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름포럼

영화 ‘레이닝 스톤’, ‘빵과 장미’ 등 사회주의적 신념을 표현하는 영화로 유명한 노동자 계급 출신 좌파 영화작가 켄 로치 감독이 이주 노동자 착취 문제를 고발하는 영화 ‘자유로운 세계’를 들고 다시 돌아왔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런던 부둣가에서 일하는 인부들을 이주 노동자 역할의 배우로 캐스팅했을 만큼 사실적인 묘사를 시도했다.


이주노동자 직업소개소의 계약직 사원이었던 싱글맘 앤지는 부당해고를 당하고, 친구 로즈와 함께 ‘앤지&로즈의 레인보우 인력소개소’라는 회사를 차린다. 빨리 큰 돈을 벌어 아들 제이미와 함께 살고 싶은 앤지는 사업자 등록도 하지 않은 채 비합법적인 경영을 시작한다. 값싼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이주 노동자를 모집하고, 그들을 고용해줄 업체를 알선하면서 스스로 좋은 일을 하고 있는 것이라 믿었던 앤지와 로즈. 그러나 계약했던 업체로부터 돈을 떼인 이들은 이주 노동자들의 임금을 주지 못하게 되면서 신변에 위협을 겪게 된다. 결국 사업을 정리하고 남은 돈으로 새로운 사무실에서 다시 사업을 시작한 앤지는 더 큰 이익을 남기기 위해 불법 이주 노동자 알선에 뛰어든다. 그리고 이 일은 그녀를 또다시 위험에 빠뜨리는데….


‘무엇이 문제인지 알고 싶다면 적의 입장에서 생각하라’고 했던가. 영화는 이주 노동자의 애환을 보여주는 식상한 시선 대신 그들을 착취하는 앤지의 시선으로 현실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하지만 섣불리 앤지를 비판할 수도 없다. 그녀 역시 부당하게 해고당한 계약직 사원으로 “나도 살아야한다”고 외치는 싱글맘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그녀도 한때 불법체류자 신세로 쫓기고 있는 이란인 이주자 가족을 집으로 불러 보살펴주기도 했던 따뜻한 사람이 아니었는가.


국내 이주 노동자 100만명 시대를 맞은 오늘 날, ‘자유로운 세계’가 보여주는 잔인한 착취의 사슬은 이제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광경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서서히 무감각해지는 우리는 있는 그대로 현실을 드러내는 감독의 시선이 오히려 불편하다. 어쩌면 영화를 보면서 착취 역시 ‘살기 위한 몸부림’이라는 앤지의 논리에 설득 당할지도 모른다.


이것이 바로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메시지다. 감독은 돈에 의해 변한 앤지를 통해 이 세계의 착취 논리가 ‘사람’이 아닌 ‘시스템’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신자유주의 시장 경제 체제 속에서 그 어느 쪽도 자유롭지 못한 ‘착취하는 자’와 ‘착취 당하는 자’. 영화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갈 때 앤지를 비판할 수도, 이주 노동자들을 동정할 수도 없다면 우리는 이미 자유롭지 못한 사람들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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