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들어가며

 

 

동성애를 소재로 한 SBS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를 반대하는 광고가 주요 일간지에 게재되며 ‘동성애’를 둘러싼 논란이 뜨겁다. 2010년 9월 29일 ‘참교육 어머니 전국 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전국 연합’(이하 바성연)은 ‘SBS가 창사 20주년 특집으로 국민의 건강과 공익에 반하는 동성애 미화 드라마를 방영’하고 있다며 “<인생은 아름다워> 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라는 문구의 광고를 냈다. 그들은 동성애가 AIDS 감염확률이 730배나 높고 동성애는 선천적인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며 동성애에 관용적인 사회 분위기에 대해 반대 뜻을 분명히 밝혔다. 이에 대해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는 트위터를 통해 “웃음도 안 나온다.”, “돈만 내면 아무 광고나 받아준다.”라며 동성애 소재를 계속 다뤄나갈 것임을 분명히 하였고, 10년 전 커밍아웃한 홍석천은 “에이즈는 동성애자만의 병이 아니다.”, “콘돔 교육부터 하라.”라고 일침을 놓았다. 그 외에 ‘동성애인권연대’를 비롯한 많은 인권관련 단체들은 동성애 혐오를 부추기는 보수단체들에 대한 규탄 성명을 발표하였지만, 바성연은 후속 반박과 광고 게재를 계속하면서 논란은 진행 중에 있다.

이 소논문은 최근의 동성애 논란과 관련하여 광고 게재를 통한 공식적이고 대대적인 동성애 반대 양상에 주목하고자 한다. 이전까지는 대면관계에서 은근한 방식으로 호모포비아를 드러내거나, 논평이나 토론의 장에서 논의의 주제로 다뤄지는 정도가 다였지만 최근과 같이 신문광고와 같은 적극적인 방식으로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이례적인 일이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바성연은 광고게재뿐 아니라, 법원, SBS 본사, 청와대, 국가인권위원회 등에서 1인 피켓시위하고,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를 위한 포럼’을 개최하는 등 다양한 방식을 통해 동성애 반대 관점을 분명히 하고 있다. 그리고 표면적으로는 여러 단체들이 참여하고 있지만 사실 개신교가 중심이 되어, 각종 후원금 및 실질적인 행정을 담당하고 있다. 본 연구는 동성애 반대에 적극적인 ‘개신교’에 초점을 맞추어, 그들을 과잉적으로 추동하는 종교 이데올로기를 분석하고자 한다. 여기서 우리는 개신교의 태도를 단순히 ‘호모포비아’로 규정짓는 차원을 넘어, 동성애 문제가 개신교의 핵심을 구성하는 요소이며, 왜곡된 유토피아의 문제임을 밝히고자 한다.

 

 

2. 가족 안의 동성애 그리고 개신교

 

 

<인생은 아름다워> 이전에도 <커피프린스 1호>, <바람의 화원>, <개인의 취향>등 직접적인 방식은 아니지만 동성애 ‘코드’를 활용한 TV 드라마들이 속속 안방극장에서 방영되었다. 영화의 경우는, <후회하지 않아>, <왕의 남자>, <쌍화점>, <서양골동양과점 엔티크>등에서 보다 직접적이고 노골적으로 동성애를 다루기도 했다. 이때 한기총이나 기윤실과 같은 보수적인 기독교 단체들이 동성애가 양성화 되는 것에 대해 우려를 표명하거나 토론회를 여는 일이 있긴 하였지만, 이번 <인생은 아름다워>와 같이 적극적인 반대운동에 나서지는 않았다. 물론 <인생은 아름다워>가 이전 드라마와 달리 동성애를 중심적 소재로 전면화해서 다룬다는 점과, 2007년도 제 17대 국회에서 폐기됐다가 최근 다시 논의가 재개된 ‘동성애차별금지법’이라는 외부적 환경이 맞물리면서 그 논란이 증폭된 측면이 있다. 여기서는 <인생은 아름다워>가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을 불편하게 한 지점에 주목하여 논의를 전개하고자 한다.

