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여학생회의 필요성에 대한 사회적 시각은 딱 두 가지로 나뉜다: ‘나중’과 ‘이미’.

  이는 대한민국 역사 속에서 배제되었거나 소외된 여성의 경험을 드러내고, 이들의 입장에서 독자적 조직을 구성하고자 할 때마다 반대 논리로 작동해 왔다.

  전자는 주로 식민주의나 제국주의의 대항 담론으로 민족주의가 등장할 때이거나 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 투쟁에 몰두할 때이며, 후자는 여성이 남성과 동등한 사회적 지위를 성취했다고 믿는, 혹은 ‘남성이 여성에게 오히려 억압받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인 요즘이다.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집단 속에서 늘 개인은 남성이었고 조직의 일원도 남성이었으며, 리더도 남성-인간으로만 표상되어 왔다. 남성으로 정의된 열사나 전사가 있고, 이를 존재화하는 비가시적인 그림자, 혹은 지지자, 보조적 존재로서의 여성이 있었다.

  이러한 표상체계에 인간-노동자-활동가-여성은 부재했다. 대신 여성은 조직의 주부가 되거나, 운동가의 아내나 형수노릇을 수행해야 했으며, 남성 집단 간의 관계를 매개하는 존재이거나 심지어 성적 희롱과 폭력의 대상이었다. 이에 저항하며 성평등 문화를 주창하거나 여성폭력에 문제제기하던 여성들이 들어야 했던 논리는 단 한 가지, ‘나중에’였다.

  그러한 배경 속에서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 여성들은 그들만의 독자 조직 구성을 추진하게 된다. 외부에서 여성에 대한 폭력과 관계된 단체들이 만들어지는 사이 학내에서는 총여학생회 운동으로 전개되어 나갔다. 이때 수많은 ‘여자들’은 동료 남성들에게 ‘조직의 배신자’라는 맹렬한 비난을 들었지만 오늘날 수많은 여대생들이 공기처럼 자연스럽게 느끼는 학내 분위기는 다 그들의 열정과 희생 덕분이다.

  그런데 여성들이 역사의 장에서 주체로 막 등장하려는 바로 그 시기에 총여학생회 ‘폐지론’이 등장한 것은 무슨 아이러니라 말인가? 사소한 통계적 상승(그나마 부분적)을 빌미로 성평등이 ‘이미’ 달성된 것이라는 환상을 유포하는 자의 욕망은 선배 남성들의 해결되지 않은 불안과 우울의 세대간 전이인가? 이에 적극 동조하는 여학생들의 논리는 안락한 전업주부의 이미지에 기대어 남성을 평생 착취하고 살아가고픈 욕망의 우회적 표현인가? 순종적 아내나 애인, 혹은 섹시한 성적 대상이라는 이분화는 남성들이 만든 논리구조였고 여성들은 여전히 이에 자유롭지 못하다.

  우리의 처지는 언제나 ‘나중’과 ‘이미’ 사이에 있으며, 이것이 보다 활기차고 보다 진보적이며, 보다 독립적인 총여학생회의 출범이 절실한 이유다. ‘이름없는 존재’로 살아가거나 ‘이름있는 남자’에 기생하거나라는 이분법적 구도를 깨는 여성 주체의 재구성을 진심으로 고대해 본다.

 

이나영 성평등상담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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