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경을 읽으면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된다. ‘우리는 과연 진정으로 도덕적일 수 있는가’. 문명역사에서 도덕은 한상 모순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비춰진다. 유가가 중시하는 효와 자애는 애초에 친족관계가 화목하지 못하기 때문이며 충신은 국가가 혼란하기 때문에 생겼다는 것이다.


노자는 도덕을 제도권 내에서 정해진 규칙과 제도에 따르는 것이 아닌, 자연스러운 것으로 여겼다. 도덕경이 최상의 가치로 추구하는 ‘도’는 스스로를 변형시키고 전개하는 생명의 원천이다. ‘도’는 자연과 합치되는 인간의 본래적 능력이기에 의도적으로 행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여기서 강조되는 자연은 숲과 나무로 표상되는 자연과 다르다. 그것은 말 그대로 ‘스스로에게 당연한’ 것이다. ‘도’에 다다르기 위해서는 스스로의 노력을 통해 정신적인 독립을 이뤄내야한다.


도덕경은 문명역사의 사회를 억압적인 허위라고 비판하고 있다. 이러한 내용은 당시 유행하던 유교사상의 과거 체제에 대한 무비판적인 태도를 비판한 것이기도 하다. 언뜻, 대책없는 염세주의로 오해할 수 있다. 사회계약론과 같은 말에 익숙해진 우리에게 이 책은 몽상가의 이야기로 들린다. 현재뿐만 아니라 과거에도 노자의 주장은 매우 비현실적이었기 때문에 공자, 맹자와 달리 제도권 밖에서 이상사회를 주창하는데 그칠 수밖에 없었다.


이 책은 문명역사에서 이루어질 가능성이 전혀 없는 무역사적 사회를 이상사회로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에 참으로 쓸모없는 책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현재 사회가 최선이 아닐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고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상상력은 언제나 사회를 변화시켰다. 도덕경이 제시하는 이상이 굳이 현실이 될 수 없다 하더라도, 자연에 대한 지배와 통치에서 벗어나 자연과 합치하는 도덕적 패러다임을 제시했다는 면에서 충분하다. 결국 ‘도’라는 것은 사회적 변혁 이전에 개개인의 깨달음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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