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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여름날, 큰 나무 그늘 아래 평상에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모여 앉아 부채를 부치고 있다. 언뜻 보면 어느 시골 마을 같은 이곳은 전남 고흥에서 600m밖에 떨어져 있지 않은 섬, 소록도다.


다큐멘터리 ‘동백아가씨’는 일흔 일곱, 이행심 할머니의 독백으로 이야기를 시작한다. 네 살 때 한센병에 걸린 부모를 따라 소록도로 들어온 이행심 할머니는 미감아 수용소에 들어가 부모와 떨어져 살아야 했다. 아픔을 느끼지 못하는 병인 한센병은 솔잎으로 찔러 아픔유무에 따라 발병을 체크했는데, 발병이 증명되어야 부모를 만날 수 있었다. 보고 싶은 부모와 함께 살 수 있다는 말에 아픔을 참아 가며 “아야! 안 아퍼!” 하고 소리쳤다는 이행심 할머니의 경험담은 절절하다 못해 가슴이 미어진다.


부모와 사별하고 일제의 강제노동을 해 내며 생계까지 책임져야 했던 그녀는 해방 후, 열일곱의 나이에 한센병 발병사실을 알게 된다. 아이를 밴 것도 비밀로 해야 하는 상황에서 닭이 울 때 같이 소리를 지르며 낳은 아들을 큰어머니에게 맡겨야 했던 이행심 할머니. 그녀가 평생 흘려야 했던 눈물은 일제와 한국 정부의 무지가 가져다 준 시대의 아픔이었다.


후반부, 영화는 일제시대 강제 격리된 한센인들에 대한 소송에 초점을 맞춘다. 소송에서 증인으로 나선 이행심 할머니와 한센인들은 한 번의 기각을 거쳐 2006년 드디어 승소한다.


“헤일 수 없이 수많은 밤을 내 가슴 도려내는 아픔에 겨워 얼마나 울었던가 동백 아가씨 … 동백 꽃잎에 새겨진 사연 말 못한 그 사연을 가슴에 안고 오늘도 기다리는 동백 아가씨”


영화가 끝난 후에도 가사 속 아가씨의 신세가 자신과 비슷해 즐겨 부른다는 이행심 할머니의 애창곡 ‘동백아가씨’가 머릿속에서 떠나지 않는다.


영화 중간 아무렇지도 않게 은근슬쩍 등장하는 감독의 모습은 이 영화를 더욱 인간적으로 만든다. 할머니와 함께 쑥을 캐고, 마늘을 골라내는 박정숙 감독은 영화가 끝나기 전, 담담한 나레이션으로 자신의 생각을 드러낸다. “소록도와 육지를 잇는 다리가 만들어졌지만, 지금 우리에게 더욱 필요한 것은 편견과 차별을 녹이는 희망의 다리”라고. 전염률이 낮아 더 이상의 격리가 필요하지 않은 한센병. 그러나 계속되는 사회적 편견 속에 살고 있는 소록도의 모든 이행심 할머니에게 진심을 가득 담은 악수를 청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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