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혈창작문학상 -『지붕의 역사』 외 6편
  • 중대신문
  • 승인 2009.11.16 10: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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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부문 대상: 최희정(명지대 문예창작학과 2)

지붕의 역사

지붕은 주름을 창피해하지 않는다 그것은 정해진 탄생의 이력이기 때문일까 주름이 주름을 덮자 주름이 생기는 기왓장은 당신의 죽음처럼 딱딱했다 당신의 손이 축축해야만 했던 것은 늘 가려주는 한 폭의 손바닥 밑에서 도망간 어머니를 건너뛴 투명하고 질긴 탯줄 때문이었다

지탱하기도 힘들었을 늙은 배꼽 맡에서 낮잠을 돌돌 말아 누워있을 때마다 엎어진 가계부를 보고 늙은 지붕을 생각했다 쪼개진 새벽잠과 삭혀둔 낮잠으로 바꾼 것은 동전 몇 닢과 내 속옷이 전부였던 것을, 잠이 많아져 내 눈을 비비고 본 당신은 구멍났던 지붕이 땜질된 것처럼 눈을 감고 있었다

여기저기 빗금투성이던 지붕이 뽑혀 나가던 날, 선명한 주름살을 잡아당기며 웃는 영정사진 앞에서 사람들은 화투판을 벌이고 김치의 주름살을 찢어 삼키기도 했다 죽음의 잔치 속에서 천정에 뚫린 구멍의 외풍을 껴안고 잠이 들도록 익숙했던 바람과 지붕의 허파

지붕은 늘 높은 곳에만 있는 것이 아니었다 이제는 발아래 눅눅한 습기에 겨우 목을 축이며 가장 낮은 지붕을 세우고 있는 할머니의 주름은 기왓장보다 더 단단했던 것을.

 


바다에 사는 폐가


속눈썹이 길어지는 밤이 되면
이곳의 악기들은 아가미를 벌린다
벽지마다 스며든 납작한 울음소리들,
근원은 어디에도 없는 소리들이다
바다의 폐활량이 굼실거릴 때면
안개 자욱한 지붕 너머로 비린내가 난다
비린내로 연주하는 엇박자의 노래들은
싱거웠던 사람들의 발자국을 잡으려고
이토록 갈증 나는 목울대를 품었나
이끼 곪는 우물에선 쉰 소리가 들린다
이곳에서 그물은 사람들의 핏줄로 엮은
질긴 주머니, 올올히 풀어진 사람들의
발자국들은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을까
사람들이 떠나자마자 검푸른 비늘들이
벽지 모서리부터 파닥거리기 시작하면
현을 켜는 거미들은 밤을 물어다 놓는다
무릎을 펴본 지 오래된 이불 속엔
쥐오줌이 비릿한 해안선을 그리고 있겠지
바다를 등지고 숨쉰다는 것은
지붕의 모든 아가미들이 호흡하는 것,
얼룩이란 얼룩은 모두 굴절되어
거울의 동공 속에 뱃고동 소리 품고 산다
비바람을 조율하던 빨랫줄엔 오징어의
흡반이 되어 살아가는 빨래집게들뿐인데
마를 틈 없이 젖어서 살아야 했던
지붕의 소리들이 발목까지 흥건해진다.

 


햄버거 낭만경제학


사람들의 미뢰가 유리에 얼룩져 있어요 오늘은 달콤한 햄버거를 먹는 날이죠 햄버거에서 소뿔을 씹던 날이면 모래성을 쌓던 또래아이들이 몰려와 세트 메뉴를 시켰죠 프라이드치킨을 먹던 아이들이 플라이! 플라이!를 외치며 닭날개를 뜯고요, 탄산음료의 기포들이 덕지덕지 식도를 타고 내려와요 24시간의 패스트푸드점이지만 24분 동안만 먹어야 해요

