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연(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동시대 예술 창작과 교육의 환경변화를 이야기 할 때 가장 중요하게 논의해야 할 사안이 있다면 예술의 장르, 생산양식, 종족성에 괄목할 정도로 통섭이 이루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예술의 통섭은 첫째, 근대 이후 오래 동안 분리되었던 예술장르들이 융합하여 새로운 혼종적인 양식을 생산하고 있다는 점, 글로벌 시대 서양과 동양, 중심과 주변, 주류와 비주류들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세계화’와 ‘지역화’가 융합하는 ‘클로컬한’(glocal)경향을 보인다는 점, 디지털 기술의 혁신으로 서로 다른 미적 감각들이 융합하고, 예술과 기술이 상호작용하는 새로운 개념의 창작물이 다원화되고 있다는 점을 특징으로 한다. 
  예술 장르 사이의 융합 현상은 19세기에 형성된 분과예술 간의 경계가 허물어지면서 각각의 영역이 다른 영역에 영향을 주고 결합되는 복합적 현상을 지시한다. 이는 순수예술 밖에 있는 저속한 것으로 간주되던 장르들이 순수예술 장르와 결합되는 현상이나 분리되어 있던 장르들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새로운 장르를 형성하는 현상을 포괄한다. 이와 같은 경향의 결과로 기존의 장르에 포함시키기 어려운 새로운 장르들이 새롭게 생겨났다. 예를 들어, 미술은 과거 미술관의 흰 벽을 배경으로 고정되어 있던 평면이거나 조각이었다면 현대의 퍼포먼스는 사진, 영상, 음악, 연극, 무용, 건축의 요소들을 미술에 결합시켜 관람객의 경험을 이끌어내는 환경을 구성한다. 음악의 퍼포먼스는 극적인 서사체계를 가지고, 현대 무용은 서양과 동양을 넘나드는 미디어아트를 퍼포먼스 안에 적극 도입하고, 문화 디자인은 공연 포스터를 제작하는 홍보의 수단이 아닌 공연 그 자체를 ‘디자인’하는 메타적인 의미를 확장한다. 
  예술의 융합 현상은 ‘하이브리드 예술’(hybrid arts), ‘트랜스 예술’(trans arts), '퓨전아트‘(fusion arts)라는 새로운 용어들을 탄생시켰는데,  기존의 예술 장르들 간의 벽이 허물어지면서 나타나는 댄스시어터, 음악극, 비주얼 퍼포먼스 등과, 예술과 예술 외적 요인이 결합되는 홀로그램 아트, 바이오 아트, 나노 아트, 사이보그 아트, 문화권, 국가들 사이의 토속적 양식들이 결합하는 월드뮤직, 멀티 에스닉 컬쳐 등 다양한 형태가 있다.
  장르의 융합 현상 못지않게 글로벌화로 인한 문화 예술의 국제적 이동 증가와 통합화 현상은 예술의 생존 방식에 큰 변화를 초래했으며 예술 시장의 구조, 감상자의 취향의 변화에까지 폭넓게 나타나고 있다. 예술의 창작과 유통은 이제 자국 내의 예술 장에서만 일어나는 것으로 보기 어렵다. 작가들의 활동에 대한 정보가 인터넷을 통해 실시간으로 해외에 알려지고 국가와 민족의 경계를 넘어서 전 세계를 고려한 예술의 창작과 유통이 증가하고 있다. 미적 감수성이 동일하지 않은 세계인들의 심미적 반응을 이끌어내는 것은 작가들에게는 한 층 부담스러운 목표이며, 비교적 문화적 자원이 풍부한 선진국들의 미적 취향이 글로벌화한 예술 시장에서 주도적 영향력을 갖고 있다.
  이와 같은 맥락에서 자국의 전통적인 취향이 스며든 예술이나 특수한 국지적 미적 감수성이 반영된 예술이 세계무대에서 문화적 다양성과 풍부함에 기여하는 작품으로 호평 받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교토대학의 세계적인 미디어아티스트인 나오코 토사(Naoko Tosa) 교수는 컴퓨터에 입력된 단어들을 선택하여 일본의 전통적인 시 형식이 ‘하이쿠’(Haiku)를 자동 생성하는 미디어아트를 창작했다. 2008년 한국예술종합학교 예술과 기술 국제 심포지엄(ISAT2008)에서 전통예술원의 원일 교수는 한국 전통예술의 가·무·악(歌舞惡)과 미국 스탠포드 대학의 '랩탑'(Laptop) 오케스트라와 실시간으로 연계하는 네트워크 퍼포먼스를 벌였다. ‘천지인’(天地人)이란 이름의 이 공연은 동양의 예술 원형과 서양의 기술 네트워크가 통섭하는 프로그램을 보여주었는데, 미국에서 랩탑 노트북에서 실시간으로 보내온 전자음이 한국의 전통음악과 접목하는 과정에서 예술과 기술, 동양미학과 전자적 감각 사이의 미학적 교류가 실험되었다. 