<인생은 아름다워>는 SBS 창사 20주년 특집으로 ‘국가와 사회의 근간은 건강한 가족의 화목’에 있다는 ‘가화만사성’을 기획의도로 출발한 (지극히 보수적인) 홈드라마이다. 부모를 공경하고 처자를 끔찍이 아끼는 남편과 시부모를 모시며 남편과 자식들에게 헌신적인 아내를 중심으로, 그들이 키워낸 네 자식, 삼촌들, 그리고 시부모 사이에서 발생하는 갈등과 삶의 애환을 섬세하게 다루며, 그 모든 문제를 (대)가족 안에서 해결해 가는 내용을 다루고 있다. 동성애는 여타의 문제들과 같이 가족 내 갈등 요소 중 하나로 등장하지만 결국 가족구성원은 그를 이해하고 받아안는 방향으로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이 지점이 보수적인 ‘개신교’인들에게 걸림돌이 되면서, ‘동성애 반대광고’라는 행동으로 연결되는 기폭제가 된다.

바성연 실행위원 이요나 목사(서울 갈보리 채플 교회)는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 신문광고를 낸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김수현 작가가 집필한 드라마 ‘완전한 사랑’(2003년 서울방송)에서도 홍석천씨가 동성애자로 나왔다. 그때 우리 교계에서는 어떤 문제제기도 하지 않았다. 그 드라마의 동성애 배역은 우리 생활에 미치는 영향이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대다수의 생각을 뒤집어 엎는 쪽으로 간 게 문제다. 동성애를 정당화했다. 드라마에서 동성애를 어떻게 그리느냐의 문제다.”

 

 

앞서 말했지만, 개신교는 동성애를 다룬 드라마나 영화가 나올 때마다 신문광고로 대응한 것은 아니다. 이 목사가 말했듯이 <인생은 아름다워>는 이전에 주변부로 다뤄지던 방식과는 확연히 다르게, 대다수에게 영향을 줄 수 있을 정도로 지속적이고 정당화하는 방식으로 동성애를 그리고 있다. 문제는 동성애가 어떻게 그려지느냐에 있는 것이다. 이점에 대해 함께 인터뷰에 응했던 정성희 사무국장이 보다 구체적으로 언급하고 있다.

 

 

“<인생은 아름다워>에 등장하는 동성애 배역을 맡은 배우들이 (시청자에게) 호감을 일으키는 ‘훈남’들일 뿐 아니라 극 속의 동성애자들이 가족 안에서 인정받는 것이 문제다. 동성애자가 과연 저렇게 아름답게 그려져야 하는지 의문이다. 실제 그들의 삶이 아름답지 않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싶었다.”

 

 

정 사무국장이 말하는 ‘동성애자들이 가족 안에서 인정받는 것이 문제’라는 지적은 ‘<인생은 아름다워>가 동성애를 정당화한다’는 이 목사의 지적과 정확히 일치한다. 동성애 반대 광고가 처음 게재된 시기가 커밍아웃한 첫 째 아들을 가족구성원들이 받아들이는 방영 기간과 일치한다는 점을 봤을 때, 동성애가 가족 안에 포섭되는 상황은 바성연을 비롯한 보수적 개신교인들에게 큰 충격과 위기감을 안겨준 것임이 틀림없다.

 

 

3. 개신교의 헤게모니 전략

 

 

2007년 CTS 기독교 TV에서 <동성애, 죄악인가 어긋난 통념인가>라는 제목으로 토론회가 있었다. 그 당시 ‘성적 지향’을 포함한 차별금지법 추진이 문제가 되면서, 기독교 내부의 자기 동일성 확인을 위한 성격으로 열린 토론회였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기독교라는 공통분모를 가진 패널들이 동성애 옹호론자들에게 유리한 ‘돌발’ 발언을 내놓으면서 토론회는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결국 당황한 사회자는 토론에 개입하여 다음과 같이 자기 생각을 말한다.