목장갑이 다 배분되어 단풍잎처럼 떨어지기 전에 먹어야 해요 빵 속에 살던 개미가 기어 나와 냄샛길로 델리소스를 뿌리죠 햄버거를 보면 우리의 얼굴이 떠올라요 마른 양상추처럼 수분이 없는 얼굴, 납작한 뱃살을 출렁거리는 사학년, 막 전역해 군기 든 오이지 형들이 마구마구 포개져 있죠 모래를 만지던 손에 침샘이 고이면 미끈거려요

벽돌을 쥐어도 사라지는 테트리스 오락을 하러 떠날 거라고, 햄버거를 씹으며 상상해요 얼음이 녹아 콜라가 부풀어 오르는 동안 문 앞 웃으며 서 있는 할아버지의 꼬르륵 소리를 들어요 목장갑을 펄럭이며 봉고차에 타는 친구들을 보고 패스트푸드점을 나와 패스트(fast)! 패스트(fast)! 전력질주해요 계산된 영수증에서 청구되어 나온 우리들의 부가세를 계산해줄 사람이 왔단 말이에요.


장마


구름 지붕 뜯어내면 빗줄기가 뿌리를 내렸을까요? 마을 사람들 잔주름에 호우주의보가 내려지고요 수군거리던 나무들은 옹이로 빗소리를 엿들어요 비의 발자국이 흥건하게 발목까지 저려올 때마다 인삼밭에서는 쿰쿰한 냄새가 흘러나왔죠 사람들이 쥐어짜낸 땀방울 심어 놓은지도 모르고 지붕에 어룽진 물방울이 너무 동그란 것 같아요 잡초마다 우거진 강아지풀 뽑혀나가는 소리에 동네 강아지들은 삼삼오오 모여 짖어댔고요 어둠을 끌어당긴 구름이 포효할 때마다 마을엔 나무껍질처럼 갈라져있던 바닥에 강이 놓였어요 구름을 이불삼아 덮고 잠이 든 사람들은 구름이 마르길 기다렸어요 오줌을 저린 것처럼 축축한 구름을 쥐어짜도 나오는 건 눈물뿐이었어요 마을 사람들의 손 떼를 거름삼아 광합성하던 푸른빛 채소들의 서걱거림 둥둥 떠다닐 땐 마을의 안테나였던 납작한 정자가 가라앉았어요 확성기로 퍼지는 빗소리는 사람들이 두레박 들고 빗물 퍼내는 잠꼬대를 알고 있을까요 아마도 마을의 구름 지붕에 구멍이 뚫렸을 거라고 나긋한 목소리가로 잠을 청하죠 암탉이 울지 않았던 다음 날 아침, 인삼 밭 우듬지만큼이나 굽은 사람들 뼈마디마다 해일이 일어났을지도 몰라요 말라가는 땅처럼 밭과 밭 사 이의 균열 때문에 서낭당 앞에 놓였던 그릇에 금이 갔어요 구름 지붕을 뜯어내는 날, 고무신 밑창마다 뻗은 잔뿌리들만 겨우내 흙 한줌 쥐고 있을까요

 


해물탕


바다거북의 등껍질을 뒤집어 붉은 바다를 끓인다
다리가 뒤틀려 흔들리는 식탁에 달라붙은 젓가락들
바다 속을 응시하며 비린내에 침샘을 분비시킨다
바다거북은 온몸으로 가스 불을 견뎌내면서도
한 발자국도 기어가지 않는다 아버지와 나에게
끓는 점보다 정확한 수평선을 받치며 죽어가는 맛
꽃게의 핑킹가위가 서서히 가라앉을 때마다 홍해는
아가미가 있는 것들의 무덤이 된다 무덤이 되는
등껍질을 박박 긁으며 맛을 도굴하는 식탁의 풍경
정박해 있던 조개는 세상 밖에 나온다 빈 껍질 되어
차곡차곡 탑이 된다 끓이면 끓일수록 졸여가는
홍해가 되고 싶다 싱겁거나, 혹은 미지근한 혀를
서로 맞대고 야금야금 홍해의 해수면을 삼켜간다
낙지들은 아버지처럼 다리를 꼬고 홍해를 유영한다
등껍질에 달라붙은 흡반들이 쫄깃쫄깃하게 버티면
식탁의 어금니들은 충치를 잊고 견주어 물어뜯는다
부풀어 오른 배꼽을 둥글게 비비며 출렁이는 홍해의
포말 소리를 가늠한다 젓가락을 쥔 손가락부터
붉은 비늘들이 튀어 오른다 떠난 자리에 홀로 남겨진
바다거북은 은하수 같은 쟁반 위에 실려 떠나간다
홍해의 잔해들을 박박 씻어내는 동안에 식탁 위엔
또 다른 바다들이 흘러들어왔다 싱싱한 바다 조각들.


