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신문에서 동성애자 학우 4명을 만나보았다. 인터뷰 내용을 좌담회 형식으로 재구성했다.


- 언제 동성애자라는 것을 알았나요
김현석(남) : 열 살때 ‘내가 동성애자구나’라고 인식했어요. 혼란스러운 사춘기 시절 이후 스스로에게 솔직해지기로 했죠.
호태(남) : 스무살 이전까지 스스로를 받아들이지 못했어요. 스무살 이후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동성애에 대해 접하게 되었죠. 결국 ‘이렇게 살아야 행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되면서 자신을 받아들이게 됐죠.
Lo(여) : 중학교 시절이 가장 혼란스러웠는데, 당시 남자친구를 사귀기도 했어요. 시간이 지날수록 점점 여자에게 마음이 가기 시작했죠. 지금은 애인을 만나면서 ‘이 사람과 평생 알콩달콩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합니다.
- 지인 중 얼마나 알고 있나요
김현석 : 학과 친구들을 제외한 주변 지인들이 다 알고 있어요. 처음 커밍아웃을 했던 중학교 1학년 때 많은 친구들이 등을 돌렸는데, 아직까지 남아있는 소중한 친구들도 많아요. 가족들은 아버지를 제외하면 다들 순순히 인정하는 분위기예요.
호태 : 가족과 친인척들에게만 말했어요. 아무래도 혈연 관계이기 때문에 이해해줄 거라고 생각했어요. 겉으로 드러나는 부정적인 반응은 없었지만 쉽게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아요.


- 학내에서 겪었던 불편함이 있나요
새로(여) : ‘어떤 스타일의 남자를 좋아하냐’는 식의 질문은 대답하기 곤란하죠. 남자에 관심이 없는데, 또 동성애자들이 동성이면 다 관심을 가질거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은데, 어이가 없어요. 우리도 눈이 있는데 말입니다.
호태 : ‘결혼과 가족’이라는 수업을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시 사귀던 친구와 같이 수업을 들었어요. 근데 남자와 여자가 함께 앉으라고 하더라구요. 결국 수업을 취소해 버렸어요. 결혼을 이성애자의 전유물로 여기는 것 같아 불편했던 기억이 있어요.


- 가장 가슴 아팠던 일은 무엇인가요
김현석 : 믿고 있던 사람들이 커밍아웃 이후 떠난게 가장 큰 상처로 남았어요. 어렸을 때 겪었던 일이라 더 그랬던 것 같아요. 성소수자 모임 활동을 열심히 하는 것도 이런 상처를 받기 싫어서인 것 같아요.
호태 : ‘동성애자들은 다 죽어야 돼!’와 같은 동성애 혐오 발언을 공개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꽤 많아요. 또한 이런 발언을 당연하게 여기는 분위기도 사회적으로 형성되어 있는 경우가 많죠. 가장 큰 문제는 이런 발언들이 동성애자에게 상처를 준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들이예요. 주변에 드러나지 않은 동성애자가 많다는 것을 모르기 때문에 이런 일이 생기는 것 같아요.
새로 : 장국영이 죽은 후 장국영이 동성애자였다는 내용의 뉴스를 엄마와 함께 본 적이 있어요. 그때 엄마가 지나가는 말로 미친놈이라고 하셨어요. 지금은 기억도 못하시겠지만, 아직까지 저에겐 큰 상처로 남아있어요. 이런 이유로 부모님껜 커밍아웃하지 못하고 있죠.


- 동성애에 대한 한국사회의 인식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김현석 : 홍석천씨 이후 그나마 동성애자들이 설 자리가 생겼다고 생각해요. 젊은 세대의 경우 동성애에 대해 개방적인데, 기성세대의 편견은 아직 완고한 편이에요.
새로 : 근본적으론 변한게 없는 것 같아요. 사회적으로 동성애가 많이 언급이 된다고 해도, 동성애 허용여부에 대한 토론 정도 잖아요. 동성애는 허용여부를 따질 수 있는 것이 아니예요. 그냥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하는 거죠.


- 학우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Lo : ‘같은 처지’라고 생각하는건 바라지도 않아요. 그냥 ‘저런 사람도 있구나’하고 넘어가는 정도면 좋겠어요. 또한 무심코 던진 한마디가 큰 상처가 된다는 걸 항상 명심했으면 좋겠어요.
새로 : 키 큰 남자를 좋아하는 것처럼 동성애도 단지 동성을 좋아하는 것이예요. 도덕적으로 지탄받을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서로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만나는 것. 그뿐이에요.
호태 : 누군가 당신에게 커밍아웃을 했다면, 그건 당신이 믿을만한 사람이고 소중한 사람이라는 의미예요. 고민 끝에 털어놓은 것일 테니 색안경을 끼지 않고 바라봤으면 좋겠어요.


이현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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