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는 어렵다? 쉽다? 언어영역 문제지 외에 시를 접해본 적이 있는가. 중대신문은 84년 등단이후 27년 동안 시인으로 살아가고 있는 이승하 교수를 만났다.
이승하 교수는 시에 대한 세계관을 털어놓았다.

이승하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 및 동 대학원 졸업(문학 박사)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 시 당선 1989년 <경향신문> 신춘문예 소설 당선 시집 『사랑의 탐구』, 『폭력과 광기의 나날』, 『취하면 다 광대가 되는 법이지』등 소설집 『길 위에서의 죽음』 시론집 『한국의 현대시와 풍자의 미학』, 『세계를 매혹시킨 불멸의 시인들』 산문집 『헌 책방에 얽힌 추억』, 『빠져들다』

두 가지 색깔이 보인다.
시인 이승하

- 1984년 <중앙일보> 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했다 
  내 등단작인 ‘화가 뭉크와 함께’는 말더듬이의 화법을 사용했던 시다. 나는 시를 쓰기로 결심했을 때 이미 서정 시인이 되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했다. 서정시는 이 세상의 아름다움을 노래한다. 아름다운 세상을 전제로 현실 긍정의 차원에서 지어진다. 하지만 내가 학교를 다니던 80년대, 5공화국 시절에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그렇기에 형식 파괴, 비판, 대결을 꿈꾸는 실험시를 썼다. 실험시를 통해 시 안에 역사의식과 사회비판의식을 담아냈다.

- 하지만 최근에는 서정시집도 출간했다
  아무래도 실험시만으론 만족을 못하겠더라.(웃음) 지금도 사진을 응용하거나 낯설음 효과를 사용하는 실험시를 짓고 있지만 서정시 역시 병행하고 있다. 사실 실험시는 시대 상황을 담아내기 때문에 당대의 모습만 담아낸다. 하지만 시간을 초월하는 영원성을 갖기 위해서는 서정시를 써야 한다. 100년 뒤에도 시가 읽히기 위해서는 보편타당한 의식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그래서 현재 서정시와 실험시, 두 가지 작업을 모두 하고 있는 상황이다.

- 시집뿐만 아니라 시선집, 시 비평서 출간도 잦았는데
  84년에는 시로 등단했고, 89년에는 소설로 등단했다. 그래서 97년엔 소설집도 냈었다. 대학에서 두 장르 모두 공부하다 보니 양쪽 다 흥미를 느꼈다. 그런데 소설은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형식이고 시는 좁혀가는 장르다. 시에는 응축미와 절제미가 넘쳐흐른다. 내 성격상 시가 맞는 것 같더라.
또 대학교수로 있다보니 접하는 작품이 많다. 학생들에게 설명하기 위해선 당장 내가 많이 읽어야 하지 않은가. 그러다 보니 비평작업도 겸하게 되더라.

- 시가 일반학생들에겐 어려운 장르라는 선입견이 많은데 
  사실 시는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당신’ 이다. 문예창작학과 학생들조차도 시를 ‘어렵다, 재미없다’고 말한다. 시 등단을 준비하는 학생도 해마다 줄고 있다. 하지만 읽고 습작하다 보면 시의 재미를 알게 된다. 시는 몇 마디 말로 많은 의미를 담을 수 있다. 한 두 페이지 안에 삶의 철학과 인생의 지혜가 담기고 때로는 우주와 역사를 그려낸다. 무궁무진한 세상이 담길 수 있다. 고등학교 때까지 시를 암기하거나 의미를 풀이하는 형식으로 접하다 보니 다들 시를 어렵게 생각한다.

- 그렇다면 이런 문제점을 극복하기 위해선 어떻게 해야하나
  시 교육도 문제지만 최근 현대시의 경향도 문제가 있다. 음악성을 잃고 산문화 되고 있기 때문이다. 시가 점점 소설을 잘라놓은 것처럼 변하고 있다. 시가 점점 길어지고 난해해지면서 작가와 독자의 소통이 불가능해졌다. 시가 다시 사랑받기 위해서는 음악성을 회복하고 쉬워져야 한다. 사실 쉬운 시가 쓰기 어렵지 어려운 시는 쓰기 쉽다. 현대시는 작가 자신만 작품을 이해하고 있다. 현대시의 속성이 애매성에 있다곤 하지만 자기 안에 갇혀버려선 곤란하다. 시의 정신을 회복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한다.

- 시인으로서 목표가 있다면
  아버지가 굉장히 엄격하셨다. 고등학교에 입학한지 두 달만에 유서를 써놓고 가출했다. 아버지의 매질을 피해 바깥으로 많이 떠돌았다. 그러다 보니 오히려 사랑, 우정, 화해, 용서를 갈망하게 되었다. 내 첫 시집의 이름도 『사랑의 탐구』였다. 내 시가 삭막하고 개인화된 인간관계에 징검다리 역할을 할 수 있다면 좋겠다. 초기엔 내 시도 난폭하고 거칠었다. 하지만 아버지의 노쇠하신 모습을 접하며 시도 따라서 많이 중화되었다. 아버지와의 화해가 내겐 세상과의 화해였기 때문이다. 내 시가 세상의  빛과 희망이 되면 좋겠다.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 혜초의 길을 따라….

