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인데도 진눈깨비와 가랑비가 흩날리는 스산한 날씨입니다. 밴쿠버에서 쌓인 여독은 좀 푸셨는지요.  
제가 오늘 이사장님께 이렇게 공개편지를 띄우는 것은 이사장님 취임 이후 불어닥친 우리 대학의 변화가 잘못된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우려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은 ‘대학다운 대학’으로 성숙하지 못하고, “대학이 상상할 수 없는 대학”으로 변질되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높은 지성과 전문성을 겸비한 최고의 인재를 길러내는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도약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 기능인을 양성하는 취업학원으로 전락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걱정스럽습니다. “교수와 학생들로 이루어진 자유롭고 평등한 학문공동체”라는 대학의 이념이 기업과 시장의 논리에 무너지는 것은 아닌지 두렵습니다.   

  저는 이사장님이 지난 20개월간 각종 언론매체에 표명한 발언들을 보면서 깊은 비애와 절망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음을 솔직히 고백합니다. 이사장님은 “기업인들에게 ‘중앙대 애들 뽑아놓으니 숫자는 좀 알더라’ 이런 평가를 받는 게 내 목표다”라고 하시고는, ‘회계학’을 교양필수로 지정하여 모든 학생들이 수강하도록 했습니다. 또한 “심신의 교양을 쌓는 건 스스로 해야지 왜 대학에서 해주나”라고 하면서, “학생들이 사회에 나가 밥은 먹게 해줘야 한다”고 말씀하셨지요.

  요즘처럼 청년실업이 심각한 상황에서 이사장님의 말씀은 분명 일리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과연 중앙대가 추구해야할 ‘목표’인가요. 그 목표가 우리 학생들의 능력과 수준에 부합하는 것인가요. ‘밥벌이’를 위한 준비를 시키는 것이 명문대학이 지향해야 할 교육인가요. 저의 경험에 비추어 보면, 우리 학생들은 “숫자는 좀 아는” 중하위 기능인이 아니라, 학자, 예술가, 정치인, 언론인, 법조인 등 우리 사회를 이끌어갈 지도자로 성장할 충분한 잠재력을 지닌 인재들입니다.

  저는 또한 이사장님의 기업식 대학경영이 대학의 가치와 본질을 근본적으로 부정하는 것이 아닌지 의구심을 갖고 있습니다. 대학의 생명은 자유와 자율과 자치입니다. 신재단 출범 이후 학문의 자유는 위축되고, 학과의 자율은 제한되며, 학생의 자치는 위협당하고 있습니다.  언제부턴가 캠퍼스엔 과거 권위주의 시대의 분위기마저 감돌고 있습니다. 그 속에서 대학의 3대 주체인 교수, 학생, 직원은 단순한 관리의 대상으로 전락하고 있습니다.

  대학의 기업화가 심각한 수준에 이른 미국대학의 경우에도 재단이 대학의 운영에 직접 개입하여 일방적으로 지배하는 경우는 없습니다. 주지하다시피 “지원은 하되 지배하지 않는다”는 것이 미국 사립대학 재단의 기본적인 경영철학입니다. 이에 비추어 보면 이사장님의 대학 경영방식은 분명 품격있는 대학재단의 금도를 넘어선 것입니다.

  저는 우리 대학이 변화해야한다는 이사장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합니다. 신재단의 출범 이후 대학에 긍정적인 변화가 나타나고 있다는 것도 인정합니다. 그러나 최고의 학문기관인 대학이 기업의 하부기관처럼 변해가는 것은 심각한 문제입니다. 기업의 행정적 효율성을 수용하되, ‘자유와 진리’를 추구하는 대학의 정신을 보존하는 공존의 모델을 창출함으로써 우리 대학이 명실상부한 세계적인 명문대학으로 비상하게 되기를 기원합니다.
2010년 3월 5일 김누리 드림


김누리 문과대 독어독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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