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세상에 반기를 들었다. 우리는 세상 속에 녹아 있다. 그는 세상을 너무나도 사랑해 변혁을 일으키고자 한다. 우리는 세상과 영합하면서도 불평과 원망에 차있다. 이렇게 반대되는 삶을 사는 그와 우리는 아이러니하게도 함께 청춘의 시기를 공유하고 있다. 꿈과 직업의 기로에 놓여있는 20대에게 그는 진정한 꿈과 열정, 그리고 청춘을 전하고자 한다.>


세상을 사랑하기에 반기를 들었다

180도 뒤집히다
 그를 떠나지 않고 계속 따라오는 한 가지가 있다. 바로 ‘퇴학생’이라는 꼬리표다. 2010년 5월부터 2011년 2월까지, 한 인간의 삶 중 잠깐에 불과한 10개월의 신분이 그의 평생을 좌지우지하게 됐다. 노영수씨는 퇴학이 자기 인생에서 평생의 걸림돌이 될 것 같다며 씁쓸한 웃음을 지었다.

 이제 사람들은 그를 ‘좌파 학생’, ‘퇴학생’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어렸을 적 그는 현재를 상상할 수도 없을 만큼 평범한 아이었다. 매일 아침 받아보는 보수신문을 철썩 같이 믿었다. ‘데모하면 나라가 망한다’는 말을 진리로 인식했다. 눈앞의 세계와 사람들에 대해 보수언론과 같이 생각하고 동조했다.

 언젠가 철거민들의 시위가 언론에 보도된 적이 있었다. 그는 신문을 펼쳤다. 신문의 자극적인 제목을 본  그는 생각했다. ‘정말 가관이다.’ 그들의 극단적인 행동이 거북했다. 철거민들의 주장은 찾아보지 않았고 보수언론의 논리에만 충실할 뿐이었다.

 그리 좋지 않았던 가정환경 때문에 그는 17살의 어린 나이에 생활 전선에 뛰어들었다. 그래서 고등학생이 된 그는 새벽반 신문배달부가 됐다. 홀몸으로 그를 키운 어머니는 미화원, 파출부 등 안 해본 일이 없었다.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이 바로 옆에 있었다는 것을 그는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야위어가는 어머니의 얼굴을, 굳은살이 늘어가는 어머니의 손을 보면서도 서민의 절박함을 느끼기 보다는 언론의 논리를 믿었다. 그토록 경멸하던 극단적인 행동의 주인공이 자신이 되리라고는 꿈에도 몰랐다.

현실에 눈을 뜬 평범한 대학생
 “중앙대학교 독어독문학과 02학번 노영수입니다.” 평범했던 고등학생이 대학교에 입학했다. 역시나 그는 평범한 대학생이었다. 하지만 그는 단연 학과의 인기스타였다. 선배들에겐 예쁨 받고, 후배들에겐 인기 있는 학생이었다. 평소 개인보다 단체를 우선시하는 그의 성향은 학과 활동에서 빛을 발했다. 하루는 잔디밭에서, 하루는 청룡호수에 들어가 친구들과 날밤을 샜다. 먹고 죽자는 신념으로 마시다 응급실에 실려 간 것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노는 모임’의 대장이라는 감투를 쓴 그는 서서히 변해갔다. 독일 사회와 그들의 문화를 이해하기 시작했다. 전쟁만 일으키는 줄 알았던 독일이 알고 보니 유토피아였다. 교육비 전액 국가 부담, 전담 교수 제도 등의 환상적인 교육제도, 독일인으로 태어난 것을 행복하게 여길 수 있는 복지제도까지. 우리나라와 달라도 한참 달랐다. 독일과 비교해 보니 우리나라는 문제투성이였다.

 당시에는 몰랐던 일들을 다시 생각해보니 분노가 일었다. 고등학교 때 아르바이트를 해야만 했던 그의 환경도, 불공정한 경쟁 속에서 살아왔던 자신의 과거도, 그때는 몰랐던 어머니의 가슴앓이도 모조리 바꿔놓고 싶어졌다.

 

그의 인생이 역사가 된 날
 부조리한 사회를 깨달은 후부터 그는 학생회에서 활동했다. 그의 문제의식제이 최고조에 달했을 때는 중앙대 학문단위 구조조정이 한창 진행되던 때였다. 구조조정은 점점 막바지를 향했다. 4월 8일, 구조조정에 대한 마지막 이사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학생회 임원들과 구조조정에 어떻게 대응할 것인지 끝을 모르는 토론을 계속했다.

 결전의 날, 4월 8일이 됐다. 그는 마지막까지 학생 대표자들과 함께 답 없는 토론으로 밤을 꼬박 샜다. 막상 타워크레인 밑에 섰지만 그는 아침까지도 답을 내리지 못한 상태였다. 친구들은 위험하다고 만류했다. 장장 4시간동안 고민했다. 그는 마침내 결론을 내렸다. 잘못되었다고 생각되는 일을 두고 볼 수 없었다. 다음 날 새벽 6시, 그의 손과 발은 타워크레인을 부여잡았다. 타워크레인 등반에 성공한 그는 곧바로 임무를 수행했다. ‘학생 징계 시도 분쇄, 기업식 구조조정 저지, 의사회 의결 무효’라는 플랜카드를 걸었다. 목적을 달성한 후 그는 자진해서 타워크레인에서 내려왔다.

 그가 그렇게도 싫어했고 치를 떨었고 비난했던 극단적 시위였다. 그런 시위를 그가 고스란히 하고 말았다. 맘이 편하지 않았다. 극단적 행동은 반감만 산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그의 행동에 ‘퇴학’이라는 대가가 돌아왔다. 각오한 징계였으나 퇴학은 다소 충격적인 통보였다. 퇴학을 당했지만 동정의 여론보다는 비난의 여론이 계속됐다. 구성원의 공감을 얻어내기 위해 그는 시위를 전면 개편했다. 퍼포먼스에 초점을 맞췄다. 재치 있는 소품을 이용해 비판 대상을 풍자했다. 그는 그렇게 세상을 바꿀 꿈을 꾸고 있다.

 

동시대의 20대에게
 현재의 우리 사회는 종종 공장에 비유된다. 정형화된 시스템에 똑같이 찍혀 나오는 생산품들. 고소득 직종·대기업 사원과 같이 성공의 진리로 자리 잡은 시스템에 자기 자신을 맞추는 현실을 빗댄 것이다.

 인간에게 개성이 중요하다고 누가 말했던가. “현재 시스템과 같은 경쟁구도는 다양한 사람들을 몇 가지 굵직하고 유용한 기준으로 일원화시키죠.” 바로 그가 말한 ‘유용한 기준’이 오늘날의 스펙이다.

 그는 말한다. “잘못된 시스템은 변화되는 것이 필연적이에요. 그렇게 흘러온 역사가 증명해주죠. 하지만 우리들은 잘못된 시스템에 우리 자신을 내던지고 있어요. 내가 뭘 좋아하는지, 내가 무엇을 할 때 행복한지 자신을 파악하기도 전에 자신을 상실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

 

송은지 기자 ilnrv@cauon.net
일러스트 이지영 기자, 이은주 수습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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