펜을 들기가 힘들다. 그럴 수가 없다. 지난 4월 30일 오후 3시, 본관 앞에서는 부당 징계와 손해배상청구에 대항하는 기자회견이 있었다. 징계위 소집 대상 학생들과 뜻을 함께한 학생들은 삭발식과 퍼포먼스를 했다. 잘린 머리카락이 학우들의 어깨 위로 떨어졌다. 눈물이 핑 돌았다. 그들만의 일로만 치부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돌이켜보면, 내가 처음 겪었던 학교로부터의 외압은 내가 속한 <중앙문화>에 대한 탄압에서 기인한다.
2008년 2학기부터 <중앙문화>의 논조에 대한 학교의 정치적 압박이 있었다. 그리고 작년 <녹지>와의 통폐합 논란과 <중앙문화> 58호 강제수거를 거쳐 결국 지금의 예산 전액 삭감사태에 이르렀다. “발행인은 총장인데 논조가 학내 비판적”인 게 문제가 된 탓에 지지자들의 모금을 받아 책을 준비했다. 그마저도 발간이 순탄치 않았다. <중앙문화>가 학생단체인 탓에 총장의 승인을 받아야 한다는 교칙이 그 근거였다.

  그리고 교칙 위배 시 “징계에 처할 수 있다”는 학교의 엄포가 내려졌다.

  모든 구조조정 과정에서 학생 자치권은 철저히 묵살됐다. 학생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수단-커뮤니티, 게시물, 집회, 학내 언론-은 모두 통제되었다. 그리고 그 통제를 벗어나면 본보기로 징계라는 벌이 내려진다.

  모금으로 발행된 교지는 왜 제호를 달고 나올 수 없었을까. 그들은 하필 위험한 타워 크레인과 한강대교에 올라갈 수밖에 없었을까. 9명의 학우들은 무슨 생각으로 삭발을 결의했을까. 우리가 줄 수 있는 건 머리카락 밖에 없다는 절규. 정말 이것은 ‘나’의 일이 아니라 ‘그들’만의 문제인가. 살아남은 ‘우리’학과의 일은 아니고 ‘통폐합대상’ 학과만의 문제인가.

  대학이란 곳의 본 모습은 어떠했는가. 2008년에 입학했던 나는 학생자치 탄압이 없는 대학의 모습을 상상하지 못한다. 민주적 절차에 따라 학생이 당당히 의사를 개진할 수 있는 대학을 알지 못한다. 경험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하물며, 앞으로 들어올 새내기들은 어떠할까.

  지금의 농성은 전해져오는 옛날이야기가 될지도 모른다. 학생 자치권은 당연히 누려야 할 권리가 아닌, 학교가 베풀어준 아량으로 인식될지도 모른다.

  그런데, 우리는 벌써 이런 현실에 익숙해져버린 것 같다. 학생의 권리를 요구하는 행동에 대해 지지와 연대의 메시지는커녕, ‘색깔론’을 입혀 그 진정성을 퇴색시키고 있지 않은가. 무엇이 폭력적이고 무모한가. 고공시위와 집회가 그러한가. 그렇다면, 학생을 위한 통로는 제공하지 않고, 법치를 내세우며 정치적 소수를 내치는 행태는 폭압적이지 않은가. “학교 망신시켰다”라는 말 이전에 생각해 보아야 할 물음들이다.

  본교의 모든 학생은 이미 감시와 계도의 객체로 전락했다. 이것은 ‘그들’과 ‘나’로 구분지을 수 없는 문제이다. ‘그들’의 삭발식을 보며 ‘나’의 가슴 한구석에 묵직한 죄책감이 남아 있는 이유이다.

 

중앙문화 구예훈 편집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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