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랑스러운 동문 인터뷰 : 백용호 대통령실 정책실장
  • 정소윤 기자
  • 승인 2011.08.23 15:5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중앙대는 나에게 모교 이상의 존재"

백용호 정책실장이 청와대 집무실에서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모습.바쁜 업무와 잦은 회의로 지친기색을 내비쳤을 법도 하건만 시종일관 웃는얼굴로 기자의 질문에 답했다.   
-현재 대통령실 정책실장을 맡고 있다. 청와대 내에서도 핵심요직인 것으로 알고 있다. 정책실장이 청와대에서 어떤 역할을 맡고 있는지 설명해 달라

  청와대 내 모든 분이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어요. 단지 정책실장은 커버하는 영역이 넓을 뿐이죠. 경제, 교육, 문화, 복지, 통신, 환경 정책 등 통상적인 정책을 정책실장이 주관하는 시스템이에요. 정책이라는 것이 한 부처의 소관이 아니라 대부분 여러 분야에 걸쳐져 있는 것이 많아요. 때로는 부처 간 갈등이 있을 수도 있고 협의가 필요할 때도 있죠. 이럴 때 청와대가 나서서 갈등을 해소하고 협의하는 기능을 하는 것입니다.
  또 대통령께서 생각하는 정책방향에 대해 내각에 전달하기도 하고 또 내각이 생각하는 정책방향을 대통령께 전해 이해를 구하기도 합니다. 대통령께 많은 정보를 드려서 의사를 결정에 도움을 주기도 하구요. 한 마디로 대통령의 '정책 비서실'이라고 할 수 있어요. 정책과 관련한 기능을 총괄하는 자리입니다.

-공정거래위원장과 국세청장을 역임하고 지금은 정책실장 자리를 맡고 있다. 정부와 국민의 신임을 얻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이렇게 주변에서 백용호 정책실장을 높게 평가하는 요인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신임을 얻고 있다는 말은 나를 격려하기 위해 해주시는 것 같아요(웃음). 아쉬웠던 부분이 많이 있습니다. 이런 저런 부분에 대한 부작용도 예상했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죠. 주변에서 섭섭함도 있었을 거에요. 왜냐면 사람들의 생각들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그것들을 정책에 모두 반영하기는 어렵기 때문이죠. '이런 정책을 이렇게 해주셨으면 좋겠다'고 했지만 정책 결정을 다르게 한 경우 섭섭했을 것 같아요. 그런 부분들을 좀 더 세심하게 신경 쓰려고 해요.
  내가 신임을 얻고 있다는 말이 나온 것은 아마 소신껏 일을 처리하려고 노력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몇 가지 원칙을 정하고 그 원칙을 벗어나지 않도록 노력했기 때문에 그런 평가를 받은 것 같습니다. 단기적 평가에 연연하지 않고 정책실장으로서 원칙에 맞고 국민들에게 실질적으로 필요한 정책을 펴는 것이 나의 바람이에요.

-원래 경제학을 전공하신 걸로 알고 있다. 공정거래위원회나 국세청의 책임자로 임명될 때 주변에서 우려하는 시선도 있었던 걸로 안다. 하지만 막상 업무를 맡은 후에는 직원들의 내부 평가가 좋았던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전공이 경제학이에요. 재정, 경제법에 관한 일반적 지식은 공부를 했어요. 하지만 구체적 경제법 집행, 세부행정은 몰랐습니다. 다행히 공직자들과 일을 해보니 공직자의 능력이나 사명의식이 굉장하다는 걸 알게 됐죠. 그 분들 덕에 부족한 부분이 많이 보완됐어요. 그래서 아마 그런 평가를 받는 것이 아닐까요.
  내가 아는 공직자들은 대한민국에서 가장 우수한 인재들이고 국가에 대한 사명의식이 투철합니다. 공직자들의 도움을 받고 기본적 원칙을 가지고 직무를 수행하니 큰 어려움은 없었어요. 훌륭한 인재들의 덕을 많이 봤습니다. 

