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2명 투고자의 총 작품 수는 150편 남짓 되었다. 이수명, 김근 두 시인이 예심을 거쳐 넘겨준 작품은 <숭례문에 고래가> 외 7편, <울타리> 외 7편, <엄마는 우주인,> 외 6편, <오키독 치키칙> 외 6편, <스무고개> 외 7편이었다. 본선에 못 오른 작품 가운데 수준을 웬만큼 갖춘 작품은 <생리 묻은 팬티를 빤다는 것은>, <상처받는 그늘>, <그녀의 집>, <컴퍼스 원 그리기>, <그림자> 등이었는데 이들 작품의 공통점은 내가 왜 영상매체 전성시대에 시를 쓰고자 하는가 하는 문제의식이 없는 상태에서 썼다는 것. 구태의연한 소재나 가벼운 주제, 혹은 진부한 표현 중 한 가지씩은 갖고 있어 아쉬움을 느꼈다.

<엄마는 우주인,> 등을 투고한 학생은 산문시를 조금도 지루하지 않게 쓰는 장기를 갖고 있다. 소재 포착의 기발함과 이야기 구성 능력이 돋보였지만 재미 이상을 추구하는 진지함이 필요하지 않을지. 시가 묘사가 아닌 서사에 몰입하면 소설의 일부 같은 느낌을 줄 수 있다. <물건 사람들>과 <시간을 고치며> 같은 작품은 이 학생의 밝은 앞날을 예감케 한다.

<울타리> 등을 투고한 학생의 작품은 놀라울 정도로 신선하다. 하지만 이 학생 역시 말의 재미에 치우쳐 삶의 진정성을 놓치는 우를 범하고 있다. 유머와 요설의 미학은 이미 여러 선배시인이 보여준 것이었다. 그래도 <돼지껍데기>와 <변기>가 보여준 재능은 가작을 줄까 말까 하루 내내 고민케 했다. 이 정도 독특한 상상력이면 우리 시단에 경종을 울릴 수도 있겠다. 재능을 갈고닦아 더 큰 무대로 가보았으면 한다.

<스무고개> 등을 투고한 학생은 언어를 헤프게 쓰지 않는 장점을 갖고 있다. 시적 대상에 대한 시선이 침착하고 시의 외양도 정갈하지만 앞으로는 상상력을 발휘하여 더 넓은 세계로 탐험하기를 바란다.

<오키독 치키칙> 등을 투고한 학생의 실험정신을 높이 사주고 싶지만 말이 지나치게 말이 많다. 해체시와 미래파가 이미 행한 실험이라면 아류밖에 되지 않은니 이제는 참여와 실천에도 신경을 써야 할 것이다.

5명 가운데 가장 낡은 형식의 시를 쓰고 있는 학생의 작품을 당선작으로 뽑은 이유는 대상(혹은 사물)에 대한 관찰력과 집중력이 특출했기 때문이다. 상상력은 평이했지만 주제의식도 튼튼하고 세부묘사도 섬세하다. 게다가 시어의 경제적 운용능력이 함께 올라온 두 명 학생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시란 궁극적으로 ‘말놀음’이며, 말을 함부로 내뱉지 않고 하고 싶은 말만 조심스레 해야 시가 되는 것이다. 당선작은 성격이 다른 <손톱과 샌드위치 껍데기>와 <노래하던 고원> 2편이다. 전자는 관찰과 묘사의 능력이, 후자는 주제의 무게가 남다른 작품이다.

심사위원

 

이승하 문예창작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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