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컨텐츠 산업이 하나의 유행처럼 자리 잡았다. 그러나 역사컨텐츠 산업은 재미를 위해 역사적으로 알려져왔던 사실을 각색하는 일도 있어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는다. 중대신문 학술부에서는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역사컨텐츠 산업 왜곡 논란에 대하여 역사학적으로 분석해 보았다.         편집자

  최근 전통문화를 소재로 한 다양한 문화상품이 유행하고 있다. 이 자리에서는 그 중에서 우리의 역사와 문화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 역사극을 대상으로 그 의미와 논쟁들을 고찰해 보고자 한다.

  한국영화는 1990년대 말부터 새로운 부흥이 있었으며, 그 중에서 이른바 대박을 낸 영화나 센세이션을 일으킨 것은 주로 역사를 소재로 한 역사영화였다. <실미도>, <태극기 휘날리며>, <웰컴투동막골>, <공동경비구역JSA>, <왕의 남자> 등은 대박을 터트렸으며, <아나키스트>, <한반도>, <화려한휴가>, <황산벌>, <혈의누>, <황진이>, <신기전>, <궁녀>, <놈놈놈>, <미인도>, <쌍화점> 등은 많은 화제가 되었다. 역사영화의 유행과 함께 TV 역사극 또한 지금도 지상파 3사에서 매일 방영될 정도로 활발히 제작되고 있다.

  우리 역사를 소재로 한 영화나 TV 역사극은 흔히 역사사실(fact)과 역사적 상상력(fiction)의 결합이라는 점에서 ‘팩션(faction)’이라고 표현되고 있다. 팩션 논쟁을 단순히 대별하자면 역사의 왜곡이라고 보는 시각과 역사의 재해석이라고 보는 두 가지 입장이 대립하고 있다.

역사왜곡이라는 비판적 시각

  역사가들은 팩션물에 대하여 처음에는 단편적으로 역사왜곡을 지적하였다. 즉 TV 역사극을 중심으로 한 팩션물이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심을 높여 준 점은 인정하지만, 반면에 왜곡된 고증이나 상상력이 일반대중에게 잘못된 역사이해와 역사인식을 심어줄 수 있다는 비판이었다. 이 단계에서는 구체적으로 팩션물의 어느 항목이 실제로는 역사적 사실과 어긋난다는 식으로 지적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나 상상력을 동원한 팩션물이 다양하게 만들어지고 대중들 또한 그러한 작품에 열광하게 되자, 역사적 사실관계를 단편적으로 지적하며 역사왜곡이라고 지적하는 수준은 이제 통하지 않게 되었다. 그 결과 역사가들은 비록 역사적 상상력을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상력이 당시 시대의 분위기와 가치관, 행동양식에 맞아야 그 시대의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는 입장에 도달하였다. 즉 팩션물이 사료에 빠져 있는 부분을 상상력으로 그려내거나 혹은 사료와는 다른 해석을 하는 것도 인정할 수 있지만, 이 경우에도 시대정황과 분위기를 무시하고 얼마든지 상상해서 마음대로 만들 수 있다고 하면서 ‘드라마는 드라마로 봐달라’고 말하는 것은 잘못되었다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으로는 결코 올바른 역사적 진실을 창출할 수 없다고 보는 것이다.

