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미술 작품을 관람할 때 어떠한 사전지식도 없이 감상하는‘프린포족(freeinfo)’이 늘고 있다. 프린포족이란 자유와 해방을 뜻하는 Free와 정보와 지식을 뜻하는 Information을 합한 말이다. 프린포족들은 예술에 대한 배경지식이 전무한 상태에서 작품을 감상한다. 그들은 본인만이 느낄수 있는 온전한 감상을 원하기 때문이다. 지난달(6월) 28일부터 서울시립미술관 본관에서 열린‘행복을 그린 화가:르누아르’전에서 프린포족을 만나보았다.


 반 고흐와 모네를 비롯해 대표적인 인상주의 화가로 손꼽히는 르누아르는 19세기 후반, 삶의 기쁨과 환희를 현란한 빛과 색채의 융합으로 표현해냈던 대가이다. 그만큼 그와 관련한 예술사적 지식, 그림에 대한 평가, 그가 살았던 흔적 등에 대한 자료는 넘쳐날만큼 다양하다. 이번 르누아르전을 기획했던 이혜민 큐레이터는 “초보자가 쉽게 알 수 있도록 작품의 상세한 해설이 담긴 오디오가 구비되어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국내ㆍ외 규모가 큰 대부분의 미술관이나 전시회에서는 각 나라별로 언어청취가 가능한 오디오 가이드를 구비하고 있다. 서울시립미술관도 이번 르누아르전을 감상하러 온 관람자에게 작품설명이 담긴 오디오 가이드를 대여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다.


 하지만 미술관 관계자의 말에 따르면 작품을 감상하러 온 사람 중 오디오 가이드를 이용하는 관람자의 비중은 20%에 지나지 않는다. 서울시립미술관 스태프 송희씨(24)는 “예전보다 오디오 가이드 착용자들이 계속해서 줄어드는 상황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고 밝혔다. 이제 미술관 측이 전시회 입구마다‘오디오 가이드 사용하세요’라고 외치는 광경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이번 르누아르전을 감상하러 온 대부분의 관람객들은 오디오 가이드 사용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작품의 주체적인 수용을 방해한다는 이유에서다. 전시회를 찾은 고봄이씨(20)는 “오디오 가이드를 착용하면 그 순간은 작품에 대한 지식을 얻을 수 있으나 본인이 느낄 수 있는 고유한 감상은 제한한다"고 지적했다. 이다솜씨(24)도 “미술지식이 전무하나 절대 오디오 가이드는 사용하지 않는다"며 "선입견을 갖고 작품을 수용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처럼 오디오 가이드나 미술안내인(docent)의 설명을 들으면서 작품을 관람하는 태도가 점점 사라지고 있다.


 오디오 가이드를 사용하거나 미술안내인의 설명을 듣다보면 꼭 필요치 않은 감상평이 들어있거나 누군가의 특정한 감상을 주입시키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디오 가이드에서는 르누아르작품 시골무도회의 경우에 ‘이탈리아 화가인 라파엘로의 영향을 받았다’고 말한다. 미술안내인은 작품 책 읽는 여인에서 ‘우리가 사는 세계와 달리 훨씬 더 아름답고 일상의 희노애락을 초탈한 모습을 보인다’고 설명했다. 이에 대해 박양우 교수(중앙대 예술대학원)는 “해설은 반드시 개인의 감상 범위를 해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예술의 미적 아름다움을 추구하는데 부연설명을 일절 배제시키자는 것이 프린포족의 주장이다. 미국 위스콘신대에서 미술사를 전공하는 레슬리 김씨(24)는 “감상에 시대적 배경이 중요시된다면 굳이 관심을 갖는 관람자에게 한해야 한다”며 “순수하게 작품을 감상하는 것이 목적인 관람자에게 작품 외적인 부분에 대한 설명은 전혀 필요없다”고 말했다.


 반면에 시대적 배경이나 작가의 의도를 알지 못하면 특정 장르를 이해하기 힘들다는 입장도 있다. 특히 추상화의 경우를 대표적으로 든다. 안병석 교수(예술대 서양화학과)는 “예술에 문외한인 사람이 추상미술을 감상하기는 어렵다”며 “어느 정도 예술 관련 지식을 수반해야 감상폭을 넓힐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작품을 감상하러 온 김길룡 교수(성균관대 생명과학과)는 “21세기를 살아가는 요새의 젊은이들이 1960~70년대 음악을 이해 못하는 것처럼 역사의 산물인 미술작품 역시 시대적 배경은 중요하다”고 말했다.


 그동안 미술, 음악 등의 예술을 접하는 대중들은 배경지식이 없으면 교양없는 사람으로 취급 받거나 스스로 위축되기 일쑤였다. 하지만 기존의 사회적 편견을 부수고 자신만의 주체적 감상을 도모하려는 감상자들이 늘어남에 따라 예술 감상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도래하고 있다. ‘무식’한 것이 잘못이 아니라 더 알고 싶어서 ‘무식’을 지향하는 사람들, 프린포족의 행보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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