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인 왕이었던 찰스4세는 영어는 장사하기에 좋고, 불어는 연애하기에 좋
으며, 스페인어는 신을 경배하기에 좋은 언어라고 말했다. 요즘 우리나라 사
람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면 뭐라고 했을까. 아마 욕하기에 좋은 언어라고
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특히 최근에 사회가 어지러워서 그러는지 허물
없는 사람들끼리 대화하는 것을 듣고 있으면 욕인지 대화인지를 모를 정도로
한마디 건너 욕이 나온다. 버스나 전철을 타 보면 중학생, 고등학생, 남학생
, 여학생을 가릴 것 없이 말 반, 욕 반인 듯 싶다.조사에서 보면 욕의 종류
에서도 우리나라가 압도적으로 많다. 조사된 총수만 해도 무려 1천7백여가지
나 되니, 이쯤 되면 특별히 욕이 있는 것이 아니라 아무 말이나 욕을 만들
수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선시대 판소리계 소설이나 민요, 사설시조
등을 봐도 걸죽한 육담(욕)들이 거침없이 나오고 있다. 한국인의 민족성을
욕과 연관지어 설명하려는 사람도 있다. 역사적으로 볼 때, 우리말에 욕이
많아진 것은 엄격한 신분 계급이 한 원인이 되기도 하였지만 귀한 것일수록
함부로 대해야 오래 간다는 속신도 크게 작용했을 것이다. 또 정을 강조하다
보니 점잖고 격식을 차린 대화보다는 이런 것을 파괴한 대화가 더 친근감을
준다는 언어관도 한 몫 했으리라고 본다. 하여튼 우리 민족이 욕에 관대한
것만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그래서 욕이 무조건 나쁘다고 하는 것은 우리의
전통적인 욕설관(辱說觀)과는 차이가 있다.

욕을 사용 목적에 따라 나누어 보면 크게 세가지로 구분된다. 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욕, 카타르시스를 목적으로 하는 욕,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한 욕이 있다.
친근감을 표현하기 위한 욕이야 사실 엄격하게 말하면 욕이라고는 할 수 없다.
그저 욕의 형식을 빌리고 있다고 봐야 할 것이다. 막역한 사이라는 말 자체가
거칠 것이 없다는 뜻이므로 욕지거리가 결속을 강화시키는 촉매제 역할을 한
다고 할 수 있다.

공격을 목적으로 하는 욕은 대개가 폭력으로 번진다는 입장에서 그 자체가 준
폭력인데, 이런 공격성 욕은 어떤 경우에는 폭력보다 더 심한 상처를 주기도
한다. 카타르시스를 위한 욕은 대개가 제삼자나 상대방이 들을 수 없는 경우
에 하는 욕이다. 모든 차가 순서를 기다리고 있는데 갑자기 어떤 차가 앞으
로 가서 끼어들 때, 모든 사람을 대표해서 중책을 맡은 사람이 그저 돌아가
는 일이나 하면서 사리사욕만을 챙길 때, 그들을 향해 욕을 퍼부음으로써 간
접적으로 공격성을 해소하는 것이다. 물론 이러한 행위는 자신을 위한 카타
르시스는 될 지 언정 모두를 위한 진보는 되지 못한다. 그저 울분을 달래기
위한 최소한의 항변이라고나 할까. 더 나쁜 경우는, 앞에서는 달콤한 말만
하면서 뒤에서는 온갖 욕을 하고 다니는 사람들에서 나타난다. 이러한 유형
의 욕은 본인들에게는 스트레스 해소일지 모르지만 조직에 있어서는 치명적
인 비능률을 조장한다.

욕을 생각할 때, 한가지 걱정되는 것은 최근에 이것을 카타르시스나 스트레스
해소 쯤으로 규정하여 긍정적인 측면을 강조하는 주장들이 있는데, 사회가 전
반적으로 욕을 통해서 모든 것을 해소해 버리는 경향을 흐른다면 그 욕은 우리
의 미래를 썩게 만드는 보이지 않는 병균이 될 수도 있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욕 자체가 문제라기 보다는 사용자가 문제인 것이다.

지금 내가 누군가를 향해 하려는 욕이 무엇을 위한 것인지 한 번만 생각해 보
아도 남에게 욕먹을 짓을 한가지는 줄일 수 있다.

이 찬 규<문과대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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