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적인 것’만 고민했는가? 이제 ‘사회적인 것’이 대세다. ‘사회적인 것’은 뒤르켐에 의해 처음 제시됐고 많은 사상가들의 관심을 받았다. 포스트모더니즘과 신자유주의의 등장은 ‘사회적인 것’을 위기에 직면케 했다. 하지만 최근 사회의 보호와 재구축 운동이 속속 관찰되고 있다. 이 역시 자본에 의한 포섭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양태라는 점은 ‘사회적인 것’의 부활을 어렵게 한다. 2010년 현재 ‘사회적인 것’의 위치와 가능성을 알아본다.

 1부 사회적인 것의 개념과 필요성
      - 왜 ‘사회적인 것’인가?
 2부 사회적인 것의 위기와 종언
      - 포스트모던 징후, 그리고 사회적인 것의 위기
      - 신자유주의, 혹은 사회적인 것의 파괴
 3부 사회적인 것의 재구축과 자본의 포섭, 돌파구는 없는가?
      - 경제학 제국주의의 첨병, 사회 자본론
      - 위기관리 전략, 사회책임투자
      - 사회적 소통의 퇴행과 대안, SNS
      - 착하지 않은 유통과 거래, 착한소비
 4부 사회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
      - 사회적인 것의 가능성과 정치를 위한 조건들

 

자본주의가 디지털 국면에 들어서면서 생산의 사유화 방식의 경향은 점점 더 예측하기 힘들어지고 있다. 정보와 문화재 등 비물질 재화의 가치가 새롭게 형성되고 자본에 의해 전유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시장 법칙들이 창출된다. 자본주의 태동 이래, 화폐가 물질 재화의 교환가치를 위한 추상의 등가물로 등극하는 방식에 비해, 정보와 문화재 등 비물질 재화에 대한 소유 개념과 재산권을 강요하는 방식은 훨씬 더 집요하고 다면적이고 빠르다. 그 경향성으로 봐도, 진작에 예상했던 것보다 디지털 자본의 형성과 발전 방식은 너무나 세련되고 공고하다. 소비에트의 붕괴 이후 자본주의의 영원불멸을 예찬했던 후쿠야마의 십수년전 망발이 어찌보면 오늘의 디지털 자본의 상황에 가장 걸맞는지도 모르겠다. 카를 마르크스가「공산당선언」에서 “모든 굳건해 보이는 것들이 대기 중으로 녹아 사라져버린다”고 짚었던 것처럼, 무엇이든 삼키는 가공할 괴물의 모습을 우리는 진정 현대 후기자본주의 시대로부터 확인할 수 있다.

후기자본의 포획술의 일환, 소셜 미디어
꿈의 가상 전자 공간에 불과했던 인터넷과 그것의 반영물로 만들어졌던 영화 <매트릭스>의 상징과 이미지들이 한 시대를 풍미하던 적이 있었다. 이제, 영화 <소셜 네트워크>의 등장과 함께 자본과 대중의 관심은 새롭게 형성되고 전이되고 있다. 디지털 가치의 상업화를 넘어서서, 자본의 힘은 이제 흔히들 열광하는 누리꾼들의 ‘집단지성’ 혹은 ‘창발성’, 그리고 아래로부터의 ‘저항성’을 상업화하여 포획하는 단계에 이르렀다. 모든 이가 지식의 소비자이면서 생산자인 ‘프로슈머’(prosumer)가 되는 장밋빛 전망은, 사실상 유저들 자신이 열광하는 수사가 아니라 상업적 포털들과 기술주의자들이 늘어놓는 기술 세례의 기만으로 전락한 지 오래다.
‘정보공유의 자유 철학’의 핵심인 이용자간 ‘협업’을 통해 이뤄졌던 오픈소스 프로그램 개발의 전통은, 소비자들에게 놀 자리를 깔아주고 이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를 상업적 이윤으로 재전유하는 좀 더 복잡다기한 자본의 이윤창출 방식 내지 사업모델로 재응용되고 있다. 현대 디지털 경제는 이윤 창출의 근거를 신경제 이후에 살아남은 (소위 웹2.0이라 불리는) 상업적 기업들, 즉 애플식 ‘앱’ 모델이나 아마존닷컴의 상거래 모델에서 자본 사활의 미래를 본다. 이들의 생존과 이윤 전략은 다소 새롭지만 기존의 시장 룰에 충실하다. 애플은 컴퓨터를 팔기도 하지만 이를 구입한 이들이 만들어내는 자발적 ‘애플 문화’를 통해 가치를 창출하고 자본의 재생산을 도모한다. 아마존은 시장에서 주목받지 못했던 상품들의 소비를 촉진하는 ‘롱테일’의 기적을 일으키는데, 소비자들의 구매 성향을 앞서 관리하는 ‘리틀 브라더’의 감시 기술을 활용한다.

