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진작가 성남훈
15년 전 파리 튈르리 공원의 해질녘, 분수 앞에서 키스하는 커플을 촬영하던 한 남자의 눈에 지팡이를 짚은 노인이 포착 됐다. 그는 순간 얼음이 되었다. 바로 사진계의 거장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브레송에게 사진을 찍고 싶다 요청 했지만 브레송은 정중히 거절했다. 떠나가는 브레송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설레였던 남자는 외국 유학 중이던 그때를 추억하며 자신의 옛 이야기를 시작했다.

 

-사진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하다

제 고향은 전라북도의 한 시골마을이에요. 워낙 ‘깡촌’이다 보니 문화적 혜택을 누릴 수 없었죠.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술에 대한 열정은 대단했어요. 하지만 해결할 방법이 없었죠. 대학도 예술과 상관없는 학과에 진학했고요. 대신 연극반에 들어가 예술에 대한 욕구를 분출했어요. 그렇게 집단예술인 연극을 하다보니 개인적인 예술을 해보고 싶더라고요. 그러다 사진을 배우게 됐고 프랑스로 건너가 사진을 전공했어요.

-다큐멘터리 사진을 선택한 이유는 무엇인가

저는 정치적 혼란기에 대학을 다녔어요. 하지만 프랑스는 달랐어요. 굉장히 안정적이었죠. 그래서 제가 경험하고 느낀 한국의 ‘격변의 사회’에 대한 이야기를 해야겠다고 결심했어요. 사회문제에 대해 적극적인 대응을 하지 못했기 때문에 마음에 짐이 있었거든요. 연극 활동을 통해 적게나마 표현했지만 부족했어요. 그래서 사진을 통해 그 짐을 내려놓으려 했죠.

-‘라포(Rapho)’라는 사진집단 멤버로 활동했는데

라포는 프랑스의 다큐멘터리 사진 에이전시에요. 세계적 사진작가인 로베르 두와노, 윌리 로니스 등이 소속된 집단이기도 하죠. 저는 프랑스에서 사진 대학인 ‘아카르 포토’를 졸업했어요. 그곳에는 라포의 디렉터나 소속 작가들, 유명 사진가들이 직접 수업을 진행하죠. 저는 포트폴리오 최고점으로 졸업했지만 라포의 제안을 받지 못했어요. 제가 루마니아 집시와 포르투갈 이민자에 대한 작업을 마치고 한국으로 돌아와 소록도를 작업하고 있을 때 기회가 찾아왔죠. 두와노의 별세소식 때문에 다시 프랑스 돌아갔거든요. 프랑스에서 작업을 마무리 하던 중 라포 디렉터에게 제 포트폴리오를 보여주게 되었고 그때 라포에 들어갈 수 있게 됐어요. 라포 디렉터가 그러더라고요. 가능성만 보고 계약할 수 없었기 때문에 저의 세 가지 작업이 모두 완벽해질 때까지 기다렸다고요. 그래서 라포 멤버로 함께할 수 있었어요.

-주로 사회 소외계층 다룬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저의 상황과 닮아있기 때문이에요. 저는 사진을 시작하는 입장에서 아웃사이더였고 자라온 환경 역시 그랬죠. 그래서 소외계층의 일들이 타인의 문제만은 아니라고 생각했어요. 프랑스에 갔을 때도 마찬가지로 학생신분이었기 때문에 주류가 아니었죠. 자연스레 소외계층으로 관심이 갔어요. 만약 도시에서 부유하게 살았다면 얘긴 좀 달라졌겠죠.

-사진이 갖는 사회적 역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나

다큐멘터리 사진의 핵심은 기록성과 사회성 이예요. 이것들이 전제될 때 문제에 대한 효율적 각성이 이뤄지죠. 현대인들은 항상 바쁘다고 입버릇처럼 말하면서 사회문제에 대한 책임을 전가하곤 해요. 바쁘다는 핑계가 면죄부인 셈이죠. 다큐멘터리 사진은 현대인들이 소홀할 수 있는 사회문제를 기록하고 각성시키고 동참하도록 하는 역할을 해요. 또 역사의 기록이라는 측면에서 의미도 있어요.

