염세주의자, 허무주의자가 되기도 했다. 니체의 사상에 빠져보기도 하고 쇼펜하우어에 미쳐보기도 하면서 철학적인 고민을 많이 했다. 이렇게 많은 것들을 거치는 과정에서 인간이 얼마든지 행복하게 살 수 있다는 생각을 했다. ‘왜 우리는 이럴까, 내가 할 수 있는 방법은 뭐가 있을까’ 생각했고 ‘내 아픔을 써보자, 내 아픔을 쓰다보면 나처럼 아픈 사람들이 위로 받겠지’ 하는 생각에 문학의 길을 선택했다. 


- 요즘 문학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나
  요즘 젊은 작가들의 작품이 볼 만한 가치가 있는가에 대해 대단히 비판적이다. 내가 평론가인데도 이해가 안가는 소설이 많다. 재미도 없고 가치도 없다. 지금 우리나라 소설은 20대만 볼 수 있는 소설, 30대만 볼 수 있는 소설 이렇게 나뉜다. 모든 사람이 이해하고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 별로 없다. 나를 엉터리 평론가라고 말할 수도 있고 시대의 흐름을 모른다고 말할 수도 있다.
  톨스토이나 괴테와 같은 대문호들의 작품은 흔히 종합대학이라 불린다. 인류가 당면하고 있는 모든 것이 작품에 담겨있기 때문이다. 심지어 천문학, 광물학, 식물학까지 전부 다 나온다. 하지만 우리나라 작가들은 경험이 너무 적고 스펙트럼이 단조롭다. 특히 지금 젊은 세대들이 쓴 소설은 자기가 경험한 것을 예쁘게 포장해놓은 공예품 같다.


- 한국 평론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지금 우리나라의 정치, 경제, 교육, 문화, 여성 등 모든 분야에 상업화 논리가 크게 작용하고 있다. 문학도 마찬가지다. 잘 팔리는 소설, 잘 팔리는 시인이 목적이 되어버렸고 평론은 상업주의의 선전물로 전락해버렸다. 칭찬하는 평론만 있을 뿐 비판하는 평론이 없다. 문학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평론가의 기능이 없는 사회다. 이를 고치는 방법은 소비자에게 있다. 소비자 중에서도 특히 학생들이 나서서 올바른 심판자 역할을 해야 하는데 학생들마저도 썩었다. 기존 지식인들보다 더 썩었다.


- 어떤 점에서 학생들을 그렇게 평가하는 것인가
  요즘 학생들은 공부를 너무 안한다. 대학이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있는 점도 있다. 하지만 전문화 시대의 학생들은 자기 전공과목 이외의 공부를 스스로 찾아서 해야한다. 대학은 일종의 사교클럽일 뿐이다. 대학에서 모든 공부를 배울 수 있다는 기대를 하면 안된다. 스스로의 것을 찾아야 자기의 길이 열린다.

문학은 내 고향,  사회운동은 하숙집

- 문학평론가이기도 하지만 민족문제연구소장이기도 하다. 지난 2009년에는 20여년에 걸쳐 만든 『친일인명사전』을 발간했다. 평생을 친일청산에 투자한 것이 어린 시절의 아픔과 관련이 있나
  그렇다. 후손들에게 똑같은 아픔은 물려주고 싶지 않았다. 잘못된 과거사를 반성한 뒤에 올바른 역사를 세워나가고 싶었다. 『친일인명사전』의 수정작업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학문적으로 아주 잘 되어있는 책이다. 우리가 찾을 수 있는 자료는 모두 찾아 많은 노력과 시간을 투자해 공정하게 만들었다.
  친일청산 이외에도 민족문제연구소는 동아시아 전체 과거사에 관심을 가지고 미래평화를 구축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 임헌영 선생님은 역사의 모진 풍파를 직접 겪은 이 시대의 살아있는 증인이다. 역사의 소용돌이 속에서 살면서 가장 안타까웠던 점이 무엇인가 
  하나 둘이 아니다(웃음). 그래도 그 중에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은 남북분단이다. 8.15 광복이후 외세의 간섭이 있었을 때 민족 내부에서 굳건히 견뎌냈다면 분단이 되지 않을 수도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이런 나의 경험들을 바탕으로 한 가지 충고해주고 싶은 게 있다. 모든 것은 정치의 지배를 받는다는 것이다. 현대사회에서는 정치가 운명을 좌우한다고 할 만큼 정치와 관련되지 않은 것들이 없다. 등록금 문제도 정치가 정하고 복지문제, 교육문제 모두 정치가 정한다. 올바른 정치가 서지 않는 한 올바른 사회로 나아갈 수 없음을 명심했으면 좋겠다.


- 본업은 문학평론가이다. 그동안 교육자, 언론인, 사회운동가 등으로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을 했다. 임헌영의 진짜 모습은 무엇인가
  내 고향은 문학이고 사회운동은 하숙집이라고 농담 삼아 말한다(웃음). 사회 운동을 하면서도 한 켠에는 문학에 대한 미련이 항상 남아있었다. 이제 나도 70세다. 사회적인 활동을 줄이고 문학에 더욱 집중하고 싶다.


- 중앙대의 발전상은 어떻게 생각하나
  오늘 우연히 신문을 보다가 중앙대에서 시간강사 대신 강의전담교수제를 도입한다는 기사를 봤다. 참 잘한 일이다. 기사를 보고 정말 뿌듯했다.
  우리 중앙대 출신 중에는 각 분야에서 뛰어난 인재가 많다. 하지만 다른 대학에 비해서 응집력이 약한 것은 사실이다. 응집력이 약한 것은 학교 전통이 제대로 잡혀있지 않아서라고 생각한다. 응집력을 강화하기 위해서 대학본부가 더 많은 관심을 가져주었으면 좋겠다.  
 

정소윤 기자 abc@cauon.net
 

 

 

임헌영

학력 
중앙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중앙대학교 대학원 현대문학 석사

경력 
2008~ 세계한민족작가연합 공동대표
2006~2008 한국문학평화포럼 회장
2003~ 민족문제연구소장
2003~2005 KBS 시청자위원회 위원장
2003~2007 한국문학평론가협회 회장

수상내역  
1988년  한국문학작가상 평론부문상
1996년  편운 조병화 문학상(평론상 부문)
2010년  제15회 현대불교문학상 평론 부문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