 

 

"저는 제일 중요한 게 ‘가정’이라고 생각해요. 성경의 가치에서 가정은 한 남자와 여자거든요. 그런데 동성애자들이 결혼을 하겠다, 입양을 하겠다고 말하면서 가정으로 인정해달라고 하는데, 일반적으로는 뭐 어떻게 하겠어요. 하지만 기독교적, 성경적 가치관에서는... 어떻게 생각하세요?"

 

 

개신교는 동성애를 정죄하는 성경의 특정 구절들에 근거하여 동성애를 반대하지만 그것이 매우 제한적으로 언급되어 있고, 또한 우상숭배의 한 행태로서 언급된다는 점들로 인해 오늘날 우리가 말하는 동성애자와는 다르다는 의견들이 제시되며 내부적으로도 많은 논란이 있다. 그때 보수적 개신교 측에서 못 박아 말하는 것이 ‘창조질서’로서의 결혼과 가정이다.

개신교 내 대표적 복음주의 신학자인 존 스토트는 동성애를 언급하는 성경 본문이 네 군데 밖에 없음을 인정하지만, 이것이 "‘매우 특수한’ 동성연애자를 정죄하는 것이지 동반자 관계로서의 동성애를 정죄하는 것은 아니다”라는 의견에 동의하지 않는다. 국내의 경우도 마찬가지인데,『기독교와 동성애』를 저술한 이경직 기독교 철학 교수 역시 ‘동성애와 관련해 가장 근본적인 원리’는 창세기의 창조 설명에 있다고 못 박는다. 그는 “남녀의 구분에 대한 설명은 인류 전체의 특징을 서술한 것이지 하나님의 뜻(당위)으로 제시된 것은 아니다”는 동성애 옹호 학자들의 설명에 대해, 타락 이전 세계에서는 사실과 당위가 일치했다고 반박하며 ‘동성애는 창조질서에 맞지 않다’고 주장한다. 국내에서 규모가 가장 크고 보수적인 예장 합동의 이상원 총신대 기독교 윤리학과 교수는 다음과 같이 창조질서로서의 ‘결혼과 출산 그리고 가정’을 설명한다.

 

 

“하나님은 인류를 남자와 여자로 창조하시고 이들에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을 주셨다. 이어서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한 몸을 이루라는 명령을 주심으로써 결혼의 질서를 창설하셨다. 결혼질서의 중심에 성교가 있다는 사실은 고린도전서6장16절에 “창기와 합하는 자는 저와 한 몸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는 말씀에서 간접적으로 그러나 명확하게 증언된다. 이 본문에서 창기와 합한다는 말은 성교를 말하는데 곧 성교는 한 몸이 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아담언약을 통하여 하나님은 남자와 여자가 연합하여 결혼관계를 형성하고 그 안에서 성교를 통하여 한 몸이 되는 결혼질서를 세우셨다. 그리고 그 열매로서 생육과 번성을 위한 자녀를 출산하도록 하셨다. 여기서 네 가지 질서가 형성되었다. 첫째로, 결혼은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둘째로, 성교는 결혼관계 안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셋째로, 성교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넷째로, 자녀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성교의 열매로서 얻어야 한다.”

 

 

동성애는 세 번째 조항인 ‘성교는 남자와 여자 사이에서 이루어져야한다’는 조항을 정면으로 범하고 있으며, 결혼이 허용되지 않는 상황에서 두 번째 조항도 어기고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따라서 동성애는 아담과 하와가 타락한 이후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범하는 보편적이고 심각한 윤리적인 죄악’으로 규정된다. 결국 동성애를 찬성하는 것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며 인간의 타락한 본성을 합리화하는 죄악이고, 반면 동성애를 반대하는 것은 신성한 기원을 가진 ‘결혼 제도’를 보호하고 타락한 본성을 역행하는 거룩한 일이 되는 것이다.

<동성애허용법안반대국민연합>(이하 동반국)은 지난 6월 14일자 중앙일보에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말이냐!’ 라는 제목의 광고를 실었다. ‘며느리=여자’라는 결혼 제도의 ‘평범한 상식’에 의거하여 구독자들에게 <인아>시청거부운동을 호소하는 전략적 문구였는데, ‘동성애는 가정과 사회와 국가를 무너뜨립니다.’, ‘동성애는 AIDS를 확산시킨다.’ 등의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결국 동성애는 사회의 근간을 형성하는 ‘결혼 제도’를 위협하고 성적 문란을 야기하는 사회악으로 규정된다.