-사진을 찍을 때 가장 신경쓰는 부분은 무엇인가

사회문제를 휴머니즘적으로 이야기하려다 보니 그 사람의 관점으로 들어가려고 노력했어요. 상황을 그 사람의 관점에서 느끼고 감정, 아픔, 진심을 이해하려고 했을 때 진정성이 묻어 나와요. 이것저것을 따지면서 재단하는 사진이 아닌 진심을 담는 것이지요. 또한 그 사람들의 처지가 우리보다 어렵기 때문에 무지할 것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 실제로 그럴 수도 있어요. 하지만 그 사람들도 일반 사람들과 똑같이 행동하고 생각하죠. 이것은 학습을 통해선 배울 수 없고 현장에서만 느낄 수 있는 부분이지요. 그런 감정들을 사진 속에 녹여내려고 해요. 사진 한 장으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도 있어서 요즘은 영상으로도 많이 담아요.

-다큐멘터리 사진에서 순간포착은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는데 그런지 궁금하다

사실 순간포착이라는 것이 찍히는 순간일 뿐 이예요. 예를 들어 빠른 속도로 셔터를 누르고 순간포착을 하는 것은 훈련을 통해 극복할 수 있는 문제지요. 하지만 사진 안에 무엇을 담고 표현하고자 하는지를 생각하지 않으면 순간적인 것을 잡아냈다 하더라고 큰 의미가 없죠. 무엇을 담을지를 고려하는 것이 가장 힘든 작업이거든요. 카메라만 있으면 모든 걸 다 찍어낼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큰 오산이예요. 대상을 관찰하고 그 너머에는 무엇이 있을까 상상하며 촬영하는 것이 매우 중요해요.

-요즘 고민하고 있는 사회 문제가 있다면 무엇인가

제가 15년간 작업을 해온 것이 「유민의 땅」인데 이 사진집 자체의 담론이 굉장해요. 그래서 다시 한번 해볼까 해요. 바로 「유민의 땅」 2탄을 생각 중이죠. 1탄에서 선보였던 것이 정치적 이유라면 2탄에선 환경적 이유로 떠나는 사람들에 대해 작업해보고 싶어요. 조금 더 나아간다면 한국에 관련된 문제들을 더 구체적으로 내다보고 모순의 옴니버스를 만들어 재미있게 작업해보고 싶어요. 예를 들어 상황 자체가 일목요연한 스토리를 갖진 않지만 각각의 상황들을 표현하는 것이죠. 욕망이나 종교적 문제, 개인 기복에 관련된 문제 등에 대해 얘기해 보고 싶어요.

-다큐멘터리 사진가로서 사회문제와는 뗄 수 없다. 사회문제를 통해 뭘 느끼는지 알고싶다

우리가 느낄 수 있는 사회 문제에 대해 실제로 행동하는 것이 가장 옳은 일이라고 생각해요. 항상 사진으로 보여주고 있지만 현실 참여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죠. 이에 대해 욕을 하는 사람들도 있어요. 사진은 단지 객관적 기록의 역할만 하면 된다고 말이죠. 하지만 제 경우는 달라요. 예를 들어, 4대강 폐해가 있다면 기록을 위한 기록보다는 변화에 앞설 수 있도록 나서야 한다는 것이지요. 이러한 행동의 일환으로 전시를 하고 저작권 프리로 사진을 자유롭게 쓸 수 있도록 했어요. 인권에 대한 책을 만들기도 했죠. 「거꾸로 인권」이란 책인데 명망있는 사람들의 글을 받고 문제의식을 가진 사진가들이 모여 잡지를 만들었죠.

