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이다’ 연희동 주택가 근처에 자리 잡은 카페에서 작가 김미월씨를 만나자마자 든 생각이다. 화장기 없는 수수한 얼굴에 씩 웃는 얼굴, 나지막한 음성과 조근조근한 말투가 처음부터 왠지 모르게 친근하다.
최근 첫 단편집 『서울 동굴 가이드』를 출간한 그녀는 가장 애착이 가는 작품으로 등단작 ‘정원에서 길을 묻다’를 뽑는다. “서울예대 재학시절 기말고사 과제였어요. 교수님이 처음으로 조금 칭찬해 주시길래 신춘문예에 응모했죠.” 작가로서 처음 쓰는 작품이었고, 그래서 부담감 없이 편하게 쓸 수 있었다며 등단작을 가장 아낀다는 김미월씨.


  그녀의 소설은 편안하지 않다. 그녀의 문체는 현실과 주인공 머릿속을 자유자재로 넘나든다. 처음엔 부담스럽지만 우리 일상과 비슷해 읽다 보면 오히려 편안해진다. “그래서 어느 기자에게 ‘독자를 배려하지 않는 소설이다’라는 평을 듣기도 했지만 제 생각은 변함없어요. 굳이 작위적으로 ‘문득 그(혹은 그녀)는 ~를 생각했다’라는 문장을 넣을 필요는 없지 않나요?”


  게다가 그의 소설 대부분은 상처 받아 외로운 사람들이 주인공이다. 그녀는 “주위에 모자람 없는 사람도 있지만 그들 말은 들리지 않았다”는 독특한 답변을 내놓는다. “뭔가 하나씩 결여되고 상처가 있는 사람과 함께 있으면 끊임없이 이 사람이 무엇인가 말하고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그래서 들어주고 싶고,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래서 ‘혹시 집에 우환 있냐’는 질문도 많이 받았다는 그녀는 ‘가족’이라는 소재에 관심이 많다. “고아라 하더라도 곁에 없을 뿐,   누구에게나 가족은 있지 않느냐”고 말한다. 삶에 많은 영향을 끼치는 애증관계인 가족이라는 소재가 끌린단다.


  단편 ‘서울 동굴 가이드’로 2007년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에까지 오른 김미월씨는 동인문학상 얘기가 나오자마자 “후보인데도 이렇게 많은 질문을 하시는데 상을 받았으면 어땠을까 싶다”며 손사래를 친다. 그녀에게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 선정은 작은 위로에 불과했다. 제대로 된 소설을 쓰고 있는지, 대외적으로 이 소설은 어떤지 하는 끊임없는 회의와 불안을 덜어주는 위로제가 되었다.


  “처음에는 오로지 내가 좋아서, 나 자신만을 위해서 소설을 썼다”는 김미월씨. 그녀는 “그런데 쓰다 보니 문자는 힘이 세더라”며 웃는다. 문자로 남겨지는 것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는 것. 지금 작가 김미월이 꿈꾸는 소설은 ‘한 사람이라도 읽고 나서 웃거나 위안이 될 수 있는 책’이다.


  김미월 소설은 독자의 상상력을 요구한다. 길거리에서 마주친 어떤 여자를 어린 시절 자신이 버린 여동생인 줄 알고 쫓아가는 남자 이야기를 다룬 단편 ‘해피데이’도, 점순이 누나와 보내던 어린시절을 행복했다고 생각하는 주인공이 유명 가수 A를 점순이라고 믿고 메일을 보내는 ‘소풍’도 확실한 결말이 드러나지 않는다. ‘‘해피데이’ 속 여자는 동생이 맞지 않냐’고 물으니 “사실 쓸 땐 동생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썼다”며 결말을 생각하고 쓰긴 하지만 쓰다 보면 거의 바뀐다고 덧붙인다. “결말은 독자의 몫이에요”라는 작가의 자유분방함 덕에 소설을 읽다 궁금함을 참지 못한 독자들의 문의 메일도 많이 왔다. 특히 그녀는 ‘수리수리 마수리’를 읽고 자신의 경험과 똑같다면서 친구가 죽기 전에 남기는 마지막 말을 궁금해 한 독자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고 털어놓는다.


  작가 김미월에게 책은 곧 재미다. 고교 시절엔 무협지를 좋아했다는 그녀는 추리소설, 시집 등 장르를 불문하고 책이라면 모두 아낀다. 가장 재밌게 읽었던 책을 물어보니 예상 밖 대답이 나온다. “『왕자와 거지』요. ‘세상에 이렇게 재밌을 수가!’ 하고 생각했죠.”
책을 쓰는 일도 그녀에게는 재미다. 『서울 동굴 가이드』 단편 중에서 ‘유통기한’을 가장 재밌게 썼다는 그녀는 “봄철 절에서 낮에는 야생화를 보러 다니고 밤에는 좋아하는 소설을 쓰는 일이 꿈만같았다”고 회상한다.


  대안학교 교사를 하던 중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로 재입학한 그녀. ‘소설가는 가난한 직업이 아니냐’는 질문에 진지하게 답한다. “초등학교 때, 소설가들은 빨리 죽는다는 말에 ‘어 , 그럼 하지 말아야지’ 한 것 말고는 작가가 되고 싶은 꿈에 대해 고민한 적은 없어요.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가난하지 않을 방법을 찾아야죠. 나는 스스로 적게 벌어 적게 쓰자고 생각해요.”


  올해 4월이면 계간지에 연재했던 그녀의 첫 장편소설을 만나볼 수 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그릇의 크기가 다를 뿐 힘든 것은 똑같다”는 그녀에게 마감에 쫓길 때 어떻게 영감을 얻었는지 물었다. 대답은 뜻밖이었다. “뮤직비디오를 자주 봐요.” 가수 뮤직비디오나 공연 실황, 클래식 실황을 주로 본다는 버릇이 가장 많이 반영된 작품은 ‘너클’이다. “너클 쓸 때 많이 본 뮤직비디오가 SS501의 ‘경고’였어요.”


  대학 시절 야학 이야기와 휴학하고 돌아다닌 국내 여행기를 들려주며 “하고 싶은 것을 글로 적으면 삶의 능동적 주인이 된다”고 추천하는 김미월씨. ‘타샤 투더의 정원에 가보기’, ‘요들송 배우기’등 아직도 하고 싶은 일이 서른 가지가 넘는다는 그녀는 짧은 시간이 아쉬울 만큼 그야말로 ‘통하는’ 사람이었다.         

 

  - 작가소개

  소설가 김미월씨는 1977년 강원도 강릉에서 태어나 고려대 언어학과를 졸업했다.
  대안학교 교사로 근무하다가 서울예대 문예창작학과에 다시 입학했다. 2003년 제13회 의혈창작문학상 소설부문에서 ‘’로 당선되었고 2004년 세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정원에 길을 묻다’로 등단했다. 2007년 ‘수리수리 마하수리’, ‘유통기한’ 등 아홉 개의 단편을 묶은 첫 단편집 『서울 동굴 가이드』를 발표했으며 같은 해 동인문학상 최종 후보까지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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