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톱과 샌드위치 껍데기

 

 

천정이 뚫린 듯한 소음과 함께

신천역을 지났다

똑, 똑, 똑각 시간을 잘라내는 손가락은

때 묻은 손톱을 붕 띄워 놓았다

내 앞의 한 남자가 손톱을 깎는다

어질러진 시간의 끄퉁지들이

막차시간 다가오는 지하철 바닥

한 움큼 쓸고 지나간다

 

다리와 배 사이에 끼워 놓은 것이

막기타인지 첼로인지를 모르게

비올라만한 몸이 가득 안고서

손톱 옆자리에 앉았다

GS25시 편의점 햄감자샌드위치 저녁 핑계로

순식간에 접어 넣는 막기타 여자

‘내리실 문은 오른쪽입니다’

듣고는 앉은 자리에

이십 초 동안 구겨 넣은 샌드위치

껍데기로 마지막 자리를 장식

 

막차 시간이 순식간에 닫혔다

손톱 깎는 사람은 이 초 만에 사라진 막기타 여자

그리고 샌드위치 껍데기를 쳐다본다

손톱 속 벗겨진 흰 자국과

발밑의 끄퉁지들을 보지 못하는 남자

자신의 잃은 시간은 눈치 채지 못한 채

샌드위치 껍데기를 쳐다본다

 

 

 

노래하던 고원

 

 

수백 년을 넘게

초지의 숨을 들어 마시며

양을 몰던 어린 몽골 스님

붉은 천을 벗어 던졌다

새 풀이 나지 않는 고원에는

되새가 아침을 노래하지 않고

 

세상의 지도를 품고 사는 중국 사람들

검은 칼날을 땅 위에 꽂고

티벳에서 불어오는 숨결을,

벤다

 

라마를 노래하던 어린 스님

검붉은 피가 흐르는 강 아래로

佛經스럽게,

칼날을 향해

몸을 던진다

 

초지에 주인 없는

가사 한 벌, 함성처럼

푸른 생명으로

대지를 되살리고 있다

 

 

갉아 먹힌 하루

 

 

시계 속 생쥐 한 마리

 

눈을 감고, 발을 굴려

간신히 쳇바퀴 위에 살고 있는 쥐

밤과 낮이 없이, 아무 표시도 없이

발을 구르고 있다 눈을 감고

끝없는 경계의 바깥으로

 

초바늘이 똑, 똑 부러질 때마다

생쥐는 손톱은 물어뜯으며

롤러코스터 가벼운 회전을 돈다

 

시계 속을 무중력 상태

발바닥이 느껴지지 않을 때쯤

정신없이 옷을 챙겨 입고

시계 속 뻐꾸기가 되어 문을 열고 나오지만

 

눈을 떠 보면 어느새 다시,

윤활유가 잔뜩 묻은 테잎 위에

넘어져 있다 머리를 박고 넘어져 있다

 

옷을 추스르고 일어나

거울 속을 들여다보았다

 

내가 있다

 

숭례문에 고래가

 

 

불빛이 하나 둘, 아스팔트 속으로 자맥질 하는 시간,

동상처럼 뭍으로 올라와 있던 고래 한 마리

오늘 따라 등이 굽었다

검은 과즙을 흘리는 불꽃이

육백년을 넘게 서 있던 고래 등 밑으로

잽싸게 스며든다

 

늘어진 지느러미

수면위로 뛰어 오르지도 못 한 채

불 길 속으로 사라졌다

 

바짝 마른 시간들이 불꽃에 튀어 오른다

송두리째 부서지는 소리,

흐릿하게 입 속에 감추고

되새김만을 하는 사람들의 기억들

 

어둠이 가라앉을 때 쯤

입 속에 난 통증들처럼

환하게 드러난 고래의 내장

얼굴들을, 고래는 가슴에 담고

심해 속으로 잠수한다

 

23.5도

 

 

나무가 뽑힌 자리,

뚫린 구멍으로

36.5도의 시멘트

헐떡거리며 쏟아진다

 

23.5도 기울어진 지구

그 속으로 오존을

꾸역꾸역 받아먹는다

 

우주의 호수 속을 헤엄치던 지구

점점 지느러미가 말라가고

삼백 아흔 네 번째 지구가,

바싹 바싹 마른 낙엽소리를 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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