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 폭풍의 바다로 변할지 모르는 바닷가에 앉아 자그마한 모래성을 짓는데 골몰하는 철없는 아이. 『녹색평론』 김종철 발행인은 원자력에 집착하는 세태를 ‘철없는 아이’라고 표현했다. 핵에 대해 다소 과격하게 보일 정도로 『녹색평론』은 이번 호에서 원자력 신화의 허구성을 파헤쳤다.


원자력발전은 그간 많은 홍보와 선전을 통해 국민들에게 좋은 인상을 주며 확대되어왔다. 특히 동북아지역은 북미·유럽에 비해 70%에 이르는 압도적인 지지를 받았다. 국민들을 설득한 주요한 홍보문구들. ‘현 전력소비를 소화하기 위한 유일한 대안’, ‘안전한 핵발전소 운영’, ‘깨끗한 청정에너지’ 등에 의한 것이다. 이러한 유혹적인 문구들을 대중의 뇌리에 선명하게 박아놓기 위해 연간 120억에 이르는 홍보비가 소비되고 있다.
하지만 홍보문구 이면에 드리운 어두운 그림자는 심상치 않다. 하나는 폭발적인 전력소비의 필요성이다. 전력소비를 줄여 원자력발전을 억제해야한다는 주장에는 ‘그것은 경제발전을 저해한다’라는 반박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외국 사례를 찾아보면 전력소비를 증가시키지 않고 경제발전을 이룬 나라가 적지 않다.


또한 이번 호 『녹색평론』은 핵발전소가 발전소 내부 사고 외에도 거대한 재난의 가능성이 잠재되어 있다는 것을 역설한다. 바로 테러리스트들의 위협이다. 특히 해외 필자들의 글에서 테러 위험성은 끊임없이 제기된다. 교토대 원자로 실험소에서 일하는 고이데 히로아키는 ‘플로토늄 수킬로그램만 있으면 원폭을 만들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국가는 모든 사람들을 엄중한 감시 하에 둘 수밖에 없다. 모든 국민을 잠재적 테러리스트로 간주해야하는 ‘원자력 제국’을 만들면서까지 핵발전을 찬성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세계의 미래는 암울하다. ‘이미 여기까지 왔으니 어쩔 수 없지’라는 원자력 기술자들의 체념적 태도는 이러한 미래를 앞당기고 있다. 하지만 반핵 운동을 펼치는 것은 단순히 인간의 존립에 대한 것이 아니다. 그것은 기성세대가 이룬 원자력발전소의 오염을 이어받을 후손에게 희망을 물려주는 일이다.


그래서 세계적인 반핵 운동가인 다카기 진자부로(1938~2000)는 절망적인 상황에도 ‘희망에 차서 반대하는 일을 이어나가야한다’고 말했다. “적어도 확실한 것은, 원자력은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고 부르짖는 것은 후대에 희망을 남기기 위해,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재난을 되풀이하지 않기 위한 외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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