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간 불편해 할 이야기를 좀 해야겠다. 우리 대학에는 사회교육처가 있다. 대학이 지닌 교육 역량을 가지고, 일반인들에게 교육 사업을 하고, 육아 교육이나 시민 교육 등을 통해 지역사회에 봉사를 하는 곳이다. 전체 수강생은 만여 명에 가깝고, 재정적인 면에서나 대학 홍보 효과 측면에서나 학교에 대한 기여는 무시할 수 없을 정도이다. 그런데도 사회교육처 직원들의 수는 적고 그나마 대부분이 비정규직원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열악한 교육 시설도 모자라 학내 구성원들의 사시(斜視)를 견뎌야 하는 아픔이 있다. 심지어 어떤 교수는 “우리 이제 부자 재단이 들어왔는데도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이런 프로그램을 학교에서 계속 해야 하나요?”라고 하고, 어떤 학생은 “우리 학교에는 중대생 아닌 중대생들이 많아요”라고 비아냥거리기도 한다.


  우리는 대학에서 약자를 배려하고 정당한 것을 주장하자고 가르치고, 배운다. 그리고 우리 구성원 누구나 자신들의 노력과 성과에 대하여 정당한 평가를 받고 싶어 목소리를 높인다. 그러나 세상의 평가가 상당 부분 자신과 타인 사이에서 이중적이라 그러려니 할 수도 있지만 미래를 위해 현실은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게 이 글의 취지다. 수강생들 중 대부분은 우리 학부생들이나 대학원생들보다 훨씬 더 짧게 학교를 다니지만 중앙대에 대한 열망과 자부심은 그들에 못지 않다. 나이 들어 뒤늦게 공부하면서도 학교에 적지 않은 기부금을 내는 분들도 많고, 굳이 밝히자면 수강생 중에는 전직 대학 총장님, 고위 공무원, 교수, 기업의 회장님들도 많다. 그럼에도 우리가 그들을 같은 중앙인으로 받아들이기가 힘들다면, 적어도 주인 의식이 더 강하다고 주장하는 우리가 최선을 다해 고객으로 모시기라도 해야 하지 않을까.


  또 한 가지, 최근 큰 규모의 대학들은 ‘국제화 경쟁’에 많은 비용을 지불하고 있다. 메이저 대학이 되기 위한 필수조건이기 때문이다. 그 다음은 뭘까. 산업은 고도화 되고, 수명은 길어지고, 변화의 주기는 빨라진다. 정답은 ‘평생 교육’이다. 누구나 끊임 없이 재교육을 받아야만 생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지금 학생들의 대부분은 아마 20년 후 아니 10년 후면 지식산업교육원에 다니고 있을 지도 모른다. 그래서 사회교육처에서는 내년부터 재학생 취업역량 강화 프로그램과 졸업생을 위한 재교육 시스템을 구축하려고 한다. 이미 ‘학생과 학생이 아닌 경계’가 모호해지는 시대가 눈 앞에 왔다고 보기 때문이다. 사회교육처의 교육관은 간단하고 명료하다. ‘가르치는 사람이나 배우는 사람이나 배운 뒤에 무엇을 할 것인가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 구성원 모두에게 사회교육에 대한 시선을 재정립해 달라고 간곡히 부탁해야겠다는 생각이 든 계기가 있었다. 올 7월 사회교육처 학점은행 졸업식이 끝나자, 졸업장을 손에 꼭 쥔 채 일흔이 넘은 어르신께서 단상 앞으로 오시더니 눈물을 글썽이면서 하신 말씀, “이제야 평생 꿈인 대학 졸업장을 갖게 되었으니 본격적으로 학문을 연구해 봐야죠” 고백하건대, 사실은 사회교육처장인 필자도 이 말을 듣고서야 생각을 완전히 바꿨다.

이찬규 사회교육처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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