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그것도 이른 아침에 들판에 나가면 어김없이 돋아나는 풀이 있다. 잿빛의 논바닥에 가장 먼저 촘촘히 초록을 수를 놓아 봄을 알리는 이것은 촉새풀이다. 가늘고 파란 잎에 이슬을 머금은 그 모습은 고향을 향한 나의 향수이기도 하다.

  지방자치를 풀뿌리 민주주의(grassroots democracy)라고 한다. 가장 낮은 곳에서 주민생활의 가장 내밀한 부분과 연결되어 있는 끈이 지방자치이기 때문이다. 고향의 촉새풀처럼 민주주의를 떠올리면 가장 먼저 다가오는 단어가 지방자치이다. 지방자치는 민주주의의 체험의 장이고, 민주주의를 향한 향수가 지방자치에 녹아있기 때문이다.

  선거일이 다음 주이다. 이번에는 교육감을 비롯한 교육위원 선거도 한꺼번에 한다. 거리를 나서면 열기가 뜨겁다. 마이크를 잡고 표를 부탁하는 출마자들, 출퇴근 시간에 맞추어 길목을 지키며 90도로 허리를 꺾어 인사하는 사람들, 출마자의 이름을 어깨띠로 만들어 두르고 다니는 사람들, 온통 선거판이다. 거리의 선거홍보 현수막도 현란하다. 현수막만 보면 모두 잘난 사람들이고, 대표 공약만 보면 우리의 지방이 금방 세계의 반열에 올라설 것 같은 착각에 빠진다.

  그런데 선거 열기가 뜨거워질수록 유권자로서 마음은 더욱 허탈하다. ‘그들’만의 선거일뿐이지 ‘우리들’의 선거라는 느낌도 없다. 겉으론 차분하게 보이지만 속내를 보면 외면이다. 대부분이 그렇다. 도대체 왜? 그들의 인물이 실망의 원인일 수도 있고, 그들의 능력에 대한 저평가가 원인일 수도 있다. 또한 지방선거임에도 불구하고 모든 제도는 국회가 만들고, 지방선거는 국회의 놀음에 재주를 부려야 하는 ‘곰’이라는 게 원인일 수도 있다.

  주변 사람들에게 물어보았다. 교육계 선출직을 포함하여 8명을 선출하는 선거에서 출마자들에 대해 어느 정도 아느냐고. 한결같이 서울시장 출마자 정도는 알고 나머지는 이름조차도 모른다는 대답이다. 더욱 놀라운 사실은 출마함 교육계 인사들에 대해서는 아예 관심도 없다는 대답이 대부분이다.
투표가 끝나면 당선자가 나온다. 싫어도 그 사람이 주민을 대신하여 지역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는 역할을 하며 크고 작은 정책을 결정한다. 사심이 없고 유능한 사람이 당선되면 다행이겠지만 선거를 출세의 발판으로만 생각하는 사람이 당선되면 지역주민은 그 사람의 볼모일 뿐이다. 선거일은 다가오는데, ‘그들’만의 축제는 열기를 더해 가는데, 우리는 여전히 ‘그들’을 모른다.

  선거가 이래서는 안된다. 풀뿌리 민주주의의 최고의 미덕은 참여이다. 참여는 표를 던지는 행위만은 아니다. 알고 표를 던져야 진정한 의미의 참여이다. 볼모가 아닌 주인이 되기 위해 ‘그들’을 알기 위해 노력하는 시간을 갖도록 하자. 봄을 알리는 촉새풀처럼 지방선거가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수준을 알리는 척도가 되도록 해보면 어떨까? 지방선거가 촉새풀의 군락지로 자라는 거름이 되면 고향에 대한 향수도 더욱 짙어질 것 같다.

 

허만형 공공인재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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