  예술의 통섭은 19세기 식의 완결된 1인 ‘마에스트로’를 생산하는 방식에서 예술을 창조하는 과정에 다양한 주체들이 결합하는 집합적 창작을 자연스럽게 했다. 이러한 융합적인 창작과정이 가능한 것은 디지털화가 가속되었기 때문이다. 디지털화(digitization)는 1980년대 작가들에게 개인용 컴퓨터가 접근 가능하게 되면서 컴퓨터의 발달과 함께 가속화 되었다. 컴퓨터가 예술에 도입된 것이 포스트모더니즘 이후의 현상이기 때문에 포스트모더니즘 시기에 담론화 되었던 ‘저자의 죽음’, ‘텍스트로서의 작품’, ‘독자의 권리’ 등에 대한 관념이 초기 디지털 문화의 형성에 큰 영향을 주었다.     예술에서의 디지털 혁명은 단순히 작업 과정의 단순화, 작업 결과의 대용량화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며 사고 체계의 변화 작품의 존재론의 변화를 이루었다. 디지털화는 과학 기술의 혁신이 예술의 창작과 감상의 맥락에 변화를 초래한 현상으로서 예술의 역사에서 중요한 전환점을 형성한다. 이 현상은 예술이 예술 외적인 영역과 무관하지 않음을 나타내 보여주는 것이며 과학기술과 예술의 상호 연관성에 대한 중요한 예가 된다. 디지털화는 또한 예술 장르들 사이의 통합(integration)을 활성화한다. 예술적 양식과 기술들은 디지털 기술로 인하여 통합이 수월한 방식으로 변환되며 새로운 합성적 표현 형식 안으로 묶이게 된다. 예술의 혼종화 현상은 디지털화의 영향으로 한층 다양해졌으며 온라인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예술 형식들이 기존의 예술의 특성들을 흡수, 변형하여 새롭게 등장하고 있다.   최근 예술은 서로 상반된 영역이라고 간주했던 과학이나 자연 테크놀로지와 새로운 융합과정을 경험하고 있다. 예술은 이 같은 융합 경향에서 핵심적인 축을 담당할 것으로 보인다. 공학과 과학계에서는 공학의 진보와 과학의 재현을 확인하기 위해 예술적 표현을 많이 활용하고 있다. 로봇 공학은 로봇의 기술적인 능력을 확장시키는 단계를 지나, 인간의 신체적, 정신적 감각과 닮아갈 수 있는 다양한 미적 실험들을 선보이고 있다. 이른바 발레를 추는 퍼포먼스 로봇, 웃고 우는 감정 로봇, 인간과 자연스럽게 소통하는 커뮤니케이션 로봇은 공학의 최고 단계의 기술을 실험하는 사례가 되고 있다. 과학에서는 인간의 눈으로는 확인할 수 없는 초미립자의 세계를 디자인으로 전환하는 ‘나노아트’, 인간의 생체를 예술의 재현으로 전환시키는 ‘배아 아트’(embryo art)가 과학에 미학을 접목시키는 사례들이다.
  최근 미디어아트와 디지털 예술계에서 시도하고 있는 인공생명 예술이나 초현실주의적 시네마(i-cinema)와 같은 실험들은 예술이 기술의 힘에 의해 새로운 표현의 힘을 가질 수 있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들이다. 그러나 이러한 실험들이 예술과 기술의 통섭이라는 시대적 흐름의 최전선에 있지만, 그것이 지금 우리에게 어떤 미적인 의미를 갖는가에 대한 성찰도 필요한 시점에 와있다. 왜냐하면 예술-기술의 최전선은 이제 생명과 윤리, 미학, 그리고 자본의 문제와 직결되기 때문이다. 최고급의 미디어아트를 제작하기 위해서는 많은 자본이 필요하지만, 그것이 우리사회에 주는 미적인 감동과 효과들은 극히 제한적이다. 생명공학을 소재로 하는 예술의 실천 역시 예술의 윤리와 생태계에 많은 지적 논쟁을 필요로 한다. 예술의 통섭교육은 분과위주의 교육체계의 벽에 막히고, 권위주의적인 정치논리에 휩쓸려 제대로 안착 조차되지 않고 있다. 예술 통섭은 기술적 진보를 최대한 활용하는 실험 이전에 기술 너머의 미학을, 미학 너머의 사회적 의미를 다시 사고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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