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지하철 파업이 경찰의 공권력에 의해 정리되었다는 소식을 런던에서 들었다. 그리고 며칠 후 나는 파리에 잠시 머물게 되었다. 프랑스 공항에 도착하여 약속장소에 전화를 하니 철도노동자들이 파업 중이라 불편할 것이라며 버스를 탈 것을 권했다.

한국에서 언론의 지하철 파업 죽이기와 시민들의 불평이 높았다는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왜 파업을 하는지에 대한 관심보다도 파업에 대한 사회의 반응이 더 궁금할 수밖에 없었다.

공항에서 시내까지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나의 시선은 철로에 서 있는 열차들로부터 떨어지지 않았다. 그리고 한편으로 그림처럼 명동과 서울대에서 싸우던 한국의 지하철 노동조합 조합원들의 모습이 그려졌다.

시내에 들어서도 경찰은 보이지 않았다. 지하철 부근에서 약속이 있어서 지나가다 우연히 3명의 경찰을 보았다. 함께 있던 프랑스 활동가에게 파업 때문에 경찰이 배치되었냐고 물었더니 상시적으로 순찰하는 경찰이라고 말했다. 파업에 공권력 개입이라는 사실은 프랑스 파리에서는 낯선 이야기 같아 보였다. 프랑스 파리는 모든 도시들이 연결되어 있는 소위 방사형 도시다.

그래서 한 번 파업이 일어나면 그 불편함이야 더 말할 나위가 없다. 그러나 내가 잠시 있던 파리의 신문 어디에서도 파업을 비난하는 언론의 기사는 찾아보기가 어려웠다. 물론 이는 현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사람과 신문을 펼치고 대화를 하면서 확인된 사실이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

정리해고에 반대하는 파업 죽이기에 언론이 나서고 시민의 비난으로 머리 숙인 파업을 해야 했던 노동자들이 있는가 하면, 사회의 정의로서 파업을 받아들이는 프랑스 시민들의 의식차이를 어디에서 찾아야 하는지.
이 대답을 거리에서 찾기로 작정하고 나는 비행기 출발 전 약 5시간 동안 현지어를 하는 친구를 꼬셔서 거리 인터뷰를 하였다.

중년 아주머니부터 젊은 청년들까지 만나보았다. 질문 역시 아주 단순했다. 현재 파업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파업을 지지하는가 반대하는가? 그리고 불편하지 않은지 등등.

99% 정도의 사람들이 모두 파업을 왜 하는지 이야기 했다. 그리고 대부분은 내 질문이 무색할 정도로 지지(Support)와 연대(Solidaritas)를 이야기했다.

불편하지 않는가에 대한 질문에 대부분 내가 만난 거리의 사람들은 불편하지만 감수한다는 이야기를 했다. 그 표정은 담담했다. 한 사람의 이야기가 한국으로 돌아온 지금도 오랫동안 머리에 남아있다. 파업 때문에 우리가 불편한 것이 아니라 세계화에 의해 권리를 보호할 수 없는 시대로부터 우리는 불편함을 겪고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한마디, “파업이 없어도 점점 힘든 상황이 이미 초래된 것이 아닌가요?”

상호 권리의 주장에 대해 정의로 이해해주는 사회적 역사와 분위기가 우리의 상황과 다르기 때문에 참으로 부러웠다. 거리의 인터뷰에서 대부분 비슷한 대답을 얻고 나는 바삐 비행장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탔다.

택시 운전사는 아프리카에서 온 사람 같았다. 마지막으로 다시 물었다. 운전사는 “함께 공존하기 위해 나는 파업을 100% 지지한다”고 말했다. 공존의 의미가 남긴 여운은 한국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깨졌다. 자기 밥그릇만 챙기느라 파업을 했다는 비난의 목소리 속에 공존을 위한 대안의 소리를 내주는 가슴은 어디에서도 찾을 수가 없었다.

돌아와서 나는 이번 파업을 지켜본 하버드 대학 노동조합 연구소 대표 엘레인 버나드 박사를 만났다. 노동조합 운동가로서 그녀는 지하철 파업과 제3자이지만 노동자 대표로서 절실한 한마디를 했다.

“한 번을 해도 어떻게 하면 성공할 수 있는지 고민하고 파업의 이유를 잘 모르는 시민들을 교육하고 가슴으로 이해할 수 있는 노동조합의 전술이 필요합니다.” 성공하지 못한 파업이 사회적으로 어떤 후유증을 남길 것인지 다각도로 고민해야 하는 시점이 왔다. 이를 극복하기 위한 절실한 노력이 이제 노동조합과 사회단체에 남아있는 몫이 아닐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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