이렇듯 개신교가 동성애를 반대할 때, 창조질서인 결혼제도에 대한 위협이자 성적 문란의 온상지라고 하는 바로 그 보편적 개념은, ‘며느리가 된 남자’, ‘에이즈로 죽은 내 아들’이라는 보다 구체적인 표상으로 채색된다. 우리는 여기서 “보편적인 이데올로기적 개념들 각각은 언제나 그것의 보편성을 채색하고 그것의 효용성을 설명하는 어떤 특수한 내용에 의해 헤게모니화 된다는 사실”을 확인하게 된다. 이데올로기 투쟁은 어떤 특수한 내용을 ‘전형’으로 선전하는 층위에서 일어나는데, 개신교는 동성애를 결혼 제도의 붕괴, 에이즈의 확산의 주원인으로 몰아가면서 그 헤게모니를 획득해가는 것이다. 개신교는 동성애에 대한 우호적인 분위기에 맞서 그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죄악 중 하나라는 사실을 대중 매체를 통해 선전하며 헤게모니 싸움을 해가고 있는 것이다.

 

 

4. ‘증환’(sinthome)으로서의 동성애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점은 성경은 많은 죄악에 대해 말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성애를 반대하는 근거로 제시되는 고린도전서 6장 9절의 경우, 동성애는 ‘음란하는 자나 우상 숭배하는 자나 간음하는 자나 탐색하는 자나 남색하는 자...’중 하나로 언급되고 있을 뿐이다. 정통파 기독교의 입장에서 동성애 반대 운동에 적극적인 합동신학대 이승구 교수는 동성애를 정죄할 때 “다른 죄인들과 같은 죄인들이지, 그들이 더 심각한 죄인들이라고 생각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고 말한다.

동성애는 다른 모든 성적인 죄와 같이 심각한 죄로서, 동등하게 취급해야할 것으로 언급되고 있다. 나아가 국내에도 잘 알려진 기독교 변증가이자 판타지 소설 작가인 C.S 루이스는 성문제가 기독교의 도덕의 중심에 있는 것이 아니며, 가장 나쁜 것은 ‘육체의 죄’보다 험담이나 교만과 같은 ‘영적 죄’에 있다고 본다. 그리고 오늘날 많은 개신교인들이 동성애 문제에 접근할 때, ‘모두가 죄인이다’는 대전제에서 동성애자와 동성애를 구분하며 후자를 개선하기 위해 목회적 차원에서 동성애자를 받아들인다. 하지만 동성애 문제는 다른 죄악(위정자의 부정부패, 목회자의 성추행, 기업들의 탈세 및 노동자 탄압)에 대한 개신교인들의 반응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공격적이고 대대적이다.

동성애는 여전히 여러 죄악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절대 타협할 수 없는 마지노선이자 임계점과 같다. 이점에서 개신교 내 동성애 문제는 라캉적 의미에서 ‘증환’으로 볼 수 있다. 그것은 개신교의 본질을 구성하는 핵심적 매듭이며, 핵심적 가치들과 연결되는 지점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 증환의 매듭이 풀리면 개신교 전체는 붕괴된다. 이것은 동성애 문제와 연결되는 두 가지 핵심적 지점들을 살펴봄으로써 확인할 수 있다.

