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는 시대를 싣고

TV프로그램도 패션처럼 유행을 탄다. 90년대 양심시민을 찾아 냉장고를 전해주던 김영희 PD의 <이경규가 간다-숨은 양심을 찾아서>는 당시 폭발적인 시청률을 보였다. 그러나 2009년, 김영희 PD가 들고온 ‘삶이 고단한 이웃들에게 값진 웃음 선물을 전한다’는 <단비>는 4%의 시청률로 9개월만에 종영해야만 했다. 두 프로그램 모두 같은 PD의 작품이며, ‘공익 예능’이라는 맥락에 놓여있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하재근 문화평론가는 “시대별로 대중들이 원하는 것이 다르다”며 “TV프로그램이 대중들의 욕구를 반영하다보니 시대에 따라 일정한 패턴의 프로그램이 편성되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말한다. 

 
예능을 알면 사회가 보인다

     

왼쪽부터 KBS<유머일번지> , SBS<이홍렬쇼>, MBC<러브하우스>, MBC<무한도전>

1990

못했던 말, 이제는 다 할거야
90년대, 장동건 김희선도 뿅망치는 피할 수 없었다. 굴욕의 뿅망치를 피하기 위해 게스트는 고개를 재빠르게 돌려보지만 MC의 참참참 실력은 배테랑 급이다. 뿅망치 세례가 지나면 게스트는 머쓱히 망가진 머리를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야참을 만들기 시작한다. 토크와 요리를 결합시킨 이 토크쇼는 당시 시청률 30%를 돌파한 <이홍렬쇼>다.
<이홍렬쇼>와 같이 MC의 이름을 건 토크쇼는 90년대를 풍미했다. 1989년 KBS 2TV에서 방송된 한국 최초 토크쇼 <자니윤쇼>를 시작으로 토크쇼 프로그램이 밀물처럼 몰렸다. SBS에서는 1993년 <주병진쇼>, 1996년 <이홍렬쇼>, 1998년 <김혜수의 플러스 유>등 끊임없는 토크쇼를 선보였다. 1998년 KBS에서 방송을 시작한 <서세원쇼>는 2002년까지 5년간 엄청난 인기를 이어갔다.
90년대는 대중문화가 본격적으로 서구화 되던 시기였다. 진행자와 게스트가 1:1형식으로 이야기를 나누는 토크쇼가 이미 미국에선 정착된 상태였고, 한국은 미국 시스템을 차용했다. 하재근 대중문화평론가는 “미국의 프로그램을 벤치마킹한 토크쇼를 보며 대중들은 세련된 문화적 양식으로 받아들였다”고 말했다. 새로운 형태의 프로그램에 대중들의 반응은 뜨거웠다.
토크쇼가 흥할 수 있었던 이유는 시대적상황과도 맞물린다. 90년대엔 군사정권이 막을 내리고 언론통제가 풀리게 된다. 이승조 교수(신문방송학부)는 “개인의 생각이나 의견 표출이 불가하던 80년대엔 <유머일번지>와 같은 개그 프로그램에서의 사회 풍자가 전부였다”고 전했다. 언론통제가 풀리자 말을 자유롭게 구사할 수 있는 토크쇼 프로그램이 인기를 끌었던 것이다.


2000

국민여러분 우리의 손을 잡으십시오
2000년대로 넘어오면서 새로운 유형의 프로그램이 주목을 받게 된다. MBC에서 방영했던 <느낌표>의 ‘책책책 책을 읽읍시다’가 대표적인 사례다. 이 프로그램은 2000년대 초반 『괭이부리말 아이들』, 『봉숭이 언니』 등 국민도서를 만들어내며 큰 인기를 누렸다. 2000년 첫 방송을 시작으로 MBC <일요일 일요일 밤에>의 간판 코너로 자리잡았던 ‘러브하우스’도 마찬가지다. 외풍에 뺨이 언 가족들은 따뜻한 꿈과 희망의 집을 선물받는다. ‘러브하우스’공식주제가가 나올 때면 시청자들은 왠지 모를 뭉클함에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처럼 토크쇼의 바통을 이어받은 공익성 프로그램이 흥했던 시기는 참여정부가 들어섰던 시기와 일치한다. 대화와 타협, 봉사하는 행정, 참여와 통합의 정치 개혁 등 참여정부가 내세웠던 공약들이 2000년대 초반 인기를 얻었던 프로그램들과 같은 맥락에 있는 것이다. SBS에서 방영된 개그맨 강성범과 개그우먼 이영자가 출연했던 <해결! 돈이 보인다> 역시 90년대 후반 IMF로 구조조정이 행해지며 자영업자가 늘게 되는 상황에서 탄생한 프로그램이었다. 동일 업종 내에서 성공한 대박사례와 실패한 쪽박사례를 비교해 자영업자들에게 성공의 길잡이를 제시하는 이 프로그램은 2003년부터 2005년까지 방영됐다. 강내희 교수(영어학과)는 “IMF를 겪고 참여정부시대가 열리며 시대적 위기를 개척해 나가자는 메시지를 담은 희망적이고 위로적인 프로그램이 등장한 것”이라고 말했다.

 

2005


좌절은 무한 도전으로 극복하자
2000년 중반을 넘기며 TV프로그램은 또 한 번 큰 변화를 겪게 된다. 2005년 4월 MBC <무한도전>을 시작으로 ‘리얼 버라이어티’시대가 도래한다. 자칭 평균이하라고 말하며 등장한 여섯 남자는 프로그램 이름대로 무모한 도전을 한다. 그리고 평균이하 여섯의 도전은 먹혔다. 시청률은 고공행진을 하고 SBS와 KBS에서 <무한도전>을 벤치마킹한 <라인업>, <1박 2일>, <남자의 자격>등의 프로그램을 줄줄이 선보였다.
프로그램의 새로운 바람이 분 2000년대 중후반은 불투명한 미래에 대한 불안감이 급증한 시기다. 20세기 말 고개를 들던 청년취업문제가 10년 이상 해결책 없이 누적되며 대중들의 불안감은 고조됐다. 신광영 교수(사회학과)는 “빈곤층 급증, 노후불안정 등 준비되지 않은 미래로 인해 사회적  방황의 징후가 보였다”며 2000년대 중후반의 분위기를 설명했다. 삭막해진 사회 속에서 리얼버라이어티의 타이틀은 ‘도전과 성취’였다. 혼란스러운 대중들에게 좌절과 도전 그리고 극복의 과정을 보여줌으로써 어려운 상황을 이겨낼 수 있다는 긍정의 메시지를 보내는 것이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