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예능대세는 서바이벌. 2011년에도 예능은 현실을 반영한다. 프로그램 속에 반영된 경쟁구도는 현실 곳곳에 존재하는 우리사회의 기조다. 경쟁은 어느 세대에나 존재했다. 그러나 우리세대의 경쟁은 사회전반에 적용된다는 점에서 과거와 구별된다. 살벌한 경쟁이 보편화 된 것은 1997년 IMF사태 이후다. 모두가 함께 무너질 위기 속에서 선택된 해결방식은 ‘선택과 집중’이었다. 구조조정이 이뤄졌고, 남아야 하는 자와 떠나야 하는 자가 결정됐다. 사람들은 이전과 다른 치열한 경쟁을 시작해야만 했다. 나와 가족의 안위가 달린 생존경쟁이었기 때문이다. 
 

  2011년 대한민국에서 살아가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경쟁 속에 있다. 아이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도 전에 영어유치원을 다니며 경쟁력을 기른다. 중고등학생은 좋은 대학에 가기 위해 경쟁하고, 그 뒤엔 취업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싸운다. 취업 후에는 승진을 위해, 잘리지 않기 위해 경쟁한다.
 

  경쟁이 만연한 현실이기에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대중에게 더 깊이 와 닿는다. 신광영 교수(사회학과)는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양극화 속에서 좌절감을 느낀 사람들이 어려움을 극복하는 이들의 모습을 보며 위로받고 즐거워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시청자는 수많은 경쟁자들과 맞서 싸우는 출연자가 마치 자신인 양 감정이입을 한다. MBC <단비>에 소개된 가난한 어린이보다 Mnet <슈퍼스타K2>의 환풍기 수리공 허각에게 사람들은 더 큰 연민을 느낀다. 그의 현실이 자신과 더 가깝고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는 공정경쟁에 대한 희망도 담겨있다. 저녁뉴스에 등장하는 예비 국무위원들의 청문회 소식은 현실이 결코 ‘공정사회’가 아님을 보여준다. 그들이 사는 세상에는 위장전입 한 번 안해본 사람이 없고, 제대로 군대를 다녀온 남자가 없다. 우리는 모두 알고 있다. 현실은 결코 공정하지 않다. 고액과외의 수혜를 받으며 자란 강남아이와 가난한 달동네 아이의 인생은 다를 수 밖에 없다. 각고의 노력 끝에 실력을 쌓아도 때로는 학연, 지연이 더 중요한게 현실이다.
 

  하지만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다르다. 오직 실력으로 겨루는 공정경쟁을 추구한다. 시청자는 경쟁이 공정함을 믿고, 규칙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고 여긴다. 때문에 MBC <나는 가수다>에서 김건모에게 재도전 기회가 주어지며 규칙이 깨졌을 때 시청자는 인터넷 게시판을 질타로 가득채웠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공정한 경쟁은 환상이다”라고 말한다. <슈퍼스타K>처럼 수백만명의 지원자 중 한사람을 뽑는 프로그램에서 선발기준은 결코 완전하게 공정할 수 없다. 애초에 실력을 평가할 수 있는 절대적 기준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시청자 투표에선 실력이 아닌 외모나 출신지역이 결과에 영향을 주기도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공정함을 믿고, 공정경쟁을 희망한다. 이는 현실에서 느끼는 부족함을 채우는 한편, 불공정한 현실을 보여준다. 
 

  처음으로 자신의 등수를 통보받은 나이는 몇 살인가.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서열화하기 좋아하는 우리사회 모습을 보여준다. 우리는 사는 동안 내내 순위 매겨진 채 살아간다. 최근 일제고사가 부활해 학교간 서열경쟁에 불을 붙였다. 일선학교들은 서열에 집착하며 성적올리기에 열을 올리고 있다. 초등학생들도 순위경쟁에 나서게 됐다.
 

  신광영 교수(사회학과)는 “한국 사회는 편집증적일 정도로 순위에 집착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점수보다 등수에, 얼마나 잘 하나가 아니라 누구보다 잘 하나에 더 관심을 둔다.
 

  <나는 가수다>는 순위매기기를 이용해 흥미를 끈 대표적인 프로그램이다. 전혀 다른 장르의 가수들을 하나로 묶어 그들의 순위를 정한다. 그러나 애초에 그들을 평가할 객관적 기준은 없다. 노래에 대한 전문가 의견도 각기 다르고, 예상하는 순위도 다르다. 그럼에도 우리는 이들을 모아두고, 일등과 꼴찌를 가른다. 이는 무엇이든지 서열화하는 우리사회의 수직적인 모습을 반영한다. 우리는 일등에 집착하고, 일등만 기억한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은 대한민국이 ‘연예인 지망생 공화국’임을 보여준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이 성공할 수 있었던 하나의 요인은 수많은 지원자가 존재했기 때문이다. 서바이벌 프로그램에서 우승해 스타가 될 확률은 희박하다. <슈퍼스타K3>의 경쟁률은 무려 197만대 1이다. 그런데도 많은 사람들은 스타가 될 수 있을 것이라 꿈꾸며 오디션에 지원한다. 왜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스타가 되길 원하는 것일까.
 

  과거 연예인은 ‘딴따라’에 불과했다. 하지만 엔터테인먼트 산업이 성장하고, 대중문화가 발전하면서 연예인들은 부와 명예를 누리게 됐다. 이승조 교수(신문방송학부)는 “스타가 되는 것은 고착화된 계층을 뛰어넘을 수 있는 가장 손쉬운 방법”이라고 말한다.
 

  양극화가 고착되고, 계급상승이 점차 어려워지는 현실 속에서 연예인이 되는 것은 가장 쉽고 빠른길로 여겨진다. 사람들은 키작은 환풍기 수리공 허각의 인생역전을 보며 희망을 갖는다. 내일의 허각을 꿈꾸는 것이다. 허각의 감동드라마 뒤에는 134만명의 탈락자가 존재한다는 사실은 망각한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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