우선 가족 제도의 신성화이다. 개신교는 하나님이 직접 세운 일종의 사회성을 지닌 기관으로서 가정과 교회를 말한다. 그 중에 가정은 인간들의 사회적 계약으로 생겨난 것이 아니며, 교회나 국가보다 먼저 제정되었다. 즉 태초에 하나님이 제정한 최초의 ‘신적 기관’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루는 결혼(창세기 2:24)을 기반으로 하여, ‘생육하고 번성하라’(창세기 1: 28)는 창조명령(문화명령)에 따라 자녀를 생산한다. 가정의 목적은 여러 가지로 설명할 수 있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문화명령을 지키는 것이며, 이를 통해 하나님에게 영광을 돌리고 하나님 나라를 확장하는 것이다. 가정은 하나님의 뜻을 이뤄가는 ‘근본적이며 최초의 기관’인 것이다. 존 스토트는 결혼을 이성애적 일부일처제로 정의하며 이 제도에서 벗어나는 모든 행위를 다음과 같이 정죄하고 있다.

 

 

“하나님이 계시하신 의도에서 벗어나는 모든 종류의 성적 관계나 행위가 사실상 하나님을 불쾌하게 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심판 아래 놓이게 된다. 여기에는 일부다처제와 일처다부제, 동거와 비밀 결혼, 가벼운 만남과 한시적 관계, 간음과 많은 이혼 사례들, 그리고 동성애 관계 등이 포함된다.”

 

 

문제는, 사회적으로도 비난받는 간음이나 이혼과 같은 행위들과 달리, 동성애가 ‘다름’과 ‘선택’의 문제로 다뤄진다는 데 있다. 이 점 때문에 개신교는, 하나님이 제정한 ‘가정’에 대한 위협이자 걸림돌인 동성애를 적극적으로 공격하고 나선 것이다.

둘째로, 기독교의 핵심적 가치는 다원주의와 상대주의 문화 속에서 ‘옳고 그름의 기준’, 즉 절대 진리를 세우는 일이다. 개신교 내에 대표적 문화관련 연구자인 신국원 교수는 상대적으로 유연성이 높은 문화영역에서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것은 쉽지 않지만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창조명령의 원리에 따르면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는 게이 문화를 (잘못된 것으로) 판단할 수 있는 근거를 다음과 같이 제시한다.

 

 

“우선 창조 명령 자체에 문화를 시험하는 시금석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은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말씀이다. 이 원리에 따르면 삶을 풍요롭게 하고 활기차게 만들어 주는 문화가 바른 것이다. 그렇지 않고 삶을 억압하고 빈곤하게 하는 것은 잘못된 문화라고 판단할 수 있다. 이는 정교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유효한 기초 원리이다. 예를 들면 게이 문화의 경우, 모든 사람이 동성애자가 된다면 한 세대 후 삶 자체에 위기가 올 수 있으므로 그것이 선한 문화가 아니라는 판단이 가능하게 된다. (중략) 결국 문화 비판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문화의 규범을 명시적 또는 함축적으로 창조 속에 두셨다는 것을 믿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그럴 때만이 다양한 문화의 상대적 관점을 초월해서 옳고 그름의 기준을 가질 수 있기 때문이다.”

 

 

신 교수는 인간의 개방성과 자유가 문화의 기초라고 인정하지만, 이것이 자율적인 개방은 아님을 분명히 한다. 개방성에는 방향과 책임도 함께 들어있으며, 창조질서는 문화가 나아갈 개방성의 방향을 지시한다. 그리스도인은 창조 질서와 그것의 규범적 성격을 이해함으로써, 상대주의가 만연한 사회 속에도 방향감각을 가질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이 문화 전쟁 시대의 기독교 문화 전략인 것이다. 그 구체적 방안으로서, 공동체적 문화역량이 강조된다. 가정과 (확대된 가정으로서의) 교회는 잘못된 문화를 걸러 내고 건전한 문화를 향유하는 기독교 문화 전략의 기지인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개신교의 핵심적 가치들(가정, 옳고 그름의 기준)이 조우하는 지점을 목격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참교육 어머니 전국 모임’과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의 연대는 절묘한 조합이다.

