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부모님 손을 잡고 제 집 드나들듯이 방문하던 재래시장. ‘오늘 저녁은 무슨 반찬일까?’하는 생각과 ‘엄마가 호떡이라도 하나 사주지 않을까?’는 기대와 함께 드나들던 재래시장은 놀이터와 같은 공간이었다. 하지만 언젠가부터 난립하는 SSM(기업형 슈퍼마켓)에 밀려 재래시장은 ‘낡은 곳’ 또는 ‘나이 많은 사람들이 가는 곳’과 같은 이미지를 가지게 되었다. 실제 인터뷰 결과 대부분 학생들이 재래시장 보다는 SSM을 선호하는 것으로 밝혀졌다. ‘장 보러 가자’는 말 그대로 우리 생활에서 빼놓을 수 없었던 공간인 재래시장. SSM에 밀려 ‘장 보러 가자’는 말 대신 ‘마트 가자’는 말이 흔하게 쓰이게 되었다. 이젠 재래시장의 존폐마저 위협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시장은 복잡하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꼽는 시장의 단점은 ‘복잡함’이다. 김도현(컴퓨터공학부 4)씨는 “예전에는 인심 좋아 보이던 시장 풍경들도 SSM과 비교해보면 복잡한 것 같다”며 “흑석시장 보단 그 옆의 마트를 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연제준(국어국문학과 2)씨 역시 “마트는 한 곳에서 여러 물품을 볼 수 있어서 좋은데 시장은 복잡해서 장을 보기 힘들다”며 SSM을 주로 이용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는 시장만의 특수한 상황을 고려해야 하는 문제다. 흑석시장에서 반찬가게를 운영하는 이연희씨는 “다들 조그맣게 영업을 하는 경우가 많다. 흑석동 재개발 때문에 시장 규모가 축소되어 협동조합이 해체되었다. 때문에 의견을 모아 리모델링을 하기 어렵다”며 “한두 번만 돌아보면 금방 지리를 익힐 수 있고 복잡해 보여서 그렇지 실제론 청결하다”고 덧붙였다.

멀지 않아요= 주거지와의 접근성을 고려해 장을 보는 학생들도 많은 편이다. 흑석시장의 경우 입구에 SSM 두 개가 위치하고 있어 대부분 학생들은 시장보다는 SSM을 선호한다. 조혜진(경영학과 2)씨는 “시장에 비해 마트가 가까워서 마트를 주로 가는 편“이라며 장을 볼 때 가장 먼저 고려하는 것이 접근성임을 밝혔다. 하지만 실제 흑석 시장과 SSM과의 거리는 매우 가깝기 때문에 멀어서 시장을 가지 않는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시장 상인들은 반응했다. 생선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관심의 문제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더 좋은 품질의 물건을 더 싸게 살 수 있다”며 학생들이 많은 관심을 가져주기를 바랐다.

반값에 사 가세요= 학생들은 재래시장의 물가를 잘 모르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연제준씨는 “마트는 가격이 정찰제로 표시되어 있어서 총액을 어림잡아 계산하기도 쉽다”고 말했다. 또한 “마트와 시장간 가격차이도 많이 나지 않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하지만 실제로 마트와 시장은 동일한 품질의 물건이라도 큰 가격 차이를 보였다. 적게는 30퍼센트에서 많게는 100퍼센트 이상 가격 차이를 보이는 품목도 있었다.(기사 하단 가격비교표 참고) 또한 두부와 같이 낱개로 판매되는 물품의 경우 가격이 동일해도 시장에서 파는 것이 크기가 더 크거나 양이 많다. 흑석동 주민 조미희씨는 “학생들이 물가에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시장에 가면 더 싼 가격으로 물건을 살 수 있는데 용돈을 받아쓰는 입장이라 그런지 가격에 둔감하다”고 말했다.

품질은 보장합니다= 재래시장 물품의 품질을 의심하는 경우도 많다. SSM을 주로 이용한다는 한 학생은 “브랜드화 되어 있는 SSM의 물품에 비해 시장 물건은 왠지 못 미덥다”며 “싼 가격에 파는 건 좋지만 싸구려 물품을 파는게 아닐까 의심되기도 한다”고 하였다. 이는 단지 기우일 뿐이다. 반찬 가게를 운영 중인 이영희씨는 “매일 아침 산지에서 재료를 공수 받아 반찬을 만들고 채소의 경우 하루에도 몇 번씩 배달 받는다”며 “시장 상인들 대부분 십년 넘게 장사를 해온 사람들인데 싸구려 재료를 써서 장사를 이렇게 오래 할 수 있겠냐”라고 오히려 발끈했다. 이 외에도 많은 상인들이 ‘품질은 보장할 수 있다’며 흑석시장에서 파는 물건에 대해 신뢰를 가져도 좋다고 전했다.

정은 살아있다= 예전에 쉽게 볼 수 있었던 ‘덤’문화가 사라진 것도 학생들의 발길을 시장에서 멀어지게 하는 원인이다. 김도현씨는 “재래시장하면 인심 좋고 흥정도 있을 것 같은데 요즘은 그런 풍경을 찾아보기 힘든 것 같다”고 말했다. 이처럼 시장의 상징이었던 ‘인심’이 예전 같지 않다는 것이 많은 학생들의 의견. 오히려 ‘덤’을 기대하기 보단 ‘덤터기’를 쓰지는 않을까 걱정하는 학생들이 많다. 과일가게를 운영하는 한 상인은 “학생들처럼 조금씩 사가는 경우 덤을 얹어주기 부담스러운 경우가 있지만 아직 시장에 정은 남아 있다”고 말했다. 이영희씨는 “종종 엠티를 가는 학생들이 물건을 대량으로 사가는 경우가 있다”며 “자식 같기도 하고 학생들이 즐겁게 놀았으면 하는 마음에 넉넉하게 물건을 담아준다”고 덧붙였다. 시장의 경우 정확한 무게를 측정해 팔기 보다는 ‘한 봉지’ 혹은 ‘한 바가지’하는 식으로 물건을 파는 곳이 많다. 흥정만 잘 되면 토마토 한 봉지 가격에 두 봉지를 살 수 있다. 살가운 미소가 덤으로 돌아오는 곳. 바로 시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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