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남자의 사정

□포카치노
만난 지 3년이 넘은 여자친구. 미루고 미룬 데이트를 하기로 한 날이다. 트레이닝 복을 입고 나간 나와는 다르게 그녀는 옷차림에 신경을 쓴 듯하지만 별로 예뻐 보이진 않았다. 기다려서 2층에서 앉자는 그녀를 무시하고 1층에 자리를 잡았다. 레귤러 사이즈의 피자 한 판과 샐러드, 빵조각 몇 개가 2만원 선으로 조금 비쌌다. 이제는 밥을 먹고 싶다고 따져봤지만 그녀는 묵묵히 식사만 했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밥이 소화도 되기 전 그녀는 미술관을 가자고 했다. 미술관에 들어서니 무료로 오디오를 대여해주었다. 신기하게도 조각 앞에 설 때마다 이어폰에서 작가의 소개가 흘러나왔다. 조각에는 관심도 없었지만 이어폰에 흘러나오는 소개를 듣다보니 나도 모르게 집중해서 듣게 됐다. 나중에는 미술관이 작은 것이 아쉬웠다.

□HOBBY
 북카페라는 하비에 들어섰지만 책들이 구식이라 헌책방 같았다. 분위기가 어두워 다른 커플들이 꼭 붙어 이야기를 나누고 있어서 우리도 자연스레 꼭 붙어 앉았다. 그녀가 권태기에 들어선 우리 관계에 대한 애기를 꺼냈다. 많이 힘들었던 것 같다. 그녀에게 미안했다. 하비에서 매달 2번 있는 도자기 체험을 신청하여 그녀 몰래 이벤트를 마련해주고 싶어졌다. 다시 한번 그녀와 잘해보고 싶다. 

  그 여자의 사정

□포카치노
그와 오랜만에 하는 데이트인 만큼 새로 산 예쁜 옷을 입고 나갔다. 예쁘다고 말해줬으면 했는데 그는 무심하게 식당으로 들어간다. 음식 가격은 그럭저럭 괜찮았지만 맛이 별로다. 딱딱한 피자도우에 느끼한 샐러드. 맛있는 음식을 먹으며 즐겁게 얘기하고 싶었는데 속상하다.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예전에 벨기에 영사관으로 쓰이던 건물이라 고풍스러움이 물씬 느껴진다. 이런 건물에서 보는 미술 작품은 관람료가 비싸지 않을까 걱정했는데 오디오 대여부터 관람까지 무료라고 해서 놀랐다. 오디오를 들으며 흥미롭게 관람하는 그를 보니 잘 온 것 같다. 내부 구조가 예뻐서 같이 사진 찍자고 하고 싶었는데 왠지 싫다고 할 것 같아 그만 두었다.

□HOBBY
이 카페의 특별 메뉴, 차가운 물에서 13시간을 내린 ‘워터드립커피’는 와인향이 났다. 그래서인지 와인잔에 커피가 담겨 나왔다. 그에게 마셔 보라고 하자 한 모금 마시고는 너무 쓰다며 다시 돌려준다. 또 다시 돌아온 무뚝뚝한 반응에 실망하려는데 그가 설탕 시럽을 건네주며 쓴 거 싫어하지 않냐고 묻는다. 우리 사이에도 아직 회복의 가능성이 있는 걸까? 그에게 우리 관계에 대해 솔직하게 얘기해야겠다.
                                                   
● 코스 즐기기 ●
서울시립미술관 남서울분관: 사당역 6번 출구에서 나와 100m 정도 직진하면 된다. 우리은행 옆에 있다.
포카치노: 사당역 12번 출구에서 나오면 바로 볼 수 있다.
HOBBY: 사당역 4번 출구를 나와 상가를 지나면 상가의 끝 1층에 HOBBY가 있다. 찾기가 힘드므로 입간판을 주의해서 볼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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