조선일보 광고 이후 동성애인권연대를 중심으로 ‘27개의 단체 및 2인의 개인’은 동성애 혐오를 조장하는 바성연을 규탄하는 공동기자회견문을 발표했다. 그들은 바성연의 편견과 논리비약으로 점철된 광고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책임져라”에 대해 조목조목 반박하며, 이성애에 관한 것만 보고 듣는 사회 속에서 드라마 한편을 보고 동성애자가 된다는 해괴한 주장과 에이즈가 마치 동성애자들만의 질병인 것처럼 진술한 점에 대해 사실과 다르다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바성연은 “오해!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결코 혐오하지 않습니다”는 재반박 보도자료/성명서를 통해 여전히 드라마가 정체성의 혼란을 느끼는 청소년들에게 위험하며, ‘에이즈와 동성애의 관련성은 밀접하다’는 주장을 복잡한 수식을 동원하면서 재차 강조했다.

바성연이 스스로를 ‘전문가 집단’이 아니라고 밝혔듯이, 그들의 주장과 근거는 빈약하기 그지없다. 그럼에도 동성애 반대 주장을 굽히지 않는 것은 인권단체에서 말하듯 ‘동성애에 대한 증오와 공포를 되살려내려고 안간힘을 쓰는 것’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히려 그들의 비약적 주장은 “통제 불가능한 실재를 무력한 물신적 대상으로 대체함으로 마치 상황에 대한 주체의 통제가 가능한 것처럼 위장”하는 물신주의적 행동에 가깝다. 앞서 말했던 개신교의 핵심적 가치들-가정과 절대적 진리-이 이미 무너진 오늘날, 바성연은 동성애라는 물신적 대상에 과도하게 집착함으로써 개신교 전체의 붕괴를 막고자 안간힘을 쓰고 있는 것이다.

 

 

5. 나가며

 

 

필자는 동성애 반대자의 목소리를 특수한 종교적 입장을 강요하는 ‘호모포비아’ 세력으로 단정 짓는 감정적 차원 너머의 것을 보고자 했다. 그들의 포르노그라피적 광고 문구와 성명서에는 분명히 ‘호모포비아’로 설명할 수 없는 과잉적이고 이질적 요소들이 담겨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를 위한 포럼>에서 만났던 바성연 구성원들은 광고에서의 난폭함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동성애를 죄로 규정지으며 분명히 선을 그었지만, 포럼에서 회복자 증언에 나선 (전직) 게이이자 (현) 에이즈 감염자에 대해서는 격려와 안타까운 마음을 잊지 않았다. 그들은 극한 투쟁을 하더라도 ‘고통과 애통’ 속에 힘들어하는 동성애자를 기억해야한다는 점을 누누이 강조했다. 성명서에서도 밝혔듯이 그들은 “유사 이래 동성애 현상이 있어 온 것”과 “동성애자들이 사회적 냉대로 고통을 겪어온 것”에 대해 인지하고 있음을 분명히 한다. 그럼에도 “이 세상에서 때로는 등대와 같이 갈 길을 밝혀 주고, 때로는 화로와 같이 춥고 떨리는 삶을 덥혀줄” <평범한 상식>을 지키기 위해, 에이즈 확산방지를 위해, 더불어 성 정체성으로 인하여 혼란을 겪는 청소년을 보호하기 위해, 동성애를 미화하는 공중파 방송을 막을 수밖에 없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우리는 바성연의 고약하고 악의적인 선전에 대해 ‘호모포비아’라고 성급하게 규정짓기 전에, 프레드릭 제임슨이 말하듯 극악한 이데올로기에조차 있는 ‘유토피아적 계기’를 발견할 수 있어야 한다. 지젝은 이를 뒤집어 “이데올로기란 비-이데올로기의 외양 형식, 비-이데올로기의 형식적 왜곡/전치”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바성연의 동성애 반대는, ‘등대’와 ‘화로’에 비유된 <평범한 상식> 무너진 어둡고 부패한 사회 속에 (개신교적 의미의)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갈망으로 읽힐 수 있다. 이것은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말아야 할 원칙을 고수하려는 건전한 보수주의자의 입장이기도 하다. 개신교인들은 동성애가 죄이기 때문에 동성애자를 해코지해도 된다던가, 무시해도 된다고 (의식적으로는) 생각하지 않는다. 상당수의 개신교 신자는 목회적 차원에서 동성애 문제에 접근하려고 노력한다.

