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나라의 담론체제를 여과없이 받아들이는 데에 따르는 문제는 어제오늘에 이르러서 제기된 것은 물론 아니다. 이 문제의 본질을 이미 단재 신채호가 “우리 조선 사람은 매양 이해 밖에서 진리를 찾으려 함으로, 석가가 들어오면 조선의 석가가 되지 않고 석가의 조선이 되며, 공자가 들어오면 조선의 공자가 되지 않고 공자의 조선이 되며, 무슨 주의가 들어와도 조선의 주의가 되지 않고 주의의 조선이 되려한다. 그리하여 도덕과 주의를 위하는 조선은 있고 조선을 위하는 도덕과 주의는 없다. 아, 이것이 조선의 특색이냐? 특색이라면 특색이나 노예의 특색이라. 나는 조선의 도덕과 조선의 주의를 위하여 통곡하려 한다”고 지적한 적이 있다.

잎새보다는 뿌리를

학위논문을 쓰는 우리 유학생들에게 필자가 강조하는 이야기의 내용이 하나 있다. 우리나라에 자라지 않은 올리브 나무나 보리수 잎을 몇 개 따가지고 귀국해서 이것이 우리나라에 없는 올리브 나무나 보리수라고 하지 말고, 오히려 올리브 나무나 보리수의 조그마한 묘목이라도 들고 가서 이것이 우리 땅과 기후 조건에서 살 수 있는가를 가늠해야 할 것이라고…. 처음에는 비록 윤기가 도는 잎이지만 며칠 지나면 이내 말라 비틀어진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물론 묘목을 새로운 풍토에 적응시켜 키우는 일도 결코 쉬운 일은 아니지만 뿌리를 굳건히 내리기 시작해서 성장한 나무는 원래의 땅에서 자란 나무와 분명히 다를 수 밖에 없다. 가령 막스 베버(M. Weber)의 사회학이 미국에서 파슨스(T. Parsons) 등을 통해서 새롭게 재해석·응용되었고 이것이 다시 독일에 역수입되었으며, 니체 철학이 프랑스에서 푸코(M. Foucault)나 들뢰즈(G. Deleuze) 등을 통해서 ‘탈현대(postmodern)’ 사상의 기조가 된 것처럼 다른 나라의 사상이나 담론 체계도 주체적으로 수용될 때는 건실한 뿌리를 내릴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새 이론에 대한 예민한 감수성도 중요하지만 자기 땅의 풍토와 기후 조건에 대한 철저한 분석이 요구된다.

지식인의 현실참여

지식인이 보편적인 것에 대하여 보여주는 예민한 감수성 때문에 ‘정신의 담지자(Trager des Geistes)’나 ‘영원한 진리의 대표자(Vertreter der ewigen Wahrheiten)’로서 긍정적으로 부각되기도 했지만, 자기가 선 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잘 모르기 때문에 가령 나치때 선전상을 했던 괴벨스(J. Goebbels)는 지식인들을 ‘번식력이 없고(steril)’, ‘피가 메마른(blutleer)’ 집단으로 묘사하고, ‘생동하고 유기적으로 느끼는 인간’에 대한 대칭집단으로까지 설정하였다. 대체로 지식인은 선망의 대상이기도 하지만 경멸의 대상이기도 하다.

지식인을 ‘자유롭게 떠도는(freischwebend)’ 집단으로 규정한 사회학자 알프레드 베버(A. Weber)나 칼 만하임(K. Mannheim)의 의도는 물론 부정적인 관점에서 시작된 것은 아니었다. 이들은 지식인이 계급, 계층, 조직 등의 이해 관계로부터 상대적으로 자유로울 수 있고, 이러한 복잡한 이해관계를 조망할 수 있기 때문에 사회의 ‘파수꾼’ 역할도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바로 이러한 특성 때문에 지식인은 기회주의적인 속성을 어느 누구보다도 많이 지니고 있다고 항상 지적되기도 한다. 만하임의 지식인 규정에 대해서 비판적이었던 에른스트 쿠르티우스(E. Curtius)는 지식인들은 자유롭게 떠도는 순간에도 오히려 어디에 안주할 수 있는가를 생각할 수 있는 시간과 가능성을 가질 수 있다고 오히려 반론을 폈다. 사회의 변동과 함께 진전되는 사회적 분화에 따른 지식인의 위치도 과거처럼 ‘자유롭게 떠돌 수’ 없게 만들어 전통적으로 문화적인 의미의 지식인의 행동범위와 내용도 오늘에 와서 상당히 제한될 수 밖에 없게 되었다.