-공직에는 현 정부 들어 처음 등용된 것으로 알고 있다. 공직에 오른 이후 가장 보람을 느꼈던 순간은 언제인가

   꼭 집어서 말하기는 어려워요. 보람이라는 것은 자기가 생각했던 나만의 철학이 정책에 반영되거나 '이건 꼭 시행되었으면 좋겠다'라고 하는 정책이 시행될 때 느끼는 것 같아요. 또 전체적으로 국민들의 삶의 질이 개선되면 그것이 바로 모든 공직자들이 보람을 느끼는 부분일 것 입니다.
   사람들이 내가 정책실장으로 와서 어떤 일을 해냈다라고 평가할 때 그것이 모두 '내 공이다'라고 말할 수 없어요. 나의 아이디어가 약간 가미된 것도 부분도 있지만 당시 많은 사람들이 협력해주었기 때문에 가능할 수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죠.

-향후 계획을 듣고 싶다

   계획대로 안되는 게 인생인 것 같아요(웃음). 젊은 시절에는 기업에서 근무도 해보고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기도 해봤어요. 또 시민단체에서도 활동하다가 정치계 그리고 공직까지 참 다양한 경험을 많이 해봤죠. 이렇게 다양한 경험들을 할 때마다 '컵에 물을 비운다'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새 물을 채우기 위해서는 컵에 있는 물을 완전히 비워야 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죠.
   어떤 활동을 하더라도 과거의 경험이 물론 유익하겠지만 또 그것에만 얽매이지 않고 새로운 일에 충실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어요. 가장 하고 싶은 것은 강단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에요. 보직이 마무리 되고 학교에서 나를 받아만 준다면 정년까지 학생들을 가르치는 것이 나의 바람이고 꿈입니다. 

-고등학교 때부터 중앙대 입학까지 가정형편이 넉넉지 않아 학업을 이어나가기가 순탄치 않았던 걸로 알고 있다

   충남 보령군 웅천면 시골마을에서 자랐어요. 당시 시골집 단칸방에서 다섯 식구가 살았죠. 가정형편이 어려웠던 건 사실이에요. 하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당시는 나뿐만이 아니고 다 어려웠던 것 같아요. 공부하는 것도 쉽진 않았어요. 중학교를 졸업할 때 가족들이 상고에 진학하기를 권유했죠. 상고 졸업 후 은행원이 됐으면 좋겠다는 이유에서 였습니다. 실제로 군산상고에 진학하려고 했는데 등록금을 낼 형편이 안됐어요. 그래서 등록금을 면제해주는 사립 고등학교에 진학하기로 결정했죠.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나니 주변에서는 9급 공무원 준비하길 바랐어요. 하지만 다행히 중앙대의 장학제도로 숙식과 등록금을 모두 해결할 수 있었습니다. 학교 다니는 동안 등록금 걱정은 안하고 살았죠. 학교의 혜택을 정말 많이 받은 케이스에요.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공부를 굉장히 열심히 한 걸로 알고 있다. 3년 반 만에 조기 졸업을 하고 정경대 수석졸업까지 거머쥐었는데

   아니에요, 공부 많이 안했어요(웃음). 남들이 하는 대학생활을 충분히 누렸던 것 같아요. 내가 학교 다니던 시절에도 중앙대가 농구를 참 잘했는데 농구장에 가서 응원한 적도 있었고, 학교 앞에 있던 선술집에서 술잔을 기울이며 친구들과 미래와 시국에 대해서 밤새워 가면서 격론을 벌였던 기억이 참 많이 나요. 대학생활을 많이 즐겼던 것 같아요.
   공부를 잘 할 수 있었던 것은 훌륭한 교수님들의 강의 덕분입니다. 또 내가 강의 듣는 것을 정말 즐겼어요. 학점을 따기 위해서 강의를 들었다기보다는 교수님들의 해박하고 유익한 지식들을 즐기면서 들었던 것이 그런 결과를 가져온 것 같아요. 
 