- 지난 6월 서정시집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이 발간되었다. 소개해 달라
  『천상의 바람, 지상의 길』은 신라시대 스님 혜초가 인도전역과 중앙아시아를 여행한 후 남긴 『왕오천축국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해 펴낸 시집이다. 10년 전 중국 실크로드의 입구인 둔황으로 여행을 갔었다. 그곳이 바로 『왕오천축국전』이 발견된 곳이었고 이를 계기로 이 책에 흥미가 생겨 자료를 찾아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번에 61편의 시를 묶어 출간하게 되었다.


- 시집의 부제가 ‘혜초의 길’ 인데, 특별한 이유가 있나
  혜초가 걸었던 그 길을 함께하고 싶었다. 혜초는 열일곱의 나이에 5만 리의 길을 걸어 인도와 중앙아시아 일대를 여행했다. 『왕오천축국전』에는 여행했던 지역의 풍속과 풍물 등 자세한 이야기가 모두 담겨있다. 8세기 경 신라 스님이 어떻게 저 많은 지역을 살펴보며 여행기를 썼을까 생각해보니 정말 가슴이 벅차오르더라. 말도 안통하고, 한자가 통하는 곳이 아니므로 필담도 불가능 했을텐데…. 식생활, 법 제도까지 파악한 것을 보니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다.

  또한 혜초는 불도를 닦는 스님이면서 시인이었다.『왕오천축국전』에 5편의 시가 실려있기 때문이다. 당시 신라에는 당나라의 시가 전해지지 않았는데, 혜초는 당나라에서 두보 시를 공부했다고 한다. 『왕오천축국전』을 읽으며 혜초의 시에서 많은 자극을 받았다.

- 이 시집을 통해 하고 싶었던 말이 있다면
  인생은 하나의 길을 걷는 것과 같지 않을까? 난 시집을 통해 길 찾기의 의미를 찾고 싶었다. 사실 난 지독하게 길눈이 어둡다. 그런데 혜초는 8세기 때 산맥을 넘고 사막을 건너 인도와 중앙아시아를 유랑했다. 그러나 그는 결국 끝내 신라 땅 을 밟지 못한 채 죽었다. 우리의 생(生)도 이런 것이 아닐까. 가보고 싶어도 끝끝내 가보지 못하는 곳이 있고, 길이 좀 보인다 싶으면 죽음이 목전에 와 있다. 이 책이 ‘길의 의미’, ‘인생의 의미’를 찾는데 길잡이 역할을 한다면 좋겠다.

 

반갑습니다 선배님! 교수님!

- 문예창작학과 79학번이다. 당시 어떻게 문예창작학과에 진학하게 되었나
  고등학교를 검정고시로 마치고 대학입시를 준비했다. 그때까지 막연히 사범대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어머니가 문예창작학과를 추천해 주었다. 서울로 가출할 때 남겨두었던 유서를 눈여겨 보신 것이다. 어머니께서 글 재주가 있으니 중앙대 문예창작학과에서 글을 써보라 권유했다. 어머니가 이끌어 주셨기에 문창과에 진학할 수 있었다.

- 당시 어떤 학생이었나
  문창과에 입학했더니 정말 너무 재밌었다. 지구상에 없던 인물과 사건을 만들어내면서 마치 내가 창조주가 되는 기분이었다. 그러다 보니 집과 강의실, 도서관만 오갔다. 사실 주위 친구들은 대부분 운동권이었다. 5공 정권시절이다 보니 노조결성을 돕기위해 공장에 위장 취업하는 친구도 있었다. 당시 운동에 참여하지 못한 게 마음의 부채로 남아있다. 올해 초에 『현대문학의 역사의식』를 발간했는데, 이 책을 통해서 그나마 역사의 짐을 덜고자 애쓰고 있다.

- 30년이 넘는 기간동안 중앙대에 있었다. 최근 가장 달라진 점이 있다면
  요즘은 대중매체를 통해 정보를 쉽게 접하다 보니 학생들의 사고능력이 너무 부족하다. 당연히 작품도 가벼워 진다. 재기발랄하지만 진지하고 사색하는 고뇌의 모습이 안 보인다. 인스턴트식품을 즐겨먹듯이 글과 문학도 일회용으로 변하고 있다. 심금을 울리는 감동을 주는 코끝 찡해지는 작품을 만나기 어렵다.

- 순수문학을 공부하는 학생이 점점 줄어드는 추세인데
  시대의 대세인 것 같다. 문창과 학생들 대부분이 영화 시나리오 작가나 방송 작가를 꿈꾸고 있다. 물론 방송작가가 화려해 보이고 금전적으로도 풍족하겠지만, 그럴수록 기본기에 충실해야 한다. 많은 작품을 읽고 습작하는 것이 중요하다. 시나리오 작법에 대한 책만 읽어서는 좋은 글을 쓸 수 없다. 튼튼한 집을 짓기 위해선 큰 기둥이 필요하듯이 말이다. 학생들이 이를 모르는 것 같아 아쉽다.

- 그래도 중앙대 문예창작학과는 유명한 작가를 많이 배출했다
  사실 안성으로 내려가게 되면서 많이 힘들었다. 하지만 선배들의 위상이 후배들에게 영향을 주는 것 같다. 이래서 저력이 무섭다고 하는 것인가 싶을 정도로 말이다.(웃음) 하지만 역시 지역의 한계에서 벗어나기 힘들다. 안성에 문학계열이 없다보니 다양한 문학을 접해야할 학생들이 우물 안 개구리가 될까 걱정이다.

-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학생들이 세계를 보는 좀 더 큰 시각을 갖춘다면 좋겠다. 방학 때 세계 여행도 가고 많이 보고 많이 느끼면 좋겠다.

저작권자 © 중대신문사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