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코 미술관, 역사속의 천재 시인을 마주하다

  대학로에 위치한 아르코 미술관에선 이번주 수요일까지 역사 속 천재시인 이상을 만날 수 있다. 우연히 접한 흥미로운 전시를 놓치기 싫어 서둘러 남자친구의 손을 이끌었다. 과제가 많다던 그는 무료 전시와 이상이라는 말에 군말 없이 나섰다.

  전시회는 이상이 활동했던 1930년대의 시대 상황과 이상의 개인적 역사에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 그의 문학작품이 수록된 신문기사, 친구들의 편지, 그의 미술 작품들이 한데 어울러져 작가 한 사람의 개인적인 역사를 넘어 시대의 문화사를 보는 듯 했다. 또한 시대를 초월한 간결함과 초현실성이 돋보이는 그의 문장에서 상실의 시대를 살아가는 지식인의 고뇌가 엿보였다. 우리는 정적이 흐르는 묘한 전시장의 분위기에 취해 한동안 말도 잊은 채 각자의 감상에 빠져들었다.

  빡빡한 일상생활에서는 잠깐의 전시회 감상만으로도 감성이 충전되는 듯하다. 곧 돌아오는 과제와 시험기간은 아마도 모두의 마음을 더욱 바쁘게 할 것이다. 그러나 적어도 그와 나는 조금 풍성한 감성과 가벼운 발걸음으로 도서관을 향하지 않을까.

 

 창경궁, 도심 속 고궁에서 역사를 느끼다

  적절히 먹구름이 가득한 하늘. 시험 기간 전 마지막으로 데이트를 간다. 옆에서 여자친구가 오늘 같은 날 바람 쐬기 좋은 곳이 있다며 151 버스에 오른다. 그렇게 도착한 곳은 창경궁. 그리고 나에게 가이드를 해달라고 한다. 내가 역사를 좋아하는 것을 아는 여자 친구의 배려였다. 나도 가끔 들리는 고궁이라 왠지 모르게 반갑다.

  창경궁을 들어가자마자 눈 앞에 보이는 명정전. 명정전 앞 임금이 다니는 길 어도와 품계석에 대해 설명해주자 흥미롭게 듣는 여자친구. 왠지 모르게 뿌듯하다. 명정전을 거쳐 양화당 쪽을 향했다. 그녀는 양화당 옆 화강암을 보며 또다시 호기심을 갖는다. 이미 대부분의 정보를 알고 있는 나와 달리 건물 하나하나, 돌 하나하나에 호기심을 가지는 여자친구. 처음엔 물어보는 것마다 답해주기 귀찮았지만, 하나 둘 내가 아는 걸 답해가다보니 기분도 좋아진다.

  이렇게 양화당을 거쳐 창경궁의 끝자락에 있는 온실을 향한다. 한국의 전통양식의 궁궐 속 서양식 온실이다. 동서양의 조화가 느껴진다. 나와 그녀는 온실을 보고 나와 춘당지 앞에서 잠깐의 휴식을 취한다. 춘당지 주변은 이미 단풍이 물들고 있다.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원앙을 바라보며 도시 속 시끄러움을 잠깐 잊는다.
   
 

 전쟁기념관, 가을속에서 전쟁의 슬픔을 떠올리다

  더없이 맑은 어느 가을 날. 날씨와 반비례하게 울적한 기분이 드는 건 왜일까. 우울한 나를 위해 바람을 쐬러가자던 이 남자. 데려간 곳은 다름 아닌 전쟁기념관! 세시간이나 되는 공강시간에 기분전환도 하고 지식도 쌓고 일석이조라나? 불평스런 마음도 잠시, 전쟁기념관에 들어서자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전경이 마음을 상쾌하게 해줬다.

  가볍게 호수와 각종 비행기 전시 등을 보고 전시관 입장을 했다. 입구부터 빼곡히 박힌 선국열사들과 파병군의 이름은 한순간 엄숙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1층 로비에는 천안함 사건 진상조사에 대한 자료가 전시돼 많은 이들의 주목을 끌고 있었다. 조금은 묵직한 마음으로 전쟁역사관과 한국전쟁관에 전시된 각종 유물들, 자료들을 살폈다. 고대의 돌도끼, 청동검부터 시작해 거북선, 한국전쟁에 사용된 대포모형까지. 새삼스레 우리는 여전한 휴전국임을 자각하며 발걸음을 옮겼다.

  나오는 길목엔 해병대 특별 사진전이 열리고 있었다. 호기심 반, 신기함 반으로 바라보는 나와는 달리 군입대를 앞둔 남자친구의 얼굴엔 시름이 역력했다. 그러나 다시 밖으로 나와 시원한 바람 속에서 멋진 비행기 모형을 구경하니 군입대를 앞둔 그의 시름도, 일상에 지친 나의 태만함도 점차 희미해져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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