역사의 재해석이라는 시각

  이처럼 최소한 유지되어야 할 역사적 사실들은 왜곡하지 말것과 새로운 상상력도 시대 정황에 맞게 하라는 역사가들의 주장에 대해,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입장에 서 있는 일부의 역사가들은 다른 견해를 주장하였다. 이 입장에서는 기본적으로 역사가의 역사서술도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 사실들만으로 구성되어 있지는 않다는 점, 모든 역사는 이데올로기로부터 자유롭지 못하다는 점, 모든 역사는 있었던 그대로의 과거가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 쓰여진 텍스트라는 점에서 연극처럼 연출된 것이며, 따라서 역사란 사실 그 자체가 아니라 정확하게는 사실과 허구를 조합한 팩션이라고 보고 있다. 즉 정통적인 역사서술이나 팩션의 역사서술이나 사실 그대로가 아니라는 점에서는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오늘날 유행하는 팩션의 의미는 무엇인가? 포스트모던 역사학의 입장에서는 사실과 허구의 근대적 경계를 허무는 팩션이라는 양식은 ‘꿈꾸는 역사’를 지향한다고 보고 있다. 즉 팩션이 그리는 역사는 ‘현실의 역사’가 아닌 ‘꿈의 역사’이며, 그 꿈은 당대 사람들의 꿈이 아닌 지금 우리의 역사적 꿈을 대변한다는 것이다. 역사가 기본적으로 과거 있었던 현실을 재현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데 비해, 팩션은 현재의 우리가 그 시대에 일어났기를 바라는 ‘대안 역사’를 구현하려는 의도를 가진다고 분석한다. 그러므로 팩션물이 사실과 다르다고 하여, 역사왜곡이라고 하면서 팩션물이 꿈꾸는 가상현실을 막아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한마디로 팩션물은 역사의 재해석이라는 관점에서 존중되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전통역사와 영상역사의 두 가지 길

  필자는 ‘역사적 사실’,·‘역사적 상상력’·‘역사적 진실’이라는 요소로 팩션물을 분석해 왔다. 역사의 목표는 역사적 진실을 규명하는 것이다. 역사는 과거 사실을 기록한 자료를 이용하여 자료비판과 상상력을 동원하여 역사적 진실을 밝히려는 담론이라고 표현할 수 있다.

  필자는 이제 팩션의 역사적 상상력은 기본적으로 용인되어야 한다고 본다. 앞에서 역사가들이 그 시대인의 가치관, 행동 양식, 시대 분위기 등이 반영되어야 한다고 했던 것은, 그렇게 되어야 팩션물이 그 시대의 ‘역사적 진실’을 전달할 수 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이제 어떠한 상상력이 동원되든, 결국 그것은 무엇을 말하기 위하여 그렇게 상상했는가, 즉 어떤 관점을 드러내기 위하여 그러했는가, 그리고 그것은 이 시대 어떠한 메시지를 주는가 라는 점을 검토하는 것이 되어야 할 것이다. 만약 신윤복을 여자로 설정했다고 하더라도, 사실에 맞는냐 아니냐 라는 수준을 넘어서서 그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역사적 진실이 과연 무엇이었는가 하는 점이 보다 중요한 논쟁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 점을 좀더 부연하자면 이제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을 ‘역사이해의 특수성’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는 크게 전통적인 역사가의 사실기록을 우선한 방식이 있고, 상상력 위주의 영상역사 방식이 있을 수 있을 것이다. 여기에서 새롭게 등장한 영상역사의 방식도 역사이해의 또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이자는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역사이해의 다양한 특수성도 결국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역사해석의 보편성’에서는 하나로 귀결될 수 있다. 그러므로 각각의 특수성을 인정해주되, 역사적 진실을 찾고자 하는 보편성의 맥락에서 비평하고 의미를 부여하는 보다 수준높은 논쟁으로 진전시킬 필요가 있을 것이다.

  어차피 역사가의 역할과 영상역사에 복무하는 자들의 역할은 차이가 있다. 아무리 역사가가 팩션 작가나 제작자와 같은 상상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그러한 상상력을 논문으로 발표할 수는 없다. 역사학은 기본적으로 실제 벌어진 사실을 연구하는 것이다. 이러한 차이를 받아 들이고 작가의 역할을 인정해 주어야 할 것이다. 즉 팩션의 역사적 상상력을 보다 자유롭게 놓아 주되, 그것이 말하고자 하는 것이 무엇이었는가를 따져보는 논쟁이 보다 바람직할 것이다.
 

  그렇게 본다면 전통역사와 영상역사는 협력적 분업관계로 파악될 수 있다. 크게 보아 역사학의 확장인 것이다. 서로의 역할이 다르므로 부딪칠 수도 있지만, 서로 상생하여 시너지 효과를 낼 수도 있다. 앞으로 역사가의 문제제기는 이러한 방향에서 이루어질 필요가 있을 것이다.

김기덕 - 건국대 사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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