-영향을 받은 작가가 있을텐데

사진을 시작한 초기엔 세계적 보도사진 집단 ‘매그넘’의 멤버들을 좋아했어요. 한국에서 자주 접할 수 있는 작가들이었기 때문에 많은 영향을 받았죠. 또한 젊은 작가들에게도 영향을 받아요. 그 친구들이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고 각 시대에 따른 트렌드를 반영하는지 배우거든요. 그 시대의 트렌드에 맞게 사진을 찍는것도 굉장히 중요한 문제예요. 좋은 그릇과 그 시대의 트렌드가 결합된 신선한 내용을 담은 젊은 작가들을 보면 배울점이 많아요. 가르치는 학생들을 통해 배우기도 하고요. 제 감성 자체가 클래식하기 때문에 차이가 있기 마련이죠.

-중앙대 사진학과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처음 중앙대에서 강의를 시작한 때는 98년이었어요. 한국에 IMF가 발생하고 아시아 상황이 심각해져 한국에서 작품 활동을 하고 있었거든요. 그러다 중앙대의 제안을 받았고 강의를 시작하게 되었죠. 3년간 강의를 하다 부득이하게 못나가게 되었어요. 그러다 2010년부터 다시 강의를 나가고 있어요. 98년 당시 강의를 할 때 학생들의 기억이 너무 좋아서 다시 강단에 섰어요. 여전히 중앙대의 느낌은 상당히 좋아요.

-‘다큐멘터리 워크샵’ 강의는 어떻게 진행되나

학생들이 더 좋은 주제를 설정할 수 있도록 더 나은 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역할을 하죠. 강의에서 강조하는 부분은 직접 사회로 나가 문제를 체험하라는 것 이예요. 머릿속으로 혹은 피상적으로 고민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문제에 부딪혀보라고요. 현대인들은 다양한 매체들을 통해 사회문제들을 접해요. 꼭 다큐멘터리 사진이 어려운 상황의 사람들을 만나는 것은 아니에요. 그 사람들을 직접 만나 설득해보고 어떻게 사진으로 표현해 낼지, 무엇을 어떻게 접목을 시킬지가 중요한 것이죠. 저는 학생들에게 그러한 계기를 만들어 줘야겠다고 생각했어요. 사회 문제가 어떻게 발생했고 왜 발생했는지를 찾아가면서 자신감을 확보하고 그러한 작업을 통해 ‘나도 괜찮은 사진가다’라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이 목표에요. 그런 다음 인문적 베이스를 가지고 세상을 좀 더 깊게 바라보고 분석하며 시각적으로 어떻게 옮길 수 있을 것인지를 강의할 예정입니다.

-사진을 잘 모르는 학생들을 위해 사진에 접근하는 방법을 알려달라

가족사진을 본다 생각하면 돼요. 저는 사진 중에서 가장 훌륭한 것이 가족사진이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 것이기 때문이죠. 개인이 찍은 개인사에 대한 것보다 더 의미있는 사진이 어디 있겠어요. 개인의 역사들을 사진첩에 집어넣어놓고 기록하는 것이 가장 소중한 것 같아요. 사진을 찍는 행위가 단순히 유희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역사를 기록한다는 관점에서 말이죠. 그렇듯 사진도 생각처럼 어려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편안하게 접근해주었으면 합니다.

 

 이은샘 기자 SAEM@cauon.net

수상
1992 'salon92' 사진부문 최우수상 수상, 프랑스
1994 라이카 국제 흑백사진 공모전 수상, 독일
1996 한국사진대상 우수상 수상, 한국
1999 '월드 프레스 포토' 일상 뉴스 부문 수상, 네덜란드
2006 제5회 동강사진축제 ‘동강사진상’국내부문 수상, 한국
      제2회 한미사진상 수상. 한국
2009 월드 프레스 포토 인물사진 부문 수상, 네덜란드

개인출판
'꿈꾸는 들녘' 이데아출판, 1993
'소록도' 타임 스페이스, 1996
'아프가니스탄에 피는 꽃' 예다림, 2002
'유민의 땅' 눈빛, 2006
'아프리카에서 꿈을 찍다' 기아대책, 2009

現 중앙대학교 사진학과 강의

 

 

 

 

 

 

 

 

르완다 난민,키상가니,구자이르,199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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