K의 하루


눈동자에 방충망이 생긴 재수생 K는
‘행복은 성적순이 아니잖아요’라는 책을 읽는다
구구절절 써있는 활자들이
서랍 속 점수들에 날개를 달아 놓는다

여름방학이 없는 K는 계획표도 없었다
잠자는 시간이 불시착으로 내려앉는
방 안에서 벌레들을 쫓는다
수북히 쌓인 참고서들 속에 방생하는
밑줄들이 걸어 나와 더듬이를 사방으로 뻗힌다
간지러움을 타던 책갈피들이
종이의 유전자를 빨아먹는다

세상에!
K는 어렸을 때 읽은 파브르 곤충기를 펼친다
사방에 귀뚜라미 울음소리들이 달라붙어 있다
귀뚜르르- 울기 시작한 K는 형광팬을 꺼내
벌레들의 냄샛길을 만들어준다
길을 따라 영영사전 속에 냄샛길에
발이 빠진 단어들도 눈을 뜬다
‘distress’라는 벌레가 허물을 벗고 두리번거리다
K의 머릿 속에 달라붙었다
디스트레스, 스트레스야!

책상 위의 세상에 K는 놀란 동공으로
구멍난 방충망을 붙잡고 있었다
더 이상 날아들지 않기를,
연습장에 낙서 했던 달팽이가 점액을 뿜으며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연습장의 스프링은 강수량을 재느라
휜 허리를 붙잡고,
여름의 끝을 잡고 곤충채집을 하는 K는
양장본의 파브르 곤충기 표지 속 웃고 있는
파브르의 표정을 짓는다
벌레들이 방충망에 달라붙는다
재수가 없는 오.밤.중.


딱지치기


아빠들의 유년시절은 간지러워
긁는 대로 이야기가 점선따라 접힌다

참 많은 시간들이 곪아있는 흉터들
연고를 바르지 않아도 돋아난 새살들은
딱정이를 떼려는 고집들을 기억한다
엄마를 만나기 전, 수많은 여자와
헤이즐럿이 담긴 로맨스를 꿈꾸다
딱지 맞은 골목대장들의 자존심은
뒤집어지지 않는 물딱지 표정이다

골목의 모퉁이마다 주차싸움 피해
보도블럭에 잠시 피난가 있는
아빠들의 자동차 창가엔
옷 벗은 누나들의 한가한 로맨스 다음으로
삼만원짜리 딱지들도 앉아 있다
투덜거리며 용돈을 모아 구청에 수용되면
눈치보며 된소리로 욕을 발음한다

게딱지에 밥을 비벼먹는 일로 소일하는
밥그릇 로맨스는 잊을 수 없는 첫사랑,
지상의 모든 딱지와 스캔들을 갖는
불운의 슈퍼스타, 아빠들은 그러나
가끔 집안 곳곳 달라붙은 빨간딱지는
수집하지 않았다 이상형이 아닌
맞선녀의 표정으로 엄마를 달래느라
늙어버린 골목대장들,

지금은 어디서 무엇을 하나,
허전한 골목엔 아직도
경적을 울리며 싸우는 소리가 뒤집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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