문제는 이러한 유토피아적 충동이 (노동력) 재생산이 가능한 이성애자 중심의, 여성의 노동 착취가 가능한 가부장 중심의 가족 제도를 계속해서 적법화하는 이데올로기적 텍스트 속에서 진행된다는 데 있다. 결국 유토피아적 갈망은 그것을 실현하기 위한 특수한 어떤 개념(동성애는 사회구성체의 근간을 이루는 상식을 위협하고 에이즈를 확산하며 청소년을 혼란에 빠뜨린다. 따라서 혼란을 극복하고 원칙을 세우기 위해서는 동성애를 ‘죄’라고 말해야한다.)과의 연결 속에 이데올로기로 왜곡/전치된다.

시카고신학대학에서 LGBTQ(Lesbian, Gay, Bisexual, Transgender, & Questioning) 센터를 운영하고 있는 테드 제닝스 교수는, 이 왜곡이 발생하는 지점에서 두 가지 결정적 계기를 탐구한다. 우선 그는, 교회가 콘스탄티누스 황제(재위 306~337년) 이후로 죄에 대해 성서적으로 말하기를 주저했던 역사적 사실에 주목한다. ‘성서에서의 죄’는 ‘억압과 불의, 탐욕과 가난한 사람들에 대한 무관심’과 관련 있지만, 교회는 기독교의 공인 이후 사회 지도층을 공격하는데 겁을 먹거나 두려워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결국 권력자와의 공모를 감추기 위해 사적 영역으로 여겨졌던 침실 속에 죄의 온상을 발견하고, 인간의 도덕적 실패를 대신할 희생양으로 ‘성’을 문제삼게 된다.

또 다른 왜곡은 ‘결혼과 가정의 가치들’을 복음과 결합하는 데서 발생한다. 앞서 살펴봤듯이, 교회가 동성애를 반대하는 기저에는 ‘가족의 신성함’이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점은 예수가 모든 복음서에서 가족 제도를 공격하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했을 때, 놀라운 왜곡이다. 예수는 친가족이 그에게 왔을 때, 그들이 자신의 가족이 아니라고 말하며 그의 가족은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따르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또한 그가 제자도를 말할 때는 어머니와 형제, 자매, 그리고 처자를 미워하지 않으면 누구도 하나님 나라를 얻을 수 없다고 말한다. 이것은 교회가 신성시 하는 가족적 가치들과는 화해할 수 없는 상충관계에 있다. 그러나 교회는 사회의 가장 기본적인 제도의 안정성에 대한 보장으로서의 가족을 절대화 한다. 당연한 결과겠지만, 교회는 더 이상 ‘폭력과 범법의 현장으로서의 가족’을 폭로할 수 없게 되고, 단지 동성애자를 희생양으로 삼아 성이 죄악이라는 신화를 영속화한다. “호모포비아는 가족이라는 제도로써 불의를 영속화하는 일에 우리가 공모한 것과 섹슈얼리티에 대해 우리가 혼동하는 것에 대한 구실”이 된 것이다.

 

 

드라마 <인생은 아름다워> 속 동성애 커플의 성당 언약식 장면이 가톨릭의 반대로 통 편집됐다. 김수현 작가는 한 일간지와의 인터뷰에서 ‘내가 생각했던 가톨릭과 다르구나, 살인자도 숨는 성당인데 동성애는 안 되는구나’라며 아쉬움을 표했다. 그는 트위터를 통해 “청률이(시청률)에 배고픈 제작사로부터 ‘지금이라도 두 아이(동성애 커플)만 어디로 보내버리면’ 하는 이야기를 들었다. 그러려면 애초에 시작을 안 했고, 죽는 날까지 그렇게 비굴한 글쟁이로 전락할 수 없다”고 토로했다. 동성애는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 불편한 소재이며, 대중적이지 않다는 사실을 잘 보여주는 대목이다. 그리고 가장 불편했던 개신교의 광기어린 포화 속에 드라마는 문제작으로 부각되며, 논란의 중심에 서왔다. 하지만 <인생은 아름다워>는 동성애를 전면에 내세웠음에도 시청자들에게 감동을 주고, 공감을 얻을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주었다. 이후에 동성애는 닳고 닳아 식상해진 이성애적 관계를 대체하여, 극적인 드라마를 통해 대중적 성공을 얻을 수 있는 날이 머지않았다. 만약 동성애 문화가 하나의 상품으로서 국내에 정착하게 된다면, 우리의 논의 또한 전혀 다른 방향에서 고찰되어야 할 것이다.

