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 남성을 포함해 거의 모든 수컷들은 서로 경쟁을 넘어, 과격하게 말하자면 전쟁을 치른다. 그래서인지 인류의 역사에서 일어난 전쟁이란 것도 곰곰이 따지면 결국은 동일한 이유를 갖는다. 호머의 『일리아드』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도 시작은 트로이의 파리스 왕자가 그리스의 메넬라오스의 왕비 헬레네를 꾀어 달아난 데서 시작한다. 그리고 지지부진하던 전쟁에서 그리스 연합군 병사들을 물러서지 않게 한 것도 승리만 하면 트로이의 재물과 여성들을 소유할 수 있도록 해주겠다는 신의 약속이었다. 이처럼 수컷들로 하여금 목숨까지 걸고 서로 경쟁하게 만드는 그 요인이란 바로 성(性)과 식량의 쟁취다.


물론 경쟁이란 것이 명시적으로 성과 식량을 가리키지 않는 경우도 있다. 《아마데우스》에서 살리에리와 모차르트는 여인을 두고 경쟁하지 않는다. 그들 사이의 긴장은 음악적 재능을 둘러싼 것이다. 하지만 그 음악적 재능이란 것도 그 자체가 목표라고 할 수는 없다. 겉으로는 음악인으로서의 자신의 존재 의미를 확인하고자 하는 명예의 문제일 테지만, 속으로는 우월한 지위를 얻음으로써 더 많은 식량과 더 매력적인 이성을 소유하고자 하는 욕망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진화심리학에 따르면 인간의 이름을 단 모든 고상함도 그 바탕에는 동물로서의 속성이 들어 있다. 수컷은 자신의 유전자를 널리 퍼트리고자 하며, 암컷은 가장 우수한 유전자를 골라 임신을 하고, 출산 뒤에는 양육에 유리한 환경을 얻으려는 것이다. 유전자에 각인된 이 프로그래밍 언어야말로 지구 생명체의 꼭짓점을 차지한, 고상하게 포장된 인간 존재의 의식과 행위, 결국 역사를 설명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다.


따라서 인류 역사를 수놓은 그 많은 이야기와 드라마는 결코 이 요소를 벗어나지 못한다. 성과 식량이야말로 인간에게 가장 절대적인 가치를 갖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식량이 없다면 존재의 당대 생존이 불가능하고, 성이 없다면 세대를 넘은 존속이 불가능해진다. 그것은 거꾸로 성과 식량이 빠진다면 그만큼 관심을 둘 이유가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우리가 아는 문학적 고전이란 결국 성과 식량을 둘러싼 인간의 이야기다.
셰익스피어의 『오셀로』 역시 그 한 예다. 오셀로는 베니스의 용병대장이다. 그의 명예는 젊고 아름다운 부인 데스데모나를 통해 확인된다. 원로원 의원의 딸 데스데모나는 정숙한 여인으로 남편을 정말 사랑한다. 하지만 부관의 자리를 두고 카시오와 이아고가 경쟁함으로써 비극이 잉태된다. 경쟁에서 진 이아고가 카시오를 파멸시키고자 데스데모나와 카시오의 불륜이라는 악의적 계략을 꾸민 것이다. 이 이야기는 이아고라는 악마적 존재의 경쟁심과 질투에서 시작한다.


그런데 놀라운 점은 오셀로의 변모다. 그토록 멋진 군인이었던 오셀로가 아내에 대한 의심과 젊은 부관 카시오에 대한 질투에 사로잡혀 파멸해가기 때문이다. 오셀로는 수컷으로서의 성적 질투라는 동물적 속성의 노예가 되어 마침내 아내를 목 졸라 죽이게 된다. 물론 그 의심과 질투가 이아고의 간계에 따른 오해라는 점이 밝혀지지만, 이미 죽음은 돌이킬 수 없다. 사랑은 무너졌고 오셀로는 오해에 빠졌던 자신을 한탄하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여기서 오셀로가 아랍과 아프리카계 혈통의 혼혈인 무어인으로서 차별적 얼굴색을 갖고 있고 나이가 많다는 것 역시 중요하다. 왜냐하면 암컷을 얻는 데 결코 유리한 덕목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의심과 질투는 증폭되고 오셀로는 아내와 카시오의 불륜 환영에 시달린다. 이 점은 계략을 꾸민 이아고도 마찬가지여서, 아내 에밀리아와 뛰어난 상관 오셀로의 불륜을 의심하며 성적 질투에 사로잡힌다. 수컷들 사이의 이런 성적 질투와 경쟁은 피츠제랄드의 『위대한 개츠비』를 비롯한 현대의 서사에도 빠지지 않고 등장한다. 그런데 이 욕망은 수컷들만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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