 
-대학시절 박승 교수(전 한국은행 총재)가 은사님인 것으로 알고 있다
 
   당시 박승 교수님의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미국 유학길에 오를 때도 박승 교수님이 다니셨던 뉴욕 주립대에 진학했고요. 박 교수님은 대학시절 정말 열성적으로 강의를 하신 분이셨습니다. 옆 강의실에서 강의를 들을 수 있을 만큼 목소리가 정말 크셨고 학생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어요. 그래서 제자들도 항상 교수님을 존경하고 따랐던 것 같아요.

-캠퍼스 내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의 장소가 있나

   정경대 건물 앞에 청룡상이 있었어요. 그곳에 쭉 놓인 벤치에 앉아 밤새 친구들과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많이 납니다. 또 캠퍼스 밖에 있는 중국집 안동장을 참 많이 다녔어요. 상호를 말하면 안 되는데(웃음). 당구장, 선술집, 찻집들도 그렇고요. 캠퍼스 주변 상가에서 만든 추억도 대학시절을 회상할 때 중요한 요소인 것 같아요.

-대학시절에는 어떤 꿈을 가지고 있었나

   대학시절 꿈을 크게 가졌다기보다는 하루하루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3년 반 동안 과외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수업도 들어야 되고 놀기도 해야 하고 아르바이트까지. 정말 바쁘게 지냈어요.
 또 당시에는 학교에서는 고시를 많이 봤으면 하는 분위기가 있었어요. 하지만 나는 고시공부 보다는 경제학 공부가 정말 하고 싶었습니다. 경제학을 좀 더 공부하고 싶었지만 졸업을 하고 나서 형편이 되지 않아 유학 갈 엄두를 내지 못했어요. 당시 임철순 총장님과 학교의 지원으로 유학을 다녀올 수 있었어요. 다행히 미국 대학원에 입학했을 때도 경제학이 너무 재밌었어요. 그래서 내가 꿈꿨던 것을 이룰 수 있었던 것 같아요. 학교의 혜택을 참 많이 봤죠.
   유학생활도 3년 반 만에 마쳤어요. 대학생활도 유학생활도 지금 생각하면 모두 아쉬움이 남아요. 당시에는 빨리 졸업을 해서 취직을 하는 게 좋은 거라고 생각을 했는데 좀 더 천천히 오랫동안 공부했으면 좋았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곤 해요. 
 지금까지 살다 보니까 그 순간순간 해야 할 일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어요. 노는 것도 젊었을 때 노는 것과 지금 노는 것은 다르잖아요. 젊음의 추억을 많이 생략해 버린 것 같아 아쉬움이 남아요.


-경제적 사정으로 중앙대를 택하신 것으로 알고 있다. 졸업 후에도 당시 임철순 총장의 지원으로 유학까지 다녀왔고, 사모님은 현재 중앙대 교수로 재직 중이신 걸로 알고 있다. 중앙대와 정말 특별한 인연이다.

  중앙대는 모교이상의 의미를 가지고 있는 존재입니다. 또 오늘날 나를 있게 해준 정말 특별한 존재이기도 하구요. 중앙대 학생과 졸업생은 모두 중앙대 견장을 차고 있어요. 교수, 학생, 졸업생이 합심해서 학교발전에 노력하면 모두가 차고 있는 견장의 격을 높일 수 있다고 생각해요. 최근 두산그룹이 학교를 인수해서 많은 노력을 하고 있는 것 같은데 이는 학교가 발전할 수 있는 정말 좋은 기회라고 생각해요. 학교가 발전해서 모든 동문들이 긍지를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동문과 재학생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린다.

  사회생활을 하다보면 중앙대 동문들을 굉장히 많이 만나요. 동문들은 모두 굉장히 성실하고 모든 일에 열심히 임하십니다. 동문들에게는 제가 감히 드릴 말씀이 없어요. 재학생들에게는 목표를 높게 잡아서 좀 더 큰 뜻, 큰 이상을 가지고 그 목표를 실현하려고 노력했으면 좋겠다고 말해주고 싶어요. 다 내 경험에서 나온 말이에요(웃음).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