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이 만난사람 : SBS 앵커 정성근 동문(광고홍보학과 74학번) 

  목동 SBS 신사옥을 찾았다. 분주하게 장비를 옮기는 스태프들, 사원증을 걸고 방송국을 활보하는 직원들, 곳곳에서 눈에 띄는 연예인과 아나운서까지. 방송국임을 실감나게 해준 그 곳에서 정성근 앵커를 만날 수 있었다. 중후한 아우라가 풍기는 미중년 정성근 앵커. 그와의 인터뷰는 오래된 여고친구들과의 수다처럼 편안했다.

  “한류에 열광하는 일본. 언젠가는 카라나 동방신기도 일본 아이돌이라고 우길겁니다. 김치를 기무치로 바꿔서 상표 등록한 것처럼 비빔밥도 곧 일본 고유 음식이 될 판입니다.”
  일본 자민당 의원 3명이 독도 영유권을 주장하며 입국을 시도한 그 날 정성근 앵커가 남긴 촌철살인의 클로징 멘트다. 때로는 사회문제를 날카롭게 지적하고 때로는 사회를 따뜻하게 안아주기도 하는 정성근 앵커. 사람과 사물의 인연은 희유하다는 불가의 가르침인 '맹구우목(盲龜遇木)'을 늘 마음에 품고 있다고 말하는 따뜻한 남자. 그를 지난 24일 목동 SBS 신사옥에서 만났다.

- 매일 밤 12시 15분에 생방송되는 SBS 나이트라인 앵커로 활약하고 계신데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오후 2시쯤 출근을 해서 먼저 회의결과를 봅니다. 그리고 나서 그날의 아젠다(agenda)가 무엇인지 체크하죠. 저녁에는 스탭들과 밥을 먹고 미리 섭외된 출연자와의 녹화를 진행해요. 취재는 안하고 있어요. 방송이 끝나면 보통 새벽 2~3시쯤 집에 도착해요.
 

- 생방송을 진행하다보면 돌발 상황이 많이 발생할 것 같은데요. 가장 기억에 남는 돌발 상황은 없나요
  돌발 상황이 바로 생방송의 묘미에요. 돌발 상황이 많을수록 생방송이 재밌는데 요즘에는 별로 없어서 재미없어요(웃음). 1991년 남북기본합의서 채택 방송 진행을 후배기자와 둘이서 맡았었는데 큐 시트 없이 6시간 동안 내내 생방송을 했던 적이 있어요. 그게 가장 기억에 남아요. 


- 앵커를 흔히 방송기자의 꽃이라고 합니다. 앵커가 되기까지 많은 어려움과 노력이 있었을텐데요, 지금 이 자리까지 올 수 있었던 배경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앵커는 기자생활의 꽃이다? 그건 좀 잘못된 것 같아요. 앵커는 영원한 3D에요. 앵커가 되는 건 어렵기 때문에 정말 영광스러운 자리인 건 맞지만 꽃까지는 아닌 것 같아요. 저는 맨 처음 KBS 공채 10기로 입사했어요. KBS 시절에도 앵커로 발탁된 적이 있었어요. 사투리가 하나도 없다는 장점 때문이었죠. 아버지가 군인이셔서 어린 시절부터 지방을 많이 돌아다녔었거든요. KBS 재직 시절에는 그 점이 좋게 작용한 것 같아요. 30년 가까이 언론계에 있다보니 경험들이 많이 축적되었어요. 스펀지처럼 내 몸에 배서 상황에 적합한 단어나 문장, 팩트가 빠르게 튀어나올 수 있게 된 것이죠. 회사 입장이나 내 입장에서도 내가 앵커를 하는 것이 효용성을 극대화 할 수 있는 선택이었어요. 내가 특출나서 그런 것은 아니고요.
 

- 언론계에 입문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대학교를 다니던 어느 시점에 ‘너무 늦었다, 너무 놀았다’는 생각이 문득 들었어요. 학과 공부도 제대로 하지 못했구요. 그래서 고시공부를 시작했어요. 행정고시와 사법고시 둘 다 준비했었는데 운 좋게 1차를 쉽게 패스했어요. 그런데 2차는 계속 떨어졌죠. 고시공부를 하던 도중에 우연찮게 언론사 시험을 준비하던 친구들에 의해서 원서를 접수하게 됐어요. 그게 KBS였죠. 그런데 친구들은 다 떨어지고 저만 붙었어요(웃음). 고시공부를 해두었던 게 많은 도움이 됐던 것 같습니다. 시험에 합격하고 나서 연수원에 들어갔더니 대우가 굉장히 좋았어요. 매일 저녁 선배들과 대화하는 것도 좋았고요. 그래서 몇 달만 해보기로 결심했죠. 그게 시작이에요. 처음부터 언론인의 꿈을 가지고 있었던 건 아니었어요. 생계형 언론인이었죠(웃음).
 

- KBS 근무 당시 방송국의 분위기는 어땠나요
  지금처럼 복잡하지는 않았어요. 그 때 분위기는 지금보다 단순해서 결정이나 판단을 하기에 참 좋았죠. 환경도 점점 변했고 방송에 연관되어 있는 세력집단도 너무나 많아졌어요. 고려해야 될 것도 너무나 많고 기사쓰기도 옛날보다 더 어려워진 것 같아요.
  KBS 입사 5년차에 방송사에 노사분규가 있었어요. 파업도 있었구요. 조용히 기자의 길을 가는 것과 사회세력 간의 충돌, 갈등 사이에서 피곤함을 느꼈던 게 사실이에요. 기자 본연의 것이 무엇인지에 대한 회의를 느끼고 있을 때 SBS가 개국을 했죠. KBS에서 정치부 기자로 근무하다가 개국과 동시에 SBS로 옮겨왔죠. SBS로 올 때는 정치부 차장으로 왔습니다.


