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질의 교육은 '경영'보다는 '교육기회 제공'이 우선돼야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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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기초마다 매번 되풀이되는 행사 중의 하나가 수강신청 정정과 폐강 조치이
다. 그런데 이번 학기는 강의가 시작되지도 않은 7월 초, 방학 중에 폐강이 결
정되었다. 재학생의 수강신청 정정과 복학생의 수강신청은 폐강 되지 않은 과
목만 허용되었다. 전학기 말에 실시되는 사전 수강신청제도는 결과적으로 폐
강과목을 미리 결정하기 위한 제도로 작용하고 있다.

인간의 행위는 본능적 행위와 비본능적 행위로 나누어 볼 수 있다. 본능적 행
위는 선택여부를 떠난, 그야말로 본능적이며 무의식적인 행위를 말한다. 이 행
위의 분류법을 강의 개설, 선택, 폐강결정 등에 적용시키는 일이 다소 무리가
될 수도 있으나 이와 관련지어 살펴보고자 한다.

학부 학생들이 이수해야 하는 전공학점 수는 현재 54학점으로 규정되어 있다.
한국의 교육적 여건에서는 명시된 전공 54학점을 모두 이수한다해도 전공분
야의 전문인이라 자부할 수 없다. 김영삼 정부의 교육개혁 정책에 따라 97학
년도 입학생부터는 전공학점수가 더욱 줄어 36학점으로 규정되었다. 복수전
공을 해서 형식적으로는 2가지 분야를 전공하는 것이 되겠지만, 그러한 전공
자의 자질이 의심스러울 수 밖에 없다. 이와 같이 낮은 비율로 설정된 전공학
점수를 고려하여 각 학과의 교수님들은 전공분야내에 수많은 영역, 과목 중에
서도 가장 기본적이며 일반적인 과목들만을 학부내에 개설하고 있는 형편이
다. 교수님들의 강의설정 행위는 우리의 열악한 교육적 제약조건을 고려하여
전공자로서 갖추어야 할 최소한의 "상식"을 제공하고자 의식적으로 선택하는
비본능적 행위이다.

강의를 선택하는 학생들의 행위기준은 어떠한가. 대학졸업장은 사회진출에
필요한 형식적 요건이고, 취직은 전공과 상관없이 상식과 생활영어 점수로
당락이 좌우되는 것이 현재의 실정이다. 따라서 학점은 `짜게 주고', 어려운
원서로 강의하는 교수님의 과목을 선택해서 고생한다는 것은 비이성적, 비합
리적 행위가 된다. 1백50명, 2백명이 몰려 출석 부르기 조차 힘들어 출석체
크를 포기한 교수님 과목, 강의 시간에 팔짱끼고 듣다가 졸음이 쏟아지면 졸
아도 아무런 부담이 없는 과목, 적당히 친구것을 베껴낸 과제물을 제출해도
후한 학점을 주시는 교수님 과목은 인기 만점이다. 그러한 교수님의 과목은
선, 후배의 대를 이어가며 전수된다. 후배들은 선배들이 해온대로 습관적으
로, 무의식적으로 따라가면 된다. 이런 대다수의 학생 때문에 어떤 과목들은
폐강조치가 내려져 꼭 수강하고자 하는 소수의 학생들이 피해를 입는 사례가
발생하게 된다.

한편 폐강을 결정하는 학교관계자의 행위 기준은 무엇일까? `교육기회 제공'
과 `경영' 중 어느 것에 더욱 비중을 두어야 할까? 나는 관계자가 아니라서 잘
모르겠다. 다만 유명한 우수 학교들을 살펴보면 `양질의 교육기회 제공' 쪽에
보다 힘을 기울인다는 공통점이 존재하는 것 같다. 학과의 정원이 다르고, 과
목의 성격이 다른데도 불구하고 교양과목 개설 최저 인원 30명(분반은 1백명
이상), 전공필수과목 10명, 전공선택과목 8명으로 획일적 방침을 적용하는 것
은 비합리적이라고 생각된다.서두에서 언급한 바와 같이 수강신청-개강-수
강신청정정(복학생 수강신청)-폐강 결정이 상식적이며 순리적인 업무순서가
아닐까 생각한다.

방학중인 7월 초에 폐강을 결정하고 복학생도 신청하지 못하도록 막는 행위는
, 별다른 고민없이 수강과목 선택을 본능적으로 행하는 학생들의 행위만큼이
나 유감스러운 일이다.

박 춘 은<외국어대 노어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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