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년이면 강산도 변한다는데, 어느덧 고국을 떠난지 12년, 모교의 교정을 떠
난지는 20년의 세월이 흘렀다. 1997. 9. 18(목)! 이날은 내가 다시금 모교를
방문한 날이다. 물론 고국에서 사회생활을 하면서 한두차례 잠깐 모교를 방
문한 일도 있었으나 그때는 대학을 졸업한 후 짧은 기간이어서 새삼스럽다고
느끼지 못하였고, 그동안 한두차례 고국을 방문하였으나 모교를 방문할 기회
를 갖지 못하고 시간에 쫓기며 떠나곤 하였다.

그러나 이번 고국방문은 개인적인 업무관계로 방문을 하였지만, 98년도 북미
주 동창회 연합회 총회 및 전미주 동문 골프대회를 우리 워싱톤동창회에서 주
최하는 관계로 대회준비 진척상황을 모교에 홍보하고, 해외동창회 소식을 전
하며, 또한 모교의 소식을해외동문들에게 알린다는 취지가 있어서 모교를 방
문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번 모교방문에는 중앙 헤럴드 영자신문사 초대 편집장을 역임하고, 영문과
9회를 졸업한 후 미국의 수도 워싱톤에서 30년 가깝게 연방고위공무원으로
근무하시는 이기춘선배동문과 함께 동행한 방문이었기에 오히려 나보다는 이
기춘선배께서 더욱 감개무량하신 모양이시다. 더우기 바쁘신 학사업무일정
속에서도 시간을 쪼개시어 점심식사를 함께 마련하여 주신 이종훈총장님과
홍기형부총장님, 노영기교무처장님과 세분의 재단이사님들께 감사를 드리지
않을 수 없다. 또한 총장님실에서 따뜻한 차를 대접받은 우리는 깊은 감사를
드린 후 물러 나와서 지난 학창시절을 회상하며, 캠퍼스를 거닐면서 연신 감
개무량한 탄성을 연발하고 있었다. 물론 이기춘선배께서 교정을 떠난지는 어
언 40년의 세월이니 나와도 세대차이가 있지만, 가장 소중한 우리인생의 한
토막인 젊음과 지성 청춘과 낭만, 꿈과 야망을 키우고, 스쳐 오가며 묻어 오
던곳! 몇군데 새로운 건물이 생기고 새로이 교정을 가꾸기는 하였지만, 돌
한조각 나무 한그루 낯설지 않고, 친근감이 배어있는 교정이 아니던가?

… 어느덧 나의 발길은 행여나 하는 불안과 두려움으로 내가 공부한 문리과대
학 물리학과로 향하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물리학과 교수님실로 들어섰을 때
,나를 가르치신 이완호교수님을 먼저 발견하고서야 비로소 불안했던 마음을
쓸어 내리며 이교수님 앞으로 다가갔다. 이때 이교수님께서 나를 알아 보시
며 놀랍고 반가워 하시며 "어! 이거 경우아니야!"하실때 오히려 나는 대단한
충격을 받았다. 비로소 나의 존재가 모교의 학적부 속에 기록으로 존재한다
는 비애감에서 벗어나 바로 20년전의 스승과 제자의 관계가 복원된 생동하는
캠퍼스에서 나의 실존을 체험하게 되었던 것이다. 역시 모교는 나의 학문과
지성을 낳은 또다른 제2의 정신적인 고향이었다는 사실을 실감케 한다.

그러나 이제 2년후에는 이완호교수님도 정년퇴임 예정이라니 그동안 자주 찾
아뵙지 못하고 보낸 오랜세월들이 허망할 따름이었다. 그런탓에 그날 저녁, 교
수님과의 회식은 밤 깊은 줄 모르고 대화가 꼬리를 물며 이어져 갔고, 사제의
정을 나누며 작별을 아쉬워 해야만 했다. 일찌기 학창시절에도 오늘밤과 같
은 분위기로 교수님들의 강의를 배웠다면?… 돌이켜 생각하면, 그때 학창시
절은 얼마나 넘기 힘든 강이었던가! 현실과 이상의 괴리. 정의와 불의가 대
립하고, 분노와 울분과 격정의 시간들, 이성교제, 모든것이 나의 앞길을 막
는 도전처럼 여겨지고 해결하기 위한 응전을 수시로 요구하고 있었지만, 그
렇기에 독서하고 사색하며 분발하여 조화와 일치를 추구했던 그시절, 세월이
흐를수록 더욱 아련히 눈부신 그때의 학창시절!… 오늘 나는 다시금 모교의
캠퍼스를 거닐며 내가 간직했던 젊음의 영광, 초원의 무지개를 바라보고 있
는 것이었다.

김 경 우<미주 워싱톤지구 중대동문회 부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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