식민지와 분단의 역사로 이어오는 우리 사회에서는 더욱이나 ‘자유롭게 떠도는’ 지식인이 긍정적인 의미보다는 오히려 부정적인 의미로서 해석될 수 밖에 없고, 지식인의 불편부당성보다는 그들의 기회주의적 속성이 항상 문제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게다가 지난 30년 동안 엄청난 속도로 줄달음쳐온 ‘근대화’는 전통적인 의미의 ‘문화적 인간’보다도 ‘기능적 인간’을 계속 요구해 왔기 때문에 ‘지식인의 종말’이라는 물음이 곳곳에서 줄곧 제기되고 있는 구미 지식세계보다 더 문제가 심각하지 않나하는 생각도 든다. 오늘 우리 사회가 지식인에게 요구하는 것은 민주적 사회 안에서 비판적이며 유기적인 ‘반대권력(contre-pouvoir)’이어야 한다는 위녹(M. Winock)의 프랑스의 지식사회에 대한 요구보다도 훨씬 무거울 수 밖에 없다. 흔히들 지식인의 사회참여를 이야기할 때 제일 먼저 드는 예가 1898년 프랑스의 드레퓌스(Dreyfus) 사건 때 무고한 그를 변호하기 위해 1백명 가량-이중에는 아나톨 프랑스(Anatole France), 에밀 졸라(E. Zola),파스 연구소 소장 뒤클로(Duclaux)등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나는 고발한다(J’accuse)’로 시작하는 유명한 성명이다. 그 후에도 앙드레 지드, 앙드레 말로, 싸르트르 등으로 이어지는 프랑스 지식인의 현실참여는 우리 지식인의 현실참여의 귀감으로까지 자주 소개되고 있다. 그러면 우리 지식인의 현실 참여는 정말 내놓을 만한 것이 없는가?사실 일제의 잔학한 식민지 통치, 반공 파시즘 그리고 군부독재로 점철된 숨막히는 상황 속에서 지식인의 현실참여는 그들의 목숨을 건 행동일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프랑스는 볼테르를 감옥에 가두지 않는다는 드골의 싸르트르에 대해서 빗대어한 평가는 우리 지식사회가 싸르트르를 가지지 못하는 부러움 때문보다도, 드골과 같은 정치인을 가지지 못하고 있는 현실적 정치상황을 더욱더 염두에 두었기 때문에 자주 이야기되었다. 비록 과거보다는 지식사회에 대한 직접적인 권력의 탄압이 줄어들었다고 해도 정치·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제기되고 있는 문제는 여전히 남아있고, 민족분단에서 오는 고통도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다행스러운 것은 우리 지식인의 현실참여의 폭과 깊이는 과거보다 넓고 깊어진 것으로 보여지고 있다는 점이다. 구미의 지식사회가 68년과 89년을 거치면서 ‘지식인의 종말’까지도 이야기하고 있는 상황을 염두에 둘 때, 우리의 지식사회가 자신의 중심을 유지하고 현실참여의 폭과 깊이를 더할 수 있는 관건은 그러면 어디에 있는가?

‘지구화’와 ‘민족통일’

일간 신문에 조그마한 칼럼을 쓰는 행위로부터 국정 철학 수립에 참여하는 데에까지 이르는 지식사회의 다양한 행동반경이 ‘지구화’나 ‘정보화’라는 거센 흐름 속에서 자기의 중심을 유지하기 위한 노력이 우선 지식의 세계체제의 ‘중심부’와 ‘주변부’의 ‘차이’에 대한 인식과 함께 시작될 수 밖에 없다고 위에서 밝혔다. 냉전 이후의 시대에 남아 있는 ‘유일한 냉전의 고독’이라는 말처럼 우리 지식 사회가 보여주는 ‘차이’에 대한 경험과 인식은 이제 일상화 되어있다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일상화된 경험이나 인식이 자신도 모르게 타성화 되었고, 반복적이기 때문에 이제는 오히려 ‘차이’에 대한 감각마저 무디게 만들고 있는 것처럼 보여지고 있다. 분단 상황 속에서 형성된 우리 지식사회가 근본적으로 안고 있는 멍에를 의식하지 못하고, 한쪽에서는 ‘중심부’의 담론 체제를 그대로 수입하고, 이를 재생산하면서 ‘역사의 종언’, ‘민족국가의 종언’, ‘지리의 종언’, ‘노동의 종언’을 복창하고 있는 분위기는 고조되고 있고, 분단 전 땅 다른 쪽에서는 여전히 ‘주체사상’, ‘민족과 운명’ 등에 대해서 이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남쪽의 지식사회가 중심부의 그것과 동일시되려는 노력을 ‘세계화’라고 표현하고 있다면, 북쪽의 지식사회는 중심부와의 질적 차이를 여전히 강조하고 있는 특이한 상황을 우리는 현재 맞고 있다. 남의 ‘동시성’과 북의 ‘비동시성’이 역동적으로 만나고 있는 한반도 전체의 지식 사회에 대한 새로운 반성은 우리 지식사회의 새로운 틀을 짜기 위해서는 건너뛸 수 없는 노둣돌이다. 남과 북의 지식사회가 새로운 틀을 함께 짜는 작업에서 남과 북의 지식사회는 서로를 ‘반면교사’로 삼을 수 밖에 없는 까닭은 남의 ‘동시성’은 북의 ‘비동시성’을 통해서, 또 북의 ‘비동시성’은 남의 ‘동시성’을 통해서 드러나기 때문이다. 필자가 ‘남·북·해외학자 통일학술회의’를 몇 년째 중재하면서 ‘남북 학문공동체’수렴의 과제를 역설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지구화’ 시대에도 여전히 민족통일을 이야기할 수 밖에 없는 우리의 지식사회가 안고 있는 ‘차이’에 대한 명확한 인식이야말로 새로운 틀을 짜는 첫걸음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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