 

 

 

 

 

 

 

 

 

 

 

 

※ 인용 문헌

 

 

(1) 자료

동반국, 「며느리가 남자라니 동성애가 웬말이냐!」2010년 5월 27일 조선일보 광고

동성애자인권연대, 「동성애혐오 조장하고 HIV/AIDS 감염인에 대한 차별 부추기는 '바른 성문화를 위한

국민연합'과 '참교육 어머니 전국모임'을 강력히 규탄한다!」2010년 10월 1일 보도자료

바성연,『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를 위한 포럼 자료집』, 2010년 10월 29일

바성연, 「오해! 우리는 동성애자들을 결코 혐오하지 않습니다.」2010년 10월 8일 보도자료

바성연, 「<인생은 아름다워>보고 ‘게이’된 내 아들 AIDS로 죽으면 SBS 책임져라!」2010년 9월

29일 조선일보 광고

차별없는세상을위한기독인연대,『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범기독교 토론회 자료집』, 2008년 1월 29일

 

 

 

 

(2) 단행본

다니엘 헬미니악, 『성서가 말하는 동성애 신이 허락하고 인간이 금지한 사랑』, 김강일 옮김, 해울, 2003.

이경직, 『기독교와 동성애』, 기독교연합신문사, 2006.

이동원, 『사랑 플러스』, 나침반, 2002.

슬라보예 지젝, 『까다로운 주체』, 이성민 옮김, 도서출판 b, 2008.

신국원,『신국원의 문화이야기』, IVP, 2002.

정정숙, 『聖經的 家庭使役』,베다니, 1994.

정혁현, 「밀양: 그녀의 목에 걸린 가시」, 김소연 엮음,『라캉과 한국영화』, 도서출판b, 2008.

존 스토트, 『존 스토트의 동성애 논쟁』, 양혜원 옮김, 홍성사, 2006.

C. S 루이스, 『순전한 기독교』, 장경철∙이종태 옮김, 홍성사, 2001.

 

 

(3) 논문

이상원, 「동성애와 차별금지법」,『차별금지법의 올바른 제정을 위한 범기독교 토론회 자료

집』,2008년 1월 29일.

이승구, 「동성애 문제에 대한 정통파 기독교의 견해」,『동성애차별금지법 입법반대를 위한 포럼 자

료집』2010년 10월 29일.

이원석, 「기윤실의 대중문화 논쟁」, 『문화과학』제56호, 2008년 겨울호.

정정숙, 「현대 가정의 위기와 정체성」,『기독교교육정보』제10집, 2005년 4월.

테드 제닝스, 「교회와 동성애: 호모포비아의 극복을 위하여」, 『기독교사상』제 618호, 2010년 6월.

 

 

 

 

(4) 신문기사

강혜란, 「7일 막 내리는 ‘인생은 아름다워’ 김수현 작가 인터뷰」, 『중앙일보』, 2010년 11월 2일.

류화선, 「기윤실 청년포럼 "동성애 코드열기"로 본 동성애 문제」, 『뉴스앤조이』, 2006년 3월 13일.

허재현, 「‘동성애 반대 광고’ 이요나 목사 “나도 동성애자였다”」, 『한겨레신문』, 2010년 10월 29일.

 

 

 

 

(5) 웹페이지

SBS 홈페이지 http://www.sbs.co.kr/

CTS열린광장 홈페이지 http://j.mp/aAouGF

바른성문화를위한국민연합 네이버 카페 http://cafe.naver.com/ascis

한국성교육상담협회 홀리라이프 홈페이지 http://www.holylife.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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