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모리교수는 루게릭병에 걸린다. 서서히 굳어가는 몸으로 강단에 설 수 없게 된 모리교수는 제자들을 하나 둘 집으로 부르기 시작한다. 그리고 그동안 해왔던 사회학 강의를 대신해 자신의 삶, 죽음, 성공, 사랑 등에 관해 제자들과 소통한다. 죽기 전까지 모리교수는 제자들과 함께했고 제자들 또한 모리교수의 강의 아닌 강의를 들으며 그의 마지막을 함께했다.


위의 이야기는 실화를 바탕으로 한 소설 『모리와 함께한 화요일』의 내용이다. 모리교수와 학생들은 단순히 전공지식을 가르치고 배우는 관계를 넘어서 인생의 멘토와 멘티의 관계를 맺고 있다. 하지만 이 같은 사제관계의 모습은 2011년 한국 대학사회에선 그저 소설일 뿐이다.


2011년 4월 5일부터 7일까지 교수신문과 서울 지역 5개 대학신문이 실시한 교수-학생 인지도 조사 설문에서 전체 학부생 응답자 1084명 중 40% 이상이 ‘강의시간 외에 교수와 단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응답했다. 아울러 절반 이상의 응답자는 '교수와 소통에 어려움을 느낀 적이 있다'고 답했다. 


실제로 학생과 교수가 강의시간 이외에 만나는 일은 극히 드물다. 학생들은 한 학기에 한 번 정도 교수의 연구실 문을 두드린다. 하지만 그 이유도 학업과 관련한 이유거나 추천서를 받기 위해서다. 곽호영 교수(기계공학부)는 “학생들이 장학금을 받기 위해 추천서만 내밀고 가버리는 경우도 있는데 추천서를 써야하는 교수입장에서는 학생에 대해 아는 게 없고 대화가 없다보니 당황스러운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교수와 학생간의 관계가 소원해진 데는 경쟁구도를 중시하는 대학사회가 크게 자리 잡고 있다. 학생들은 좋은 취업 자리를 얻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고 교수는 교수연봉제에 따른 연구 부담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교수연봉제는 교수들의 성과를 S·A·B·C 네 등급으로 평가하는 제도다. 매년 논문 두 편 이상을 쓰지 못할 경우 최하위인 C등급을 받아 임금이 동결된다. 2009년부터 실시된 교수연봉제로 교수들 역시 치열한 경쟁에 노출된 것이다.


윤재빈씨(경제학부 3)는 “고학년이 되니 취업하기 위해 스펙을 쌓아야 하는 부담이 많다”며 “교수와 대화할 시간 보다는 스펙 쌓기에 정신이 없다”고 말했다. 조성한 교수(공공인재학부)는 “경쟁 중심의 사회는 교수들에게도 예외가 될 수 없다”며 “한국 사회는 교육자보다 주로 연구자로서의 역할을 부여한다. 학생들과의 소통보다는 개인적인 연구나 논문을 위한 노력에 치중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또한 학생의 수에 비해 교수의 수가 부족하다는 문제도 제기되고 있다. 중앙대의 2010년 전임교원 1인당 학생 수는 29.5명이다. 연세대는 23.7명, 고려대는 25명으로 타 대학에 비해 높은 수치를 보인다. 이는 2008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표한 대학 교원 1인당 학생 수인 26.5명 보다도 많다.


인문대의 A교수는 이러한 상황이 교수와 학생간의 친밀도를 높이는 데 어려움이 되는 요인 중 하나라고 말한다. A교수는 “학생과 교수와의 문제를 넘어 시스템의 문제가 더 크다고 볼 수 있다”며 “교수 1인당 40명 정도를 배당받다보니 사실상 교수가 학생을 일일이 만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렇다고 특정 학생만 부르는 것도 오해를 살 위험이 있어 조심스럽다”고 전했다.


학생이 교수에게 느끼는 막연한 거리감도 문제다. 서보라씨(경영학부 2)는 “교수님과 성적이나 학업과 관련해 대화하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사적인 주제에 대해 상담한다는 것은 어색하다”며 “주위에서도 그런 친구들은 보지 못했다”고 밝혔다. 강의실에서만 마주했던  교수와  사적인 대화를 나누는 데 어려움을 느낀다는 것이다.


심지어 교수와 사적인 대화를 나눠 본 경험 조차 없는 학생도 있다. 이소현씨(컴퓨터공학부 4)는 “학교를 다니는 3년 내내 교수님과 한 번도 사적인 대화를 나눠본 적이 없다”고 말했다. A교수는 “10년 전만 해도 교수에게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학생이 많았지만 지금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며 안타까운 마음을 드러냈다.


이에 대해 백훈 교수(국제관계학과)는 “교수는 부모님 다음으로 제2의 조언자 역할을 해줄 수 있는 존재”라며 “교수를 완벽한 사람, 정답만을 말해주는 사람이라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자신의 든든한 후원자라고 생각하면 좋겠다”고 전했고 이어 “졸업 후에도 가끔 서로 근황을 묻고 연락하는 일은 분명 자신에게 큰 자산이 될 것”이라고 학생들에게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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