- 2009년 MBC 신경민 앵커의 클로징 멘트가 사회적으로 화제가 된 적이 있었어요.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꼬집는 멘트가 논란의 시발점이었는데요. 보도에 있어 앵커의 역할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시나요
  그 논란의 출발점이 잘못된 것 같아요. 신문을 보면 팩트를 전달하는 스트레이트 기사가 있고 그것을 분석하는 박스기사도 있고 예측해주는 전망기사가 있죠.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방송이 워낙 임팩트가 크기 때문에 앵커의 여러가지 자질 중에 오피니언 리더로서 공평성만 강조하는 시각이 있긴 하죠. 절대적 개념의 공평성을 어겨서는 안되지만 분명히 그 자리에 앉아있는 앵커의 시각이 반영되어야 그게 바로 앵커의 멘트라고 생각해요. 앵커마저도 그 자리에 앉아서 팩트만 전달한다고 하면…. 사회적 시각이 잘못된 것 같습니다.


- 정성근 앵커가 생각하는 좋은 뉴스란 무엇인가요 
  언론이 존재하는 이유는 물론 팩트 전달입니다. 그래도 그것보다는 좀 더 따뜻한 뉴스를 발굴해 낸다든지 사회적 아젠다를 선정하고 선도해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게 바로 사회발전의 흐름이구요. 그런 역할을 언론이 해주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경찰서에 가서 혹은 응급실을 뒤져서 ‘누가 죽었다’, ‘누가 자살했다’ 이런 것들은 정말 의미가 없는 것들이죠. 그런 기사만 쓰겠다고 열심히 공부해서 기자가 된 것은 아니잖아요.
 

- 정성근 앵커만의 앵커관이 있다면   
  전달하는 아이템마다 다르겠지만 아이템을 일반적인 사회의 눈으로 보려고 노력해요. 논리성이 필요한 아이템이라고 하면 대학교수를 대하는 마음가짐으로 카메라 렌즈를 대하고요, 사회의 따뜻함을 전달하려고 하면 카메라를 내 애인으로 설정하죠. 그런 식으로 전달을 하면 전달이 잘 될 거라고 믿고 지금까지 그렇게 해왔어요.
  우리 주변에서 보는 흔한 사람의 시각으로 절대 튀지 않게 뉴스나 메시지를 전달해주고 싶은게 나의 바람입니다.


- 대학시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한데요
  대학 다닐 때 고시공부를 하느라고 학과 공부를 제대로 못한 게 정말 아쉬워요. 기업에서 인턴도 해본 적이 있는데 깊이 빠져들지 못한 것 같아요. 카피라이터가 되어야겠다고 생각한 적도 있었는데 기회도 별로 없었구요.  
  그저 도서관에서 공부하고 정경대 건물 앞에서 스케이트보드 타면서 놀았어요(웃음). 여학생들 골탕도 먹이고 친구들과 잔디밭에 앉아 토마토 사다놓고 소주잔 기울이던 추억이 많이 생각나네요


- 최근에 중앙대 신임 언론동문회장으로 선출되셨는데요, 앞으로 어떻게 언론동문회를 이끌어 나가고 싶으신가요 
  중앙대 출신 중에 언론계에 진출해 있는 동문들의 숫자는 참 많아요. Quantity는 3~4위 정도 되는데 Quality를 따지면 그리 많지 않은 게 사실이에요. 이 부분은 후배들에게 자랑스럽지 못한 부분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래서 후배들을 많이 돕고 싶죠. 학교에 언론고시반이 있다고 들었어요. 언론시험을 준비하는 후배들을 위해 시험 준비에 도움이 되는 매뉴얼을 만들려고 합니다. 또 언론계에 갓 입사한 후배들을 위해 멘토링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해요. 실제로 회장단이 자주 만나서 논의를 많이 하고 있어요. 마지막으로 학교 행정이나 재정에 대해서 쓴소리를 많이 하려고 합니다. 미움을 받더라도요. 동문 간의 친밀도를 높이고 쓴소리를 많이 하는 동문회를 만들고 싶어요. 
 

- 후배들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면 
  미래를 위해서 현재를 저당 잡히는 어리석음을 범하지 말라고 전해주고 싶어요. 현재를 즐기고 현재를 소중하게 여겨야 해요. 미래를 위해서 너무 많이 저축할 필요도 없고 몸을 혹사할 필요도 없어요.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을 때 아끼지 말고 고백하라는 의미에요(웃음).
후배들을 보면 부러워 죽겠어요. 우리 같은 나이가 되면 남아있는 가능성은 10%밖에 안되지만 여러분에게는 젊음이라는 100%의 가능성이 있으니까요.  
                                                                                        정소윤 기자 abc@cauon.net

 


정성근

학력 
중앙대 광고홍보학 학사

경력 
2000          SBS 보도본부 보도국 국제부 부장
2004 ~       SBS 논설위원실 논설위원
2004          SBS 2004 아테네올림픽 현지 메인 MC
2008.06 ~  기상청 동네예보 자문위원회 자문위원
2011~        SBS 나이트라인 앵커
2011.07~    중앙대 언론동문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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