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희동 골목에서 그의 작업장을 찾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독특한 외관의 갤러리와 고급스러운 카페가 즐비한 곳에서도 커다란 문이 유난히 돋보였다. 문을 열고 들어가자 가장 먼저 천장에 매달린 화려한 조각품이 눈에 들어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도 범상치 않은 모양의 조각품들이 매달려 있었다.

 

키네틱 아트와 기계생명체
숨을 불어넣는 아티스트

  최우람의 작품은 ‘키네틱 아트’로 분류된다. 작품 그 자체가 움직이거나 움직이는 부분을 넣은 예술작품으로 ‘움직임’이 가장 적극적으로 표현되는 조각 장르다. “키네틱 아트의 시작은 르네상스 이전 시대로 거슬러 올라가요.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분수를 이용해 물의 흐름을 표현하는 장치를 만들었어요. 그런 것도 일종의 키네틱이죠. 저는 모터나 동력장치를 주로 이용하는데 최근에는 기계나 전자가 발달하면서 키네틱도 점점 첨단기술을 많이 응용하고 있어요. 간단하게 움직임이 가장 강조되는 장르라고 생각하시면 쉽죠”

  그가 키네틱을 시작한 것은 대학교 4학년 때였다. 찰흙과 목재를 이용한 조각을 주로 작업하고 있었던 그에게 어느날 ‘움직임’을 이용한 과제물이 주어졌다. 그는 거기서 고등학교 시절 기계를 좋아했던 자신의 꿈을 다시 떠올렸다. “원래 공학도를 꿈꿨을 정도로 기계를 좋아했어요. ‘움직임’이란 과제가 저에게 조각에 기계를 활용하라는 힌트처럼 들렸죠.” 결국 이때부터 그는 기계와 미술의 요소가 결합된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그 후 최우람은 ‘기계생명체’라는 단어를 만들어내며 새로운 류의 작품을 만들기 시작했다.  “영화나 만화를 보면 기계들이 생명을 얻어 스스로 생각도 하고 인간의 친구가 되기도 하잖아요. 저도 그런 쪽에서 영감을 얻었어요. 그래서 생명을 얻은 기계들이 사실 우리주변에 살고 있다는 거죠. 이런 상상의 이야기를 보다 구체적으로 서술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이것은 어디에서 발견된 기계생명체로 어떤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물학적 리포트를 만드는 거에요.”

  그래서일까? 그의 작품에는 문학적 요소와 공학적 요소가 함축되어있다. 작품 설명은 생생하고 절절한 사연으로 마치 잘 쓰여진 새로운 SF소설같은 느낌이다. “작품 옆에 쓰여진 발견 스토리를 본 관객들이 ‘어! 이거 진짜 인가봐’라고 순간적으로 착각하는 찰나가 있어요. 잠깐 일지라도 기계가 생명을 갖고 주변에 있을 수 있다고 떠올리는 게 제 작품을 감상하는 포인트에요. 작품 속에서 어떤 의미를 찾는다거나 해석하기보다는 눈에 보이는 것 그 자체를 충분히 느끼면 될 것 같아요.”

  최우람의 작품에선 생명이 느껴진다. 단순히 그의 작품들이 곤충과 흡사한 모습을 띠고있기 때문만이 아니다. 날카로운 금속과 화려한 장식에도 불구하고 무언가 생생함이 보이고 있었다. 이는 그가 ‘자연’에서 작품에 대한 영감을 얻고 있기 때문이다. “공장 속의 커다란 기계와 곤충, 식물, 동물 같은 유기체들의 특징을 조합해요. 그러다보니 곤충모양의 생명체가 만들어졌어요.(웃음)”

  한 작품이 만들어지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보통 1년 6개월. 과정도 보통 회화와 조각 작품과는 다르다. 작품 주제가 정해지면 이에 걸맞는 스토리를 짜낸다. 아이디어가 구상된 뒤 자세한 스케치 작업을 하고 컴퓨터를 이용한 정확한 설계가 이뤄진다. 움직임을 시뮬레이션하는 과정도 이 지점이다. 도면으로 제작된 부품들을 직접 용접하고 조립하면 한 작품이 완성된다. “전자공학하시는 분과 함께 협업하고 있어요. 그분이 직접 작품을 위한 프로그램을 만들어 주시죠. 제 작품에는 ‘빛’이 가장 중요한 요소로 연출돼요. 빛은 살아있는 생명의 상징과도 같기 때문이죠.”

  연희동의 작업실을 마련한 것은 불과 3년 전. 지금은 4명의 직원과 5명의 보조 어시스턴트들이 그를 돕고 있다. 직원과 보조 어시스턴트는 대부분 중앙대 조소학과 동문으로 구성되어 있단다. “원래 지하 작업실에서 15년동안 있었어요. 그래서 문보다 큰 작품을 조립할 순 없었죠.(웃음) 일부분만 만들고 전시장에서 처음 테스트하는 경우도 있었죠. 이곳으로 옮겨오자마자 가장 큰 문과 높은 천장을 만들었죠.”

 

Ultima Mudfoxsms는 2002년 지하철 공사장에서 우연히 촬영된 이 후 많은 과학자들에 의해 연구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 그들이 어떻게 단단한 진흙 속을 자유로이 유영 할 수 있는지 조차 알려지지 않고 있다.

