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에선 시간이 안 가는 줄 알고 어물어물 시간을 보냈다. 정신을 차려보니 나도 제대를 하고, 복학을 하고, 이젠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 있다. 나에게 1학년 후배들이야 하나같이 동생같고 귀엽지만 그들에게 나는 까마득한 선배가 되어버렸다. 하지만 아직 간직하고 있는 대학 생활의 낭만이라는 것이 있으니 바로 선거다.

  1학년이던 내 눈에 비친 대학의 학생회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스스로 고민하고 대안을 제시하고 학우들과 함께 문제를 풀어가는 대학의 학생회는 감히 중·고등학교의 그것에 비할 것이 아니었다. 특히 선거라는 과정은 기성 정치판이  가질 수 없는 열정과 순수함을 보여주었다. 선거철이 되면 각 후보들은 강의실과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열변을 토했다. 학우들은 그것을 경청하고 심사숙고 끝에 한 표를 행사했다.

  기억이란 언제나 미화되기 마련이지만, 요즘 느껴지는 선거철의 열기가 예전만 못하다는 생각을 해본다. 올해 서울캠의 총학생회 선거는 우여곡절 끝에 단선으로 치뤄지게 되었다. 이런 현상이 앞으로도 심화되리라는 생각에 졸업을 앞둔 4학년의 입장에서도 마음이 무겁다.

  사실 대학의 선거와 학생자치의 위기에 대한 우려가 고개를 든 것이 어제 오늘의 일은 아니다. 학과 단위의 학생회들은 후보자 한 명을 배출하기 힘들어진 것이 이미 오래 전이다. 총학생회의 선거 참여 문제가 거론될 때마다 공약의 부재, 실행능력, 후보자의 성향 등을 운운하며 개탄하는 목소리가 높다. 물론 타당한 지적이긴 하다. 하지만 학생회의 가장 밑바탕을 이루는 학과 학생회의 활성화가 이뤄지지 않는 이상 단과대와 총학생회 선거에 대한 무관심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는 힘들 것이다.

  학과 학생회장으로 활동하던 때가 떠오른다. 번번이 무산되던 학생총회와 개강총회, 저조한 행사 참여는 그때도 문제였다. 급기야 후임 학생회장 후보자는 나오지 않았다. 끝내 그 상태로 임기를 마무리하고 입대를 하면서 내가 보낸 1년을 수없이 자책하고 곱씹어야 했다. 돌이켜보면 허점투성이에 게으르고 좌절하기 일쑤였던 나를 그 때마다 일으켜주고, 지친 학생회에 동력을 불어넣어 주던 것은 선후배, 동기들과의 끈끈한 애정과 관심이었던 것 같다.

  오늘날 학생회는 혹시 끈끈한 인간관계마저 잃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성적 때문에 울상인 2학년은 학과에 발붙일 시간이 없다. 진로 문제로 고민하기 바쁜 3학년은 후배들의 얼굴을 모른다. 취업에 매달려야 하는 4학년은 학교에 나오지 않는다. 대체 뭐가 뭔지 알 길이 없는 1학년은 뿔뿔이 흩어진다. 학과 학생회가 분해된 자리에 단과대와 총학생회는 설 곳이 없다.

  팀플과 발표가 꼬리를 물고 조여오지만, 오늘은 시간을 쪼개서라도 후배들을 만나야겠다. 다음 선거 준비로 속을 끓이고 있을 학생회장을 만나서 이야기도 하고 술도 한 잔 해야지.

 

손인국 2007년 국어국문학과 학생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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