어느 디지털 기업보다 주목을 받는 애플의 ‘앱’시장은, 누구나 앱 생산의 주체가 될 수 있다는 선전에도 불구하고 특정 기기와 콘텐츠를 지속적으로 결합해 이윤의 눈덩이를 독과점적으로 불린다는 점에서 폐쇄형 닫힌 모델의 한계를 지닌다. 애플과 아마존닷컴이 이렇듯 신경제 이후 디지털 시장경제의 성공적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는 하나, 이들은 새롭게 출현하는 이윤 창출의 신경제 모델과는 좀 거리가 있다. ‘잡종(hybrid)경제’가 그것인데, ‘위키노믹스’라 불리는 공유형 경제 모델과 애플식 상업적 이윤 모델이 뒤섞인 이 새로운 시장 모델은, 이윤 창출의 메커니즘이 보다 교묘하고 세련되다. 이의 대표격은 소셜 미디어다. 이는 무엇보다 생산 영역 바깥에서 움직이는 소비자들의 문화를 가치사슬의 중심으로 끌어들인다. 즉 소비자들의 능동적 활동 그 자체가 이윤 생산의 근거가 된다. 예를 들어, 구글/유튜브에서 생산되는 유씨씨 콘텐츠와 인적 네트워크는 소비자에겐 개인적 유희와 명성을 획득하기 위한 창작과 영상소비의 놀이지만, 자본에겐 구글/유튜브의 주식 가치를 부풀리고 이윤을 확보하는 콘텐츠로 기능한다. 소셜 미디어에서도 이는 예외가 아니다. 관심사에 따라 맺어진 ‘팔로워’와 ‘팔로잉’의 연계 지점들에 적절한 광고주들이 배너로 포진하거나, 아예 트윗을 조직관리와 광고 수단으로 활용하는 방식들이 점증한다.

결국, 아마추어 창작 행위 자체가 비지니스적 포획의 일환으로 기능하는 것이다. 디지털 국면에서 저작권을 행사하는 기업들은, 일반 누리꾼들이 지니는 자유로운 카피레프트 문화를 시장 안에서 순화하거나 끌어들이려 한다. 그것이 닷컴이후 경제 모델인 리믹스 경제의 근간이 된다.

국내 소셜 미디어의 위상
자본의 새로운 이윤 창출을 위한 본원적 기능과 함께, 일단은 위키피디아(Wikipedia), 플릭커(Flickr), 페이스북(Facebook), 트위터(Tweeter), 마이스페이스(Myspace) 등 사람과 사람을 관계맺고 소통하도록 돕는 다양한 미디어들은, 인적 연대의 끈끈함을 위한 보증수표로 신화화하고 있다. 단순히 자신의 글을 보여주거나 소비하던 시절을 지나, 가진 것들을 서로 나누고 생산하고 공유하고 연결하여 지속적 유대를 형성하는 미디어 서비스 유형들로 등장한다.

