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식은 권력이며 지식인은 권력집단이다. 전통사회에서 지식은 지배권력의 일부였고, 지식인은 체제에 깊숙하게 통합되어 있었다. 지배권력으로부터 독립된 집단으로서 지식인이 등장하게 된 것은 근대 이후의 일이다. 전통사회에서와 달리 다양한 사회계급으로부터 충원되었던 근대의 지식인은 사회적 공론을 만들어 구체제에 맞서는 비판세력으로서 자신을 정립하였던 것이다.

비판세력으로서의 60, 70년대 지식인

우리나라에서 이러한 근대적 지식인의 가까운 뿌리는 1960년 4·19 이후 형성되었던 지식인
집단에서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지식인들은 해방정국과 전쟁의 혼란에서 벗어나 사회의 비
판세력으로 결집하기 시작했는데, 그 계기가 된 것이 5·16쿠데타로 성립한 군사독재정권과
의 기나긴 싸움이었다. 한일회담 반대, 월남파병반대, 그리고 3선개헌 반대 등으로 이어지던
지식인들의 반독재투쟁은 70년대 초반 폭압적인 유신체제가 들어서면서부터 직접적인 정치
비판에서 간접적인 사회문화비판으로 전환되었다. 민중문학과 민족문학을 주창한 문인들이
비판적 지식인의 전위로 나섰고, 여기에 민중신학, 민중사학, 민중경제학, 민중사회학 등이
가세하면서 지식인집단은 70년대 내내 가장 중요한 비판세력으로 성장하였다.

80년대 이념 토대 상실해

1980년 광주항쟁을 진압하고 성립한 또 한 차례의 군사독재정권을 겪으면서 80년대의 지식
인들은 지배권력과 지배체제를 근본적으로 되돌아보기 시작하였고, 그 결과 냉전체제의 이
념적 제약들이 급진적으로 폐기되었다. 맑스주의가 비판적 지식인의 중요한 이념적 대안으
로 논의되었고, 급성장한 노동운동과 결합하면서 비판적 지식인은 스스로를 세계의 해석자
에서 세계의 창조자로 자리매김하기에 이르렀다. 80년대 말에 이르러 우리나라의 비판적 지
식인은 70년대의 비판적 지식인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현실적으로 중요한 정치세력이 되었
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 혁명가와 동의어로 이해되는 수도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1987년 대
통령선거에서 패배하면서 비판적 지식인은 사분오열되어 현실적인 구심점을 잃었고, 곧이어
현실사회주의의 붕괴라는 세계체제변동의 영향으로 이념적 구심점마저 상실하게 되었
다.

지식인 패배(?)

90년대에 들어서자 우리나라의 지식인이 패배하였다는 말은 마침내 상식이 되었다. 하지만
도대체 비판적 지식인이 누구에게 무엇을 잃었기에 패배하였다는 것인가? 90년대 이후 사회
주의적 전망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 막혀서 일부 맑스주의 지식인들이 침묵했던 것은 사실이
다.

그러나 맑스주의 지식인들은 비판적 지식인의 전부가 아니라 부분에 불과했고, 게다가
모든 맑스주의 지식인들이 패배주의와 청산주의에 빠진 것도 아니었다. 60년대부터 꾸준히
주장해 온 민주주의가 불완전하게나마 성취되고, 충분하지는 않았지만 반민주적이고 반민중
적이며 반통일적인 제도들이 서서히 변화됨으로써 비판적 지식인은 오히려 고무될 수도 있
었다.

대다수 비판적 지식인에게 현실사회주의의 붕괴와 90년대 우리나라의 상황이 승리로
인식되기는 어려웠으나 그렇다고 해서 패배로 인식될 필요도 없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
하고 지식인의 패배라는 말이 상식이 되어버린 것은 어떤 연유이었을까? 지식인의 패배라는
말은 또 다른 부류의 지식인들에 의해 유포된 말로서 정확하게는 비판적 지식인의 패배라는
말이었다.

다시 말해서 지식인의 패배라는 말은 60년대 중반이후 한국의 비판적 지식인을
대표해 온 좌파적 지식인에 대해서 우파적인 지식인의 반격이 시작되었음을 알리는 신호였
으며, 좌파적 시각을 수용하던 지식인들의 상당수가 보수화되고 있음을 알리는 신호였다. 이
로써 90년대 한국의 지식인 사회에는 그동안의 학문적 성과를 뒤집는 각종 포스트주의가 범
람하게 되었고, 계급과 혁명과 같은 거대담론이 일상적이고 개인적인 미시담론으로 전환되
었으며, 심지어 비판적 지식인들에 의해 어렵사리 단죄되었던 이승만과 박정희를 역사적으
로 복권시키려는 움직임마저 나오게 되었다.

