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19혁명의 세계사적인 위치는 무엇일까? 그것을 생각해보기 이전에 먼저 인용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작년 AP통신은 1900년 이후의 10개의 10년간을 각각 한마디로 규정하는 기사를 내보냈다. 그에 따르면 ‘세계전쟁의 시대’, ‘평온한 시대’, ‘격동의 시대’, ‘자기중심의 시대’, ‘탐욕의 시대’ 등이, 40년대, 50년대, 60년대, 70년대, 80년대에 붙여진 이름들이라는 것이었다(한국일보 98.7.23일자 참조). 그에 비하면 한국은? 한국에서 70년대는 AP통신의 규정을 비웃듯, ‘박정희 중심의 시대’였고 80년대는 ‘신군부 탐욕의 시대’가 아니었던가. 그런 반면 60년대가 ‘격동의 시대’였다는 것은 한국에다가도 붙일 수 있을 것 같다. 그것이 가능하다면, 60년 4·19혁명 때문이리라.
세계사적(서방적)인 시각에서 같은 60년대를 ‘격동의(turbulent) 시대’라 지칭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68혁명’으로 대표되는, 전후 풍요를 구가하던 미국과 유럽 사회에 예상치 못한 급진적 학생운동이 소용돌이쳤기 때문일 터이다. 그 68혁명은 시기적인 근접성과 ‘스튜던트 파워’의 발현이라는 점에서 우리의 4·19혁명과 비교해볼 법하다. 그러나 그러한 유사성 이외에는, 우리는 차별점을 더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우선 그 두 혁명을 유발하였던 “저류에 흐르는 사회구조의 총체적 모순”의 성격이 상이하다.
익히 알다시피, 한국은 반봉건적 잔재, 한국전쟁 이후의 냉전·분단이데올로기의 공고화, 이승만 정권의 반민중적 억압 등이 중첩된 상황에 처해있었으며, 이같은 모순들이 3·15 부정선거라는 계기를 통해 폭발적으로 분출된 것이 4·19혁명이었다. 보통 서구 역사에서 반봉건적 모순 해소를 과제로 삼는 혁명은 부르주아민주주의혁명이지만, 4·19혁명 당시 한국은 근대적 부르주아도 존재하지 않았으며, 반봉건적 모순 해결만으로 당시의 문제를 해결할 수도 없었다. 또 한편, 민중의 핵심세력인 노동자, 정권으로부터 가장 큰 수탈대상이던 농민 등도 조직적 저항세력으로 자리잡지 못했다. 따라서 학생과 지식인이 운동의 전면에 나서 ‘민중의 대리자’ 역할을 떠맡았(아야했)던 것이다. 그리고 여기서 제시된 운동의 논리와 구호(민주주의, 민족통일)는, 그후 길고도 오랜 독재정권 하의 사회운동의 이념적 원형이 된다. 한국의 4·19혁명은 식민지경험을 가진 제3세계 주변부 나라로서 “세계사적이고 보편적인 역사적 과제를 ‘한국적 형태’로 표현한 것”이지만 “어떤 나라에서도 한국처럼 학생운동이 정치권력 자체의 전복과, 사회의 총체적 변혁의 임무를 자신의 과제로서 지속적으로 설정한 경우는 없었다(김동춘 교수)”
한국에서 이런 투쟁이 일어나고 있던 시기, 서구에서 있었던 학생운동은 그 성격과 양상이 다르다고 할 수 밖에 없다. “1960년대 말 미국과 유럽에서 몰아친 급진적 학생운동은 서구 자본주의 사회의 모순, 그 문화적 정당성의 위치에서 파생된 것(김동춘 교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68세대의 운동에서 떠올릴 수 있는 것들은 대학 규정과 권위주의, 학문관료주의, 전쟁, 핵, 인종주의, 그리고 성적 차별과 억압 일체에 대한 반대와 직접행동, 반문화운동들이다.
흥미로운 것은 90년대 이후 들어서, 그러한 서구의 68혁명이 자주 한국의 사회·학생운동의 참조 대상이 된다는 점이다. 사실 한국의 학생운동이 4·19혁명 당시 그러했고, 그 이후에도 오랫동안 재연시키려고 열망했던 상황은 작년 인도네시아에서 발생하였다. 스튜던트 파워가 수하르토를 물러나게 한 일련의 과정은, 그 이후 독재자의 퇴각에도 불구하고 정치적 전망이 속시원하지 못한 상황까지 포함하여, 일간지의 표현대로 “인도네시아의 4·19”라고 부를만하다.
그러나 적어도 이제는, 인도네시아의 ‘4·19’가 우리의 과거이며, 프랑스의 68이 우리의 미래라고 할 수는 없다. 세계체제상 주변부적 특성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멕시코 치아파스 봉기와, IMF 치하에서 고통받고 있는 한국, 인도네시아, 태국, 브라질 민중들의 투쟁, 95년 프랑스 총파업과 98년 실업자 투쟁에서 나온 구호들은 점점 닮아가고 있다. 그것이 39년전과 지금이 다른 점이라면 다른 점일 것이다.
이번 4·19 마라톤에서 볼 수 있었던 구호는 이랬다. “일자리를 보장하라”, “노동시간 단축하라.” 그것은 좋든 싫든 이미 세계화된, 세계사적인 슬로건들이다. 만약 어디선가 2000년대 첫 십년간의 시대규정이 나온다면, 아마도 그것은 우리에게도(다른 대부분의 나라를 포함하여) 그리 낯설지 않은 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