아이폰 등 스마트폰의 뒤늦은 시장 형성이, 최근 국내 소셜 미디어의 성장을 과열로 몰아가는데 일조한다. 그 볼썽사나운 면모에는 국내 대기업들의 움직임이 단연 독보적이다. 어지간한 기업들은 구글/위키로부터 새로운 부 창출의 경제학을 학습하고,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네트워크 기업 조직관리학과 소셜 망을 활용한 기업 마케팅학의 재부활을 꿈꾼다. 직장인들은 자기계발의 일환으로 일과후 최신 소셜미디어 신간들을 자발적으로 읽고 토론하며 동료들과 학습 세미나를 수행한다. 일례로, 지난해 중반을 기점으로 하여 올해 5월부터 트위터 관련 서적이 봇물 터지듯 서점가에 쏟아져 나오기 시작하고 있다. ‘~따라잡기’ 혹은 ‘~정복’ 류의 실용 가이드북들이 직장인들의 필독서로 떠오른다. ‘씨크한’ 우리 사장님과 회장님의 트윗을 따르며, 노사간 평등과 민주적 소통의 가능성에 감격해하고 열광하는 젊은 직원들도 나온다.

연대의 기술로써 소셜 미디어, 그리고, 트위터문화
인적 소통의 새로운 모바일 디지털 문화로만 여겨졌던 소셜 네트워킹 문화는 이렇듯 자본에 의해 관리되고 소비자들의 유희를 재전유하는 방식을 통해 자본 ‘가치화’한다. 허나 사정은 상당히 양가적이다. 지난 지방선거에서 ‘트위터혁명’이라 불릴만큼 우리는 2030세대에 의한 트위터를 활용한 디지털 문화정치의 가능성을 맛보았다.

가만보면 우리에겐 특정 역사적 국면에서 대중의 정치적 영향력을 효과적으로 발산한  특정 미디어 혹은 기술 사례들이 꽤 많다. 다소 거칠게 본다면, 90년대 초?중반의 피시 통신문화, 90년대말 게시판 문화와 딴지일보 등 풍자·패러디 사이트들의 등장, 2000년대 초반 오마이뉴스 등 누리꾼들의 게릴라식 글쓰기를 통한 온라인 시민 저널리즘의 발전, 2004년 중반 총선과 노무현 전대통령의 탄핵시 인터넷 카페들을 통한 대항 담론 생산, 2008년 광우병 파동과 촛불 시위 속 휴대전화, 넷북, 휴대 카메라 등 게릴라 이동형 매체 등을 활용한 실시간 인터넷 방송과 UCC 제작, 그리고, 올해 지방선거에서 대항 여론 형성과 투표 독려에 한몫한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가 그것이다.

권력의 일상화가 점점 기술에 의존하는 경향이 강화될수록, 기술 세대들은 억압의 계기가 강한 코드들을 담고있는 기술에서 멀어지거나 우회해 탈주 가능성이 높은 기술적 대안들에 눈을 뜨기 마련이다. 이런 맥락에서 보면, 소셜 미디어의 일종인 트위터는 촛불 정국 이후 소통과 이바구의 배출에 장애가 생기면서 누리꾼들의 대안으로 떠오른 경우다.
 

지난 6월 지방선거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던 트위터 등 신종 ‘소셜 미디어’의 긍정적 가치를 상기해보라. 후기자본주의의 새로운 이윤 형성의 근간으로써 미디어 이용자들의 소위 ‘창발성’을 포획하는 새로운 후기자본주의의 논리가 그 근간에서 작동하고, 한국적 정치 특수성이 결합되면서 이들 소셜 미디어들이 그 긍정적 기능을 상실하거나 불구화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소셜 미디어, 특히, 2030세대들의 정치적 목적의 소셜미디어 활용과 이들을 잇는 촛불세대들의 문화정치적 실천 또한 주목해야 할 것이다. 트위터 등 소셜 미디어를 통해 이들 세대들이 만들어내는 새로운 커뮤니티 소통의 배출구, 무엇보다 뉴미디어를 활용하여 권력 억압과 여론 조작 국면에서 새로운 문화정치의 활력소를 찾고, ‘오정보’(misinformation)를 교정하고 권력의 구린 내면을 폭로하는 기능을 높이 사야할 것이다.

 

이광석
호주 울런공 대학 연구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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