게다가 우리나라가 머지않아 중심부자본주의로 발전하게 될 것이라는 근거없는 낙관론이 세
계화담론 및 정보화담론과 함께 유포되면서 우리나라는 신자유주의가 쳐놓은 세계화의 덫을
제대로 인식조차 하지 못한 채 그 덫에 보기좋게 빠져들었던 것이다.

‘학문의 종속성’ 한계를 넘어서

결국 1997년말 IMF시대가 시작되어서야 비로소 한국의 지식인 사회는 베를린장벽의 붕괴로
부터 10년 동안 가속화되었던 보수화의 길을 일단 멈추고 주위를 살피게 되었다. 이와같은
상황에서 냄비와 같은 한국 지식인사회의 속성이 도마 위에 오르고, 스스로를 지식상품 수
입상이라고 자조하는 지식인이 생겨나는 등 지식인 사회의 정체성이 송두리째 흔들리는 것
은 전혀 이상한 일이 아니다. 경제적인 신탁통치라고까지 표현되는 나라의 위기를 전혀 예
측하지 못했을 뿐만 아니라, 위기상황에 대한 인식과 위기극복의 처방을 제시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이러한 정체성위기는 지난 10년의 학문적 상황에서만 비롯된 것이 아니다.
학문적 종속구조에 갇혀있어서 학문적 모국이 바뀔 때마다 이론틀을 바꿔왔던 한국의 지식
인 사회가 진작부터 겪었어야 했던 일인 것이다. 이론 특히 사회이론은 현실의 사회구조에
기초할 뿐만 아니라 지배적인 이론으로 자리잡을 경우 그 자체가 하나의 지배권력으로 작용
한다.

따라서 학문적 모국의 주류이론이 현실사회구조가 전혀 다른 종속국에 수입될 경우
그것은 현실이해와 현실극복을 돕기보다는 현실왜곡을 강요하는 이데올로기로서 기능하게
된다. 일제식민지시대에 일본으로부터 수입되었던 일본의 주류이론 그리고 50, 60년대 미국
에서 수입되었던 미국의 주류이론이 직접적으로 여기에 해당된다고 할 것이나, 90년대에 무
차별적으로 수입되었던 각종 포스트이론들은 물론이요, 심지어 70년대와 80년대에 소개된
각종 반주류 이론들도 여기에서 완전히 벗어나지는 못한다고 할 것이다.

그러나 지식인의 정체성위기를 설명해주는 더욱 중요한 이유는 지식인을 대신해서 대중매체
가 지식의 생산주체로 등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주류담론이든 비판담론이든 지식인들의
담론은 지식인들의 연구성과를 두고 지식인사회가 내부토론을 벌임으로써 그 타당성이 검토
되어 왔다.

그러나 오늘날 지식인들의 사회과학적 담론들은 더이상 상아탑 속에서 이루어지는 내부토론
이 아니다. 담론은 대중매체에 의해 선택적으로 소비되며, 담론의 상품성을 최우선적으로 고
려해야 하는 대중매체는 아무런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지 않고 누구나 소비할 수 있는 담론,
즉 사회문제를 개인문제로 바꿔놓거나, 사회문제를 파헤치되 궁극적으로는 체제 옹호적인
담론, 그리고 이왕이면 외국의 유명상표를 부착한 담론과 새롭게 포장된 신상품담론을 선택
한다.

더욱 심각한 것은 대중매체에 의해서 생산되고 유통되는 지식인담론의 소비자가 바로
지식인 자신이라는 사실이다. 이제 지식인은 학회와 세미나에서 만나 토론하기보다 대중매
체를 통해 서로를 소비한다.

지식생산, 비판잃고 상품화돼

지식은 문자 그대로의 상품이 되고 있고 지식인은 자신들이 만든 지식 대신에 대중매체가
선택해주는 상품을 소비하며, 대중매체에 성공적으로 납품하기 위하여 대중매체에 길들여지
게 되는 것이다.

이로써 지식인은 더 이상 비판적이지 않으며 지식산업의 생산물을 유통하는 대리점이 되는
것이다. 세기말을 눈앞에 두고 있는 오늘날 한국 지식인의 정체성위기는 이론과 담론을 스
스로 생산하지 않고 외국으로부터 수입해왔다는 사실에서 비롯된다기보다는 지식인이 지식
인이기를 스스로 포기하고 체제에 안주해버린데서 오는 것이며, 이 위기는 지난 40년간 온
갖 고초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다듬어 온 비판의 칼을 되잡음으로써만 극복할 수 있는 것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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