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의미의 평등선거가 도입된 것은 100년도 되지 않는다. 의회제도가 도입된 다음에도 여성과 흑인, 식민지의 백성들은 참정권이 없었다. 서구 의회민주주의의 효시였던 영국에서도 참정권은 일정 기준 이상의 세금을 내는 부자 남성들에게만 주어졌다. 20세기 초 불붙기 시작한 영국여성의 참정권운동은 1913년 ‘경마장의 순교’사건이 기폭제가 되었다. 7만5천명의 관중이 들어찬 경마장에서 15필의 말들이 2.4㎞의 경마장 마지막 코너를 돌아 결승점을 향해 질주하던 순간, 여성참정권운동가였던 에밀리 외일딩 데이비슨은 트랙으로 뛰어들었다. 그녀는 나흘 뒤 숨을 거두었다. 데이비슨의 희생은 불타오르던 여성참정권 운동에 기름을 부었고 영국 정부는 1918년에 30세 이상 여인들에게 투표권을 부여했다.

  그 뒤를 이어 미국이 1920년에, 프랑스가 1944년에, 스위스는 1971년에야 여성의 참정권을 인정하였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선거권을 가지게 된 것은 해방 뒤인 1948년이었고, 미국의 흑인들이 선거권을 획득한 것은 25만 명의 워싱턴 행진이 있은 다음인 1966년이었다. 참정권의 역사는 인간의 존엄성을 스스로 증명해온 과정이었다. 그러나 아직도 사우디아라비아에서는 ‘월경이 정치적 판단을 흐리게 한다’는 어이없는 이유로 여성들의 선거권을 빼앗고 있다. 자신의 대표를 자신이 선택하는 것을 금지하는 독재국가도 지구 곳곳에 남아 있다.

  아프가니스탄 출신의 작가 할레이드 호세이니는 [연을 쫓는 아이]라는 소설에서 ‘세상의 죄는 딱 한 가지’, 도둑질 밖에 없다며 ‘다른 모든 죄는 도둑질의 변형일 뿐이다.’고 말한다. “네가 사람을 죽이면 그것은 한 생명을 훔치는 것이다. 네가 거짓말을 하면 그것은 진실을 알아야 할 다른 사람의 권리를 훔치는 것이다.” 그에 따르면 여성차별주의자와 독재자들은 여성과 국민의 권리를 도둑질하는 자들이다. 누구도 남의 권리를 훔칠 권리는 없다. 부정선거를 하는 것은 선거에 참여한 모든 사람의 선택권을 훔치는 것이다. 스스로의 운명에 대한 선택권을 획득하기 위한 역사의 과정에 바쳐진 숭고한 희생을 도둑질하는 짓이기도 하다.

  이번에 안성캠퍼스 학생대표들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투표소가 없는, 미래형 전자투표제를 실시하기로 결단을 내렸다. 이번 선거가 성공적으로 마무리 된다면 대학뿐만 아니라 우리나라의 선거문화 전반을 바꾸는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주요한 언론들이 스마트폰의 상용화와 함께 이러한 선거제도가 확산될 것으로 예상하며 우리학교의 선거과정을 일제히 보도하고 있다. 조개껍질과 나뭇잎, 종이에 이은 제4세대 투표방식인 완전한 전자투표제도에 우리학생들이 도전하고 있다. 나는 우리 안성캠퍼스의 학생들이 지난 두 번의 선거로 훼손된 중앙인의 명예와 자부심을 이번 선거를 통해 확실하게 회복하리라고 믿는다.

 방재석 안성캠퍼스 학생지원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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