 

공학도를 꿈꾸던 소년은
찰흙을 만진 순간 예술인이 되었다

최우람의 부모는 모두 서양화를 전공했다. 그래서 그는 어려서부터 항상 미술과 함께했다. 하지만 고등학교 2학년 때까지도 그는 미술에 대한 뜻이 없었다고 한다. 무작정 ‘기계’가 너무나 좋았기 때문이다. “사실 그림에 대한 소질이 있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죠. 하지만 이공계열이 더 구미가 당겼어요. 그런데…. 사실 당시는 법학보다도 훨씬 인기가 좋았거든요. 높은 성적이 필요하더라구요.(웃음) 꼭 그 이유만이 전부는 아니에요! 계속 고민하던 차에 집에 놀러오신 아버지 친구분들이 제 작품을 보시더니 꼭 미술시키라고 추천해주셨죠. 모두 미대 교수님이셨거든요.” 그는 결국 그제서야 미술학원을 다니기 시작했다. 만드는 걸 좋아하다보니 조소과로 가닥을 잡았다. 모작을 위해 찰흙을 만지는 순간 그는 ‘이게 내가 가야할 길 이었다’고 깨우쳤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그렇게 그는 중앙대 조소과에 89학번으로 입학하게 되었다.

  안성에서 학교를 다녔던 대학시절은 그에게 가장 큰 추억이다. “뭐랄까 서울대나 홍대에 비해 훨씬 자유롭다는 느낌이었어요. 사실 대학도 매너리즘에 빠질수 있거든요. 그에 비해 중앙대는 교수님들도 뭐든지 도와주시려고 하고, 학교도 정말 넓었죠. 그리고 계속 서울에서 나고 자랐던 제가 처음으로 독립을 하게 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할 수 있었어요. 내리에서 자취하면서 술마시던 기억이 나네요.(웃음) 결국 대학원까지 다니게 되었죠. 떠올려보면 성적도 나쁘지 않았던것 같아요!”

  일본과 뉴욕에서 열린 몇차례의 개인전. 최우람의 예술은 이 각박한 삶 속에서 많은 대학생들에게도 귀감이 된다. 사실 그 역시 대학졸업 후 취업을 선택해야만 했던 때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 저도 돈을 벌어야 하다보니 안해본 일이 없어요. 방송세트도 만들고 인테리어 알바도 하고 그랬죠. 하지만 하고 싶은 일을 절대 손에서 놓지 않았어요. 운 좋게 회사 사장님이 절 작가로 인정해 주셔서 사무실 쪽방을 작업실로 만들어주셨죠. 일을 조금씩이더라도 지속하다 보니 조금씩 연륜도 생기고 현실적인 기회도 주어지더라구요. 물론 요즘 대학생들이 힘든 건 충분히 알고있지만 하고 싶었던 것을 잊지 말았으면 좋겠네요.”

  앞으로 그는 새로운 이야기를 준비하고 있다. 지금까지 생명체를 창조하던 것에서 확장해 신화를 창조하고 있단다. “지구 같은 행성이 어느 날 태양에서 멀어지게 되어 빙하기가 왔어요. 그래서 금속의 신, 나무의 신, 새의 신에게 너무 춥다며 기도하죠. 결국 새의 신이 날개가 돋힌 나무를 만들어주었고, 숲을 이뤄 그 날개짓으로 행성이 다시 태양계로 가까워집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이기심으로 태양에 지나치게 가까워진 행성은 불에 타버린답니다. 이를 모티브로 한 작품이 현재 국립현대미술관에 전시중이에요.” 신화창조라니! 그의 욕심은 앞으로도 끝이 없어 보인다. 이것이 바로 아티스트 최우람을 주목할 이유가 아닐까?

 

기계에 숨을 불어넣는 이가 바로 여기 있다. 공학도를 꿈꾸던 그는 기계를 다루는 예술인이 되었고, 뉴욕에서 개인전을 여는 아티스트로 성장했다. 중대신문은 키네틱 아트를 선보이고 있는 작가 최우람을 만났다. 그의 작업실에서 이뤄진 인터뷰는 그의 예술 혼을 엿보기에 충분했다.

 

최우람 1992 중앙대학교 조소과 졸업(B.F.A) 1999 중앙대학교 대학원 조소과 조소전공 졸업(M.F.A) 개인전 2010 ‘Kalpa’, 비트폼즈 갤러리, 뉴욕 2006 ‘New Active Sculpture', 비트폼 갤러리, 뉴욕  ‘도시에너지’, MAM프로젝트, 모리미술관, 동경 2002 ‘Ultima Mudfox', 두아트갤러리, 서울 1998 ‘문명∈숙주’, 갤러리보다, 서울 수상 및 레드전시 경력 2009 두산 갤러리 뉴욕 레지던시 프로그램 2009 ‘김세중 조각상’, 청년조각 부문, 김세중 기념 사업회 2006 ‘오늘의 젊은 미술가 상’, 순수 미술 부문, 문화관광부 /  ‘제 1회 포스코 스틸 아트 어워드’대상, 포스코 청암제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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