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세기 이래 오늘까지 적잖은 러시아 작가들이  성자처럼 세계고전작가의 반열에 올라있다. 그들은 인간의 고통과 슬픔, 인간의 미래 운명에 대해 그 어느 나라 작가보다도 부단히 고뇌하며, 해결책을 위해 자신들의 열정을 쏟아왔다. 시인이자 소설가푸쉬킨은 삶의 현실이 아무리 힘들지라도 노여워하거나 슬퍼하기보다 밝은 미래를 바라보게 하며 인간에게 희망과 기쁨을 약속하고 있다.

  러시아 문학의 거봉이라 할 수 있는 톨스토이는 끊임없는 자기 성찰을 통해 사회와 인간의 모순을 물리적 방법이 아닌 순리로, 자연과 신에 대한 겸손함으로 해결하려고 노력해왔다. 톨스토이와 쌍벽을 이루는 도스토예프스키는 인류 공동의 행복이라는 미명 하에 인간 개인 더 나가서는 인간 전체의 진정한 자유를 말살하려 했던 사회주의자들의 위험성을 강하게 경고했던 예언자로서 인간 심리의 메카니즘을 통찰하고 있었다. 그는 서구사회에 팽배해 있는 유물론(materialism)이 인간의 정신세계를 얼마나 피폐하게 만드는지 그 예를 작품에서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20세기는 그가 예언한 모습들이 그대로 드러났던 기억을 우리는 잊지 않을 것이다. “악령”에 물들어 있는 듯한 20세기의 유물론자 또는 공산주의자라고 자칭하는 자들로부터 인간의 진정한 가치를 회복할 수 있는 방안으로 21세기의 솔제니친 같은 작가는 오염되지 않은 고대 러시아 정교의 순수한 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세계적 고전작가의 대열에 합류한 러시아 작가들을 짧은 지면에 모두 열거하기에는 무리가 있을 것이다. 단지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 고전 작가 군에서 예외가 있다면 20세기 초의 막심 고리키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막심 고리키는 지난 80년대와 90년대 한국에서 현대 러시아의 고전작가로 손꼽혀 왔으며 사회의식을 가진 청년이라면 꼭 읽어야할 작가로 인식되어 왔다. 특히 그의 장편소설 『어머니』는 적지 않은 감동을 불러일으킨 것으로 알고 있다. 그것은 혁명이라든가 노동운동을 통해 기존의 사회를 전복하고자하는 사람들에게는 경전이나 다름없는 책이다. 스토리는 가난한 술주정뱅이 노동자의 무지몽매한 아내와 의식화되어 가는 그의 아들에 관한 내용이다. 무식한 어머니는 최악의 어려운 환경에 처해있으면서도 왜곡된 자본주의의 착취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지만, 사회의 모순을 타파하기 위해서 신(神)을 버리고 노동운동에 뛰어든 아들을 이해하기 시작하면서 아들의 혁명적 투쟁에 적극 가담하여 치열한 혁명전사로 변신한다는 다분히 작위적인 성격을 담고 있다. 고리키의 뛰어난 필력과 세련된 문학적 장치를 통해 어머니와 아들은 노동혁명의 순교자가 된다는 인상을 주고 있다.

  레닌은 『어머니』를 매우 유익한 작품으로 평가하고 있다. 기존의 정권을 붕괴시키고 자신의 혁명을 완수하는데 민중의 봉기가 필요한 그에게 정치적 명분을 획득하는 거나 다름없기 때문이다. 레닌은 혁명가이기 때문에 자신의 이념과 목적에 반하는 자들을 동족이라 하더라도 모두 적이라고 불렀다. 『어머니』에서도 주인공 어머니와 그의 아들의 지하 운동을 억압하는 자들은 적으로 부른다.  게다가 민중을 탄압한다는 이유에서 그러한 적들을 죽여야 되는 것이 정당화되고 있다. 톨스토이가 즐겨 쓰는  “복수는 나의 것이니 악을 선으로 갚아 그를 부끄럽게 해라 ”라는 성경구절을 무색하게 하는 행위이다. 

  『어머니』식의 소설 속에서는 정치적 강령과 선동은 있을지언정 고전의 반열에 올라설 수 있는 요건이 되는 문학적 예술성, 즉 균형감, 양식(good sense), 조화 같은 것은 없다. 무엇보다도 계급투쟁을 통해 또 다른 인간에게 증오심을 야기시키는 문학은 그 목적이 어떻든 고전이 될 수는 없다. 건강을 위해 좋은 음식과 나쁜 음식을 가려 먹듯이 우리의 정신적 양식인 문학도 좋은 것과 나쁜 것을 선별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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