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기하기도 하다.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다. 아직도 그 일을 생각하면 등골이 오
싹하다. 혼자 울고 있는 그녀를 생각하면 소름이 끼친다. 자신이 창조주라고
생각했을까. 생과 사를 주무를 수 있는 능력이 탐났던가.

각설하고, 이런 생각을 해본다. 많이 알려진 공포이야기처럼 두달이 지난후 드
디어 그녀가 품고있던 뱃속의 아이가 태어났다. 이상하게도 아니 놀랍게도 초
롱초롱 빛나던 눈망울을 제손으로 감겼던 그 아이와 너무도 닮은 아기가 태어
난다. 해가 갈수록 아기는 자신이 죽인 아이와 닮아간다. 언젠가 그녀는 남편
의 극단사무실로 가게 된다. 제 발 저리는 도둑처럼 그녀의 몸은 떨리기 시작
한다. 부리나케 밖으로 나가려고 하자 갑자기 아이가 그녀에게 이렇게 얘기한
다. :엄마, 이제 목조르지마."

터무니 없는 얘기다. 인간의 잔혹성은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지난 17일, 박초
롱빛나리양 유괴살해사건의 현장 검증을 보면서 인간의 잔임함은 인간자신도
예상 할 수 없을 정도라는 사실에 놀란다. 너무 놀라운 것은 새로운 생명의 탄
생을 앞두고 벌인 그녀의 행동이라는 것이다. 가장 신성한 생명의 시작과 끝을
하찮은 물질에 대한 욕심 때문에 비참하게 만들어버렸다. 무서운 인간의 욕망
은 허무만을 가져다 줄 뿐인데, 지금의 쾌락은 한순간임을 알면서도 그 쾌락의
단맛에 빠져 정신 못차리는 인간의 단순함은 어쩔 수 없는가.

보이는 것만이 전부일 것처럼. 영원할 것처럼 여기는 삐뚤어진 착각은 누구나
할 수 있다. 고장난 기계같은 인간의 판단력은 그래서 누군가를 의지하게 만든
다. 파지 말아야 할 제 무덤을 미리 파고있던 인간들에게는 주위의 도움이 필요
했을 것이다. 써버린 돈을 채우기 위해 갑자기 예상 못했던 행동을 저지른 그녀
또한 어려운 상황을 함께 해줄 주위의 사람이 없었을 지도 모은다. 그녀를 이해
한다는 의미가 절대 아니다. 저런 행동을 이해하고 싶지도 않다. 이번 사건으로
그녀에게서 소름을 느꼈다기보단 인간에게서 소름을 느꼈다는 의미이다.

상당한 충격이었겠지만 언젠가는 이 사건도 소리소문없이 잊혀질 것이다. 해가
지고 다시 뜨듯 갈수록 더 큰 일들이 벌어질 것이고 더 큰 충격이 다가올 것이
다.

혼자밖에 없는 사회. 자본주의 사회의 커다란 병폐인 극단적 개인주의는 세상을
메마르게 한다. 행동 이전의 판단을 함께할 친구가 없다. 복이 없는 세대다.
고쳐질 기미가 조금도 보이지 않는다. 마지막 세상을 사는 세대의 모습인가.
우려한대로 세상의 말세가 오고 있는 것일까. 이제 변해야 한다고 목청껏 외치
지만 현재의 세상은 슬프기만 하다.

'웃어라, 세상은 그대와 함께 웃으리라. 울어라, 오직 당신 혼자 울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슬픈 지구는 웃음을 빌려가지만 눈물은 이미 충분하기 때문이다.'

엘라 윌러 윌콕스란 사람은 이렇게 말했지만 세상은 혼자 우는 사람으로 가득
찬 것 같다. 슬픈 지구가 빌려갈 웃음은 없어져 버렸다.

<한규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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