흑인 여성작가로서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한 작가 수잔 로리 팍스의 희곡 『빌어먹을 A(Fucking A)』의 여주인공 ‘흑인’ 헤스터는 가난하고 비천한 직업을 가진데다가 강간까지 당하는 등 억압을 받는 인물로, 글을 읽거나 쓸 줄 모르기 때문에 돈을 지불하고 필기사를 통해야지만 감옥에 있는 아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다. 이러한 헤스터의 모습은 페미니스트이자 탈식민주의 비평가인 스피박의 논의에 의하면 계급적·인종적·문화적·성적 주변부이자 서구 지식인의 담론에 의해 ‘대변’되는 존재인 ‘서발턴(Subaltern)’이다.


  헤스터는 ‘말할 수 없는’ 서발턴이기에 자신에게 영향을 끼치는 지배 권력과 대화할 수 없으며 고통조차 호소할 수 없어 극 중 ‘폭력’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하게 된다. 피식민지인이 식민지인에게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은 파농에 따르면 폭력 외엔 없기 때문이다. 이 극은 피식민인이자 서발턴인 헤스터의 저항이 ‘신체’에 가해지는 폭력을 통해 일어남을 보여주며, 이를 위해 수시로 피와 고깃덩어리가 된 육체의 이미지가 등장한다. 이는 폭력으로써 밖에 저항할 수 없는 냉혹한 디스토피아 사회를 표현함과 동시에 헤스터 무리들이 저항할 수 있는 공간으로서의 ‘신체’를 부각시킨다. 엘리자베스 그로츠의 말처럼 신체는 단순히 권력의 지배가 작동하면서 소모되어 버리는 수동적인 대상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서발턴 헤스터는 약에 취한 채 끌려온 시장부인의 아기를 낙태시키고 사냥꾼에게 쫓기는 자신의 탈옥수 아들을 직접 죽임으로써 ‘신체’를 저항과 전복의 장소로 만든다. 죽음, 자살로 훼손된 신체는 그것 자체로 강력한 저항이자 거부의 의사표시로 일종의 언어가 된다. 이처럼 이 희곡은 폭력과 죽음이라는 방식으로 ‘신체를 통한 말하기’라는 서발턴의 저항을 보여주고 있으며, 따라서 외면상으로는 비극적인 면모를 띄고 있지만 강렬한 전복가능성의 희망을 예시한다고 할 수 있다.

